<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과격한 혁명집단 프렌치75의 핵심 단원인 팻과 퍼피디아. 연인관계로 귀여운 딸까지 하나 낳았건만, <케빈에 대하여>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퍼피디아는 엄마로서의 역할보다 혁명가로서의 역할에 더 사명을 둔 이였으니... 퍼피디아에게 딸은 혁명가인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였고, 어느새 안일한 가족주의에 물들어 그저 평안하게 살고자하는 팻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과도 같았다. 그렇게 퍼피디아는 떠나고, 이후 이어진 그녀의 실수와 배신들 때문에 프렌치75는 와해되며 팻 역시 밥 퍼거슨이라는 가명으로 스스로를 감추곤 과거로부터의 탈주를 시작한다. 그렇게 16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흐르고, 어느덧 밥이 된 팻은 그 옛날 사명어렸던 암구호들마저 희미하게 잊은채 딸 샬린과 살고 있었으나... 세상에 과거라는 게 없던 셈 친다고 정말 그리 되던가? 팻과 퍼피디아가 선택했던 과거는 죽지 않는 망령이 되어 다시금 밥과 샬린을 덮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PTA가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존 윅>이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걸 기대했다면 그건 기대한 사람 잘못이겠지. 당연히 일반적인 액션 장르 팬들에겐 소구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PTA의 역대 영화들 중 가장 대중적인 건 정말로 맞지 싶다. 그의 이전 영화들도 물론 재밌었지만, 그 재미라는 게 대중적인 집중력과 직결되는 것은 결코 아녔잖아. 헌데 이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적어도 보는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거의 세 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에도, 따지고보면 하나의 장편 영화로 만들기에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던 것 역시 아니었음에도 내내 관객들 시선을 붙드는 연출력의 힘. 여전히 PTA는 PTA였다.
요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또한 미국의 현 상황을 빗댄다.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임에도 타 이민자들을 밀어내는 척력, 타 인종의 문화를 향유하고 또 은근 즐기면서도 겉으론 경멸하는 척하는 자가당착적 면모,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지만 결국엔 그냥 총을 휘두르고 싶었을 뿐 아닌가 싶은 기만 등등. 영화의 안타고니스트인 스티븐 록조와 퍼피디아 등의 행보, 그리고 멕시코 이민자들을 대하는 국가기관들의 태도에서 그 모든 것들이 스며나온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놈의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었다.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극우 백인우월주의 세력들의 비밀스런 연합. 그 취지와 사상은 악할지언정, 그래도 굵직한 정재계 인사들의 번듯한 사교모임이니 나름의 기품은 있겠지 싶었다. 뭔가 KKK단의 <007> 악당 버전 같은 걸 상상했었단 말이지, 우매하고 고루한 사악함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나름대로는 우아한. 헌데 막상 들여다본 클럽의 실체는 찌질하기 짝이 없었다. 새 멤버를 들인답시고 내지르는 질문들도 유치했거니와, 설령 그 후보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냥 거절하거나 했으면 됐던 거 아닌가? 아니면 하다못해 정말로 <007> 악당들마냥 스티븐 록조를 잔혹하게 살해했어야지. 근데 그들이 택한 방법은 가입됐으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가스로 몰래 죽이는 방법. 진짜 찌질하고 유치한 클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클럽에 친딸까지 죽여가며 가입하려 했던 스티븐 록조 역시 한심해보이는 건 매한가지고.
이렇게 정재계의 높으신 분들이 유치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와중, 저 아래 밑바닥 하류 인생들은 시끄럽되 서로를 인사시키고 또 응원하며 세상을 전진시킨다. 물론 불법 이민자들 돕는 걸 마냥 선이라 치부할 순 없는 거겠지. 하지만 극중 베네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사부와 그의 조직들은 적어도 시끌벅적한 선언을 즐기고 여차하면 사람도 쏴죽이는 프렌치75에 비해 같은 혁명 집단임에도 훨씬 더 고매해보였다. 똑같이 혁명을 해도 누군가는 은행을 털고 사람을 죽이는 반면, 또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다른 이를 같은 날 두 번이나 구해주는 데에 인력을 쏟는다. 과거로부터 자꾸 도망치기만 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밥에 비해, 그래서 난 베네치오 델 토로의 사부가 훨씬 더 주인공 같았다. 여기에 한 숟갈 더 얹자면 아반티까지. 비록 스티븐 록조 등과 공조해 타인을 짓밟는데 힘을 보탰지만, 그럼에도 그 마지막에 있어서는 내적갈등과 스스로의 선택으로 다른 누군가를 구해낸 인물. 사부와 아반티 같은 인물들이 있어 어쩌면 혁명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엄연히 존재하는 과거는 자꾸만 우리를 불러세우고 붙잡아 넘어뜨린다. 하지만 백미러만 보며 운전하다간 사고나기 십상이라 하지 않던가. 운전할 땐 엄연히 그 앞에 펼쳐진 구불구불한 도로를 직시해야하는 것처럼, 이왕 이렇게 된 거 과거지사 잘 정리하고 미래지사를 향해 잘 나아가야지 않겠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그 미래와 그 희망이 다음 세대에 있다고 전하며 끝을 맺는다. 비록 배신자와 머저리의 딸이었지만, 그럼에도 샬린은 어쨌든지간에 과거와 맞서 자신의 딸을 구해낸 남자의 그 딸이기도 하기에 계속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샬린과 이런 사부, 이런 아반티가 있다면 작금의 미국에도 희망은 도래할 것이다. 남의 나라 미래를 두고 희망이 있네 없네 훈수두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언제나 말해왔듯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다 연결되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