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
20세기 초반, 미국은 점차 연결되고 있었다.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철로가 깔리고 그 위를 기차가 바삐 지나다니게 되면서 종으로 길고 횡으로 넓은 미국의 국토는 점차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연결됨으로써 경제가 부흥하고 기술이 발전하던 변화의 시기. 허나 그 연결의 과정에 힘을 보탰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스스로는 외지고 숨어드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기차의 꿈>은 미국이란 나라가 점차 강대해지던 변혁의 시대를 배경으로, 바로 그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와 정서가 어땠는지를 살며시 드러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 로버트의 삶에 타인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덧입힘으로써 철저히 관조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그를 넘어 인간이 개미를 관찰하듯 구는 순간도 존재한다. 로버트의 탄생부터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레이션의 화자는 과거와 미래 모두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군다. 헌데 정작 영화는 로버트의 임종을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 내레이터의 지위는 단순히 한 인물의 생애를 줄줄이 읊어대는 관찰자를 넘어서서 일종의 큐레이터로 격상하게 된다. 마치 방문객들을 위해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나가버린 역사를 친절히 설명해주는 박물관내 큐레이터처럼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연출 덕택에 <기차의 꿈>은 로버트란 한 인물을 넘어서서 그 시대를 살아갔던 당시의 모든 이들을 아우르게 되었다.
모두가 연결되던 시대에 가족을 잃고 스스로 은둔에 들어간 로버트의 모습이 참으로 섧다. 그를 도와주던 친구가 있었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있었고, 문득 인연이 닿은 한 여자 역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차례로 설명도 없이 사라지거나 오래된 기억에 로버트를 잊었다. 특히 케리 콘돈이 연기한 클레어가 인상적. 아내와 딸을 잃은지 한참이 된 로버트 앞에 나타난 클레어. 그 지점에서 관객들은 클레어가 로버트의 새 연인 혹은 새 아내가 될 것임을 예측한다. 그게 이런 영화의 전형적 이야기 전개 아니겠는가. 하지만 <기차의 꿈>은 그런 관객들의 나이브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다. 클레어는 그저 로버트와 아픈 감정을 잠깐 나누고 지나가는 순간의 인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모든 묘사들을 통해 영화는 엄청나게 서글픈 감정을 끌어낸다. 왜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순간순간을 살아가며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그 모든 것으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정작 잠잠해지거나 초연해지지 않나. 죽음을 앞에 둔 노인들이 갑자기 삶에 달관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차분한 슬픔이 깃들지. 한때는 뜨거웠으나 지나고보니 냉담해지는 상황들, 감정들. 거기서 오는 그 슬픔 말이다. 이 장구한 역사 속에서 그저 한 개인일 뿐인 나는 조용히 스러져가겠지 싶은 슬픔. <기차의 꿈>은 그 슬픔을 잘 구슬러 부풀린다. 상영시간이 꽤 짧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운만큼은 길었다.
더불어 그 모든 순간들에 당시 미국의 생활상을 구두점처럼 찍어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고향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흘러들어와 힘들게 일했을 당시의 중국인 이민자들. 쿨리라 불렸던 그들 중 하나가 당시의 인종주의자들에 의해 물어지지도, 따져지지도 않은채 허무히 희생당하는 장면은 그 시절의 비극을 집약해 보여준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해 동생의 복수를 위해서 총을 꺼내드는 자경단 역시 우리가 흔히 아는 당대 미국의 이미지를 잘 반영해주고 말이지.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나지막한 편집도 좋지만, 그 부질없는 슬픔에 가장 큰 공신은 단연코 촬영이었다. 아돌포 벨로소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촬영감독이 담아낸 미국의 자연풍광이 참으로 멋지다. 연출의 뜻과 잘 부합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참 멋지게 찍혔다. 그리고 특유의 그 서정성이 앞서 말한대로 영화의 슬픔에 큰 공을 세우고 있고. 앞으로 아돌포 벨로소의 이름을 좀 외워둬야지 싶었다.
평소 명예나 유명세에 별 생각이 없던 나인데, <기차의 꿈>을 보곤 아주 잠깐이나마 우울해졌다. 이 넓은 세상과 긴 역사 속에서 나라는 한 개인은 어떻게 남을 것인가. 내가 남길 수 있는 건 과연 무얼까. 로버트가 생계를 위해 그저 나무들을 베어냈던 것처럼 나 역시 소비하는 등의 형태로 그저 없애고 있는 인간일 뿐인데. 그럼에도 아내와 딸을 잃었던 로버트와는 달리 내게는 희망이 있으니까. <기차의 꿈> 덕에 나는 아주 잠깐의 우울과 그 여운만큼 긴 희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