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Jun 05. 2021

운명일까? 우연일까?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우리는 종종 우연과 운명을 헷갈려한다. 별 거 아닌 우연의 연속으로 어쩌다 일어난 일일 뿐인데도 종종 그것을 장엄한 운명의 한 조각으로 잘못 해석한다. 그리스 신화 속 여러 이야기들에서 신탁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경우 그 결말이 좋게 나는 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신들의 목소리와 예지력을 전해받으면 뭘해, 결국 인간들은 그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다가 끝내는 그로인해 신탁의 결말로 달려간다. 아니면 아예 그걸 잘못 해석해서 몰락 하든가. 영화 속 폭력 조직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정의의 기수들'을 표방하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딱 그 상황에 몰린다. 그런데 어쩌면, 그저 우연일 뿐일 수도 있었던 것을 운명으로 잘못 해석한 건 오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그저, 그들이 그렇게 믿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비극은 시작된다. 



라이더스 오브 스포일러!



통근열차와 화물열차가 부딪혀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사건이 발생한다. 그 통근열차에 타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오토는 이 모든 게 뭔가 수상 하기만 하다. 사고가 난 열차에는 곧 법정에서 주요 증언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전직 폭력 조직원이 타고 있었고, 또 사고 직전 역에서는 누군가가 다 먹지도 않은 샌드위치와 주스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수상쩍은 모습으로 하차했다. 확률에 대해 연구하는 오토가 이를 놓칠리 없지. 오토는 경찰들을 찾아가 항변한다. 이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주요 증인을 살해하기 위해 계획된 테러일 것이라고. 세상에 어느 누가 그 비싼 샌드위치와 주스를 다 먹지도 않고 버리겠냐고. 이건 확률의 문제인데, 그럴 사람은 거의 0에 수렴 할테니 그 사람이 곧 범인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경찰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경찰 대신 오토와 친구들이 찾은 건 그 사고의 또다른 사망자를 아내로 둔 현직 군인 마르쿠스다. 마침 죽은 아내의 빈자리를 꾸역꾸역 알 수 없는 분노로 채우고 있던 그. 그렇게 마르쿠스와 오토를 필두로 총 네 명으로 구성된 정의의 기수들이 뭉친다. 컴퓨터 프로그램 좀 돌려서 알아보니, CCTV에 찍힌 그 샌드위치남의 얼굴과 일치하는 프로필이 두 개 있네. 가장 높은 확률로 나온 건 이집트에 살고 있는 어떤 남자지만 그는 여기 덴마크 사람이 아니니 빼고, 그 다음으로 높은 확률을 보여주는 남자가 바로 덴마크인. 게다가 이 남자는 사고로 죽은 증인이 유죄를 증언하려 했던 폭력 조직 두목의 친동생이다. 됐다, 가서 이 남자부터 시작해 조직을 일망타진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마르쿠스는 조직원들을 하나둘씩 처리하기 시작한다. 존 윅이나 로버트 맥콜이 떠오르는 실력으로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는 마르쿠스. 그리고 그 와중에 오토와 나머지 친구들은 마르쿠스의 딸 마틸드와 유사 가족 형태를 이루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해피 엔딩으로 쉽게 맺어질 만한 이야기다. 복수를 완성함으로써 정의는 바로 서게 될 것이고, 또 각기다른 상처와 슬픔을 지닌 인물들은 새로운 한가족으로 뭉쳐 정을 나눌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형태로 결말 지어질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무심 하기도 하시지, 하늘은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알고보니 테러라고 생각했던 그 사고가 그저 진짜 사고였을 뿐이라는 진실. 증인은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된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지지리 나빠 죽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건 마르쿠스의 아내도 마찬가지고. 고로 그 폭력 조직원들은 그 자체로는 인간 말종 쓰레기들 임에도 딱히 기차 사고에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 높은 확률로 얼굴 프로필이 일치한 조직 두목의 친동생은 뭔데?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지독한 농담. 영화는 잠깐 갑자기 그 무대를 이집트로 옮긴다. 웬 남자가 덴마크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그는 자신을 기다렸던 어린 자식들에게 말한다. "덴마크는 음식이 맛 없더라. 샌드위치랑 주스가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어서 그냥 버렸지 뭐야."


항상 신탁을 오해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그게 단순한 오해에 머물 수도 있으나, 때로는 그저 분노 등의 감정을 풀기 위한 해방구를 찾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추는 경우도 있지.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그 둘 모두를 다 보여준다. 오토는 오해 했고, 마르쿠스는 해방구를 찾았다. 그래서 자경단이 되어 그 폭력 조직을 궤멸시켰지. 그들이 이들에게 딱히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이걸 우리가 해피 엔딩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물론 그럼에도 그들은 끝내 새로운 가족이 되어 아늑하고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맞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본 정말이지 지독하고 앞뒤 안 맞아 더 애처로운 블랙 코미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에는 바로 그 요상한 매력이 있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 앤더스 토마스 엔센


이전 05화 10초든, 10년이든 간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