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버스>
케빈의 삶은 망가져있다. 생전 화해하지도 못한채 떠나보낸 아버지. 그렇게 억지로 다시 돌아온 고향 땅. 혼자가 된 어머니는 우울하도록 조용하다. 여기에 아내와의 이혼과 자신을 아버지로서 제대로 대해주지도 않는 외아들의 존재가 더욱 케빈을 옥죄고. 그러니까 지금 케빈은 그가 한참을 기르다 암으로 방금 떠나보내게 된 반려견과 그 신세가 비슷하다. 죽을 날만 받아놓은채 아무런 의지 없이 그저 살아나가는. 마침 스쿨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던 회사에서도 알게 모르게 밉보인 것 같으니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그러다 느닷없이 시작된 산불이 마을을 덮치고, 얼결에 케빈은 수십 명의 아이들을 태운채 그들 목숨을 걸고 버스를 운행하게 된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던 삶, 그러니 이번엔 진짜로 죽어보라며 요동치는 화마. 하지만 인간들이 다 으레 그렇듯, 케빈 역시 죽음과 직접 대면하게 되자 삶에 더 열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화의 전반부에 걸쳐 주인공이랍시고 서성이는 이 케빈이란 인간이 좀 비호감으로 느껴졌더랬다. 물론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란 거 잘 알겠어. 아들에게 소리 지르며 화낸 거? 내가 봐도 아들이 좀 싸가지가 없더라고. 이렇듯 케빈의 무거운 인생이 어느 정도 이해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을 이렇게 대충하면 어쩌란 말인가. 나름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스쿨버스 운전기사로서 공과 사를 구분해내지 못해 자꾸 근무 중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거나, 얼른 가서 버스 정비 받아야하는 상황인데도 계속 아픈 아들 생각하며 약국을 들른다거나 하는 모습이 좀 무책임하게 보이고 어른스럽지 않게 보였다. 하다못해 아프다는 그 아들이 무슨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녔지 않나. 제아무리 아들이 걱정됐다해도 얼른 차고지 가서 버스 반납해 정비 맡기는 게 순서지.
그런데 이 무책임하고 어른스럽지 않아 보이던 인간이, 후반부 들어 책임을 알게 되며 그로인해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위기에 처한 어린 아이들을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 무전하던 케빈의 그 순간부터였다.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그거 그냥 상황이 자기 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갔던 거 아냐? 물론 맞다. 하지만 동시에 케빈은 그 무전을 무시하고 아들에게 직행할 수도 있었다. 일말의 양심과 그에 따른 행동. 그러니까 케빈의 그 결정은 타의처럼 보이나 동시에 자의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로 그 부분부터 난 케빈을 주인공으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전반부만 보면 케빈은 삶의 투지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어머니나 아들과의 관계 역시 반 포기한 것처럼 보이고, 회사에서의 평판 등도 모두 다 집어치운채 그저 돈벌이에만 천착하는 인간. 하지만 그랬던 케빈이 캘리포니아를 뒤덮은 거대 산불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점차 삶의 투지를 다시 꺼내 닦아나간다. 그러니까, 삶에 대한 케빈의 투지는 이미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투지는 어디 밖에서 갑자기 밀려들어와 케빈 안에 떡하니 새로이 자리잡은 게 아니다. 그 투지는 이미 케빈 안에 있었다. 그저 케빈 스스로도 그게 어디 묻혀있는지 몰랐을 뿐.
<플라이트 93>과 <본> 시리즈, <그린 존>, <캡틴 필립스> 등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사실주의적인 연출로 관객들을 사건 현장 한가운데로 늘 데려다줬던 폴 그린글래스. 그의 연출적 장기가 이번 <로스트 버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실제 효과와 CGI가 적절하게 가미된 거대 불길은 우리가 왜 화재를 화마라 바꿔부르는지 확 체감시켜준다.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가 흡사 화면 바깥으로 넘실거리는 듯한 파괴적 연출. 폴 그린글래스는 이번에도 관객들을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 한 가운데로 순간이동 시킨다.
자신 안에 묻혀있던 투지를 올곧게 다시 꺼내 깨끗이 닦아낸 케빈. 결국 그는 어린 아이들을 구하고 마을의 영웅이 되며, 그로인해 아들과의 관계 회복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간다. 자신의 자녀를 불길로부터 구해준 케빈에게 학부모들이 응원의 한 마디씩을 건넬 때, 거기서 나도 케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아이들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구해낸 거라고. 그렇게 인생의 불길과 싸워내는 투지는 이미 케빈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의 불길과 싸워내는 투지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안에도 이미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