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낳은 정 vs 기른 정. 어느 쪽이 우선일까.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낳은 정이 더 먼저 아니겠느냐 말한다. 기른 정은 시간과 노력을 더 들임을 전제하지만, 낳은 정은 그냥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는 논리. 어찌보면 일리 있고 적확하다. 내 유전자를 이어받아 태어난 아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더 날 닮아갈 테다. 이목구비 같은 가시적인 부분에서부터 행동과 습관 같은 비가시적인 부분에까지 말이다. 그걸 그냥 없는 셈치고 살래?-라 묻는다면 과감히 그러겠다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
아버지인 료타 역시 해당 딜레마 안에서 같은 결정을 내린다. 그 역시 무조건적으로 낳은 정을 우대해 기른 정을 홀대하는 매정한 인물은 아니다. 내 친자식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다고 해서 적어도 케이타를 냉정하게 내치는 아버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료타 또한 그 과정에서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더 우선한다는 걸 느끼긴 한다. 그래서 진행되는 기른 정 케이타와 낳은 정 류세이 사이 교환 계획. 그렇게 생김새부터 행동거지까지 자신을 쏙 빼닮은 류세이를 기르게 되지만, 그와 시간을 함께 보내면 보낼수록 료타 마음 속 케이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도 족쇄처럼 자꾸 그의 발목을 파고든다.
그러니까 그 들인 시간과 노력을 결코 무시할 순 없단 결론이다. 생각해보면 료타 역시 자신과 핏줄로 연결되지 않은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해서 그 새어머니가 무슨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계모들처럼 함께 사는내내 료타를 괴롭혔던 것도 아니고 말이지. 오히려 새어머니는 료타에게 말하지 않나, 친모대신 그를 키우는내내 가족이 아니란 생각은 결코하지 않았노라고. 세상엔 핏줄로 연결되지 않는 가족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가족 구성의 필요조건처럼 보이는 핏줄은 사실 충분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의 진정한 필요조건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함께 보낸 시간이야말로 가족 구성의 진짜 필요조건이라 말하고 있다.
사실 거의 10여년 만에 이 영화를 재감상하게 만든 이유가 따로 있다. 최근 내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 아직 생후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를 보고 또 안으면서도 아버지가 됐음을 채 실감하지 못하던 나.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 왠지 이 영화를 보면 아버지란 건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해답을 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딴소리지만 그래서 참 잘 지은 영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제목만 보고 들어도 좋은 아버지 정답서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되니까.
옆길로 샜지만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다시 보며 상상해봤다. 아직 태어난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았지만. 만약 이 아기가 내 친자식이 아니었다면? 병원에서 다른 가족의 신생아와 뒤바뀐 거라면? 그래서 이 아기를 그 아기와 바꿔 기를지 말지 선택해야만 한다면? 영화 속 케이타와 류세이는 벌써 여섯살이었다. 그럼에도 극중 병원 관계자들은 두 아이를 바꿔기르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종용하더라. 그럼 당연히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은 내 아들 역시 그냥 빨리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여섯살도 바꿔 기르자는 판국인데 겨우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야 더 쉽지. 아직 생후 100일도 되지 못한 두 아기 역시 지금의 기억이 오래가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정말 놀랍게도, 내 마음 속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명확했고 단단했다. 절대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단답.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단언. 내 혈육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새 함께 보냈던 90여일동안 느끼고 얻었던 기쁨이 너무 컸다. 그 90여일은 감히 말하건대 900일, 9000일 같은 기간이었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 료타의 뒤늦은 깨달음에 나 역시 동할 수밖에. 이제라도 케이타를 찾아 달려나가던 료타의 뒷모습, 한 발자국 멀찍이서 케이타를 따라가던 료타의 앞모습, 그리고 끝끝내 케이타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어린 그를 쓰다듬어주는 료타의 옆모습에서 나는 마침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좀 더 강하게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쿨쿨자고 있던 내 품안의 아기는 갑자기 울컥해진 애비 모습에 별 생각도 없었겠지마는.
들이고 누적된 된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적어도 나는 가족 구성에 있어 충분조건은 이미 완성했으니, 이제부터는 그 필요조건에 좀 더 집중해볼까 한다. 결코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겠지만, 또 그만큼의 기쁨과 행복이 있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