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고 인간다운 영화

<세계의 주인>

by CINEKOO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다소 생뚱맞을 순 있겠지만, 그것은 바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박근혜 정권 당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농부이자 사회운동가인 백남기가 사망했던 사건 말이다. 벌써 10여년 전의 사건이고 그간 워낙 많은 사회적 논란과 음모론들이 야기됐던 바, 내가 굳이 여기서 해당 사건에 대한 또다른 의구심을 조장할 생각일랑 없다. 이제와 그 당시 정권을 싸잡아 욕하고 싶은 마음도,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두고 추모 외의 다른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떠올린 건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 이후 벌어진 일이기도 해서.

故백남기가 생전 입원해 있을 당시, 유족들 중 하나인 그의 딸이 SNS를 통해 남편 및 자녀들과 함께 발리에 다녀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는 당시 여당과 해당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했던 일부 언론들에 의해 있는 힘껏 부풀려졌다. 그들 말에 따르면 백남기 측은 스스로를 경찰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정권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데, 어찌 자식된 도리로써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딸이 동남아 휴양지에 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정부로부터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어보려는 불충한 가족들의 시체팔이 장사에 지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찌 당사자도 아닌 이들이 피해자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이미지'란 대체 무엇인가. 그들 생각엔 피해자란 무릇 '마냥 슬퍼하고 처절히 무너져내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상태를 응당 갖춰야만 하는 이들'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으레 다 그렇듯,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오래도록 아파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을 살아내야만 하는 거다. 그게 진짜 여행이었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든 간에, 피해자와 그 유족 측이라고 해서 꼭 병원에 내내 상주하며 눈물 삼키고 또 분통 터뜨릴 필요는 없단 말이지.


딴소리가 길었는데, <세계의 주인>은 피해자에 대한 그런 인식을 무너뜨리는 영화였다. 물론 성폭력의 무서움과 참담함, 그리고 그로인해 피해자들이 겪게 되는 트라우마 등을 가벼이 여기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세상에 어떤 풍파가 닥쳐도 우리는 그 나머지 인생을 살아내야만 하지 않는가.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그런 마음과 상태 등을 차치하고 본다면, 그들도 그들 앞에 주어진 나머지 생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어느정도의 배려와 마음 씀은 필요하겠지만, 구태여 우리가 그 피해자들을 마냥 가여이 여기고 동정할 필요는 또 없다는 말. 그게 바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시선이라고 영화가 말하는 듯 했다.


헌데 영화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며 사려깊은 마음을 드러낸다. 조심스러운 발언이긴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 역시 자신 앞에 주어진 나머지 생을 살아가려면 어느정도는 그 삶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는 것. 고민시가 연기하는 미도의 태도에서 영화는 그런 감상을 느끼게 만든다. 미도가 그 아버지란 작자로부터 제 3자 입장에선 감히 입에 올리기도 힘든 폭력을 당했음을 안다. 그런 그녀를 응원하고 또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그로인해 트라우마를 얻게 되었다한들, 초면인 주인의 남자친구 찬우에게 그토록 무례할 필요는 없었다는 거다. 찬우 입장에서는 미도의 아픔과 사정을 모르지 않나. 그리고 그건 찬우 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도가 살아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초면인 관계에서, 초코파이 광고 음악마냥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소리는 그저 판타지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소통하지 않으면 알 겨를이 없다.


<세계의 주인>은 그 상호간의 입장 모두를 진실히 전달하면서도, 어느 한 쪽을 닦달하지 않은채 둘 모두를 부드럽게 포용한다. 강제적인 메시지도 없고, 교조적인 태도도 없다. 서로 간의 입장을 그저 관찰하고 전달하며 위로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사려깊은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사려깊다.' 사전적으로는 여러가지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고려해 전달하는 태도를 뜻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공자님 말씀이 떠올랐다. 공자 왈,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슬기고 또 타인을 진정으로 아끼는 것이 인간다움의 길이라. 공자님 기준, <세계의 주인>은 슬기롭고 인간다운 영화였다. 이토록 따뜻하고 겸허하며, 사려깊은 영화가 있다니. 괜시리 내 마음도 뭉근히 보글거리는 듯 했다. 


tempImageVFzyeG.heic <세계의 주인> / 윤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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