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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r 07. 2023

10초든, 10년이든 간에

<카운트>

1988년 서울 올림픽. 박시헌은 대한민국 복싱 국가대표 선수란 막중한 타이틀을 달고 치열한 승부 끝에 금메달과 은메달 사이 기로에 서게 된다. 상대인 미국 국가대표 선수만 쓰러뜨린다면 금메달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될 터였다. 하지만 경기는 점점 미국 선수의 우세로 기울어가고, 시헌 역시 나름의 고군분투를 벌이지만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렇게 끝난 경기. 아, 이대로 판정까지 가면 분명 판정패일텐데. 그런데 이게 웬걸, 시헌은 자기 스스로도 갸우뚱하게 되는 판정 결과로 인해 판정승을 거두고 끝내 금메달을 손에 넣게 된다.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 그렇담 이제 시헌과 대한민국 전체는 그 금의 향연에 마냥 기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시헌조차도 의문을 표했던 승부가 아닌가. 상대 선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들까지 뇌물주고 사온 금메달이라 떠들며 비난하고 또 부끄러워한다. 


복싱을 비롯해 태권도나 가라데 등 대부분의 입식 격투기 종목들은 '카운트'란 개념을 갖는다. 입식 격투기, 말그대로 서서 하는 격투기이니 상대의 일격을 맞고 쓰러진 선수에게 보통 10초 정도의 다시 일어설 시간을 주는 것. 비록 나는 복싱은 커녕 그것을 입식 격투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지만 그 옛날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벌였던 닭싸움마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쓰러진 선수가 그 10초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그 시간동안 어떤 생각에 빠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대에게 한껏 맞은 직후일테니 몸 곳곳이 아프고 쑤시는 것은 물론이요, 정신이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겠지. 그럼 그동안, 선수는 정말이지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일어설 것인가? 링 밖에 앉아있는 구경꾼들이야 당연히 일어나야지 않겠냐고 일갈 하겠지만 글쎄, 링 안에 쓰러진 상태가 되고도 그런 말을 당연한듯 할 수 있을까?


오해로 점철된 명예, 시헌은 그렇게 10년을 살아왔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그토록 좋아했던 복싱도 포기한 삶. 아내에겐 늘 미안한 남편이요, 아들에겐 늘 부끄러운 아버지로 살아왔던 10년. 그러나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고 또 넓게보면 무협 장르 영화도 그렇듯이, 시헌은 특출난 제자를 만나 그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링 위에서 당당하게 똑바로 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제자. 그렇게 시헌은 그 제자와 친구들에게 자신의 지난 10년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10년까지 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제자들에게 쓰지 않았더라면 그의 연금 통장 속 돈들은 그와 가족들을 번듯한 아파트 안의 삶으로 인도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링 안에서는 스승이고 감독이고 코치고 그 누구도 너와 함께 싸워줄 수 없다는 말. 링 위에 올라간 순간, 우리는 누구나 혼자가 된다. 끝까지 두 발로 서서 싸우다 이기면 물론 좋겠지만, 우리 삶에 그런 환상은 잘 어리지 않는다. 우리는 분명히 넘어질 것이다. 회심의 일격이랍시고 내지른 주먹은 상대를 빗맞출 것이고, 열심히 준비했던 스텝은 엉키고 꼬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강대한 상대의 어퍼컷에 필시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게 다 그렇듯,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10초의 시간이 카운트 될 동안,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이를 악물고, 다시 조금씩 일어서서, 다시 두다리로 나 멀쩡하다는 듯 허세 조금 섞어 버티는 일. 링 위와 인생 위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쓰러진 다음에 있다. 


다시 일어서기 까지, 시헌에게는 10년이 걸렸다. 아무래도 10초 보다는 조금 길게 느껴졌을 그 시간, 10년.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쓰러진 순간보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준비한 그 10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물론 링 위와는 달리, 우리네 인생 위에는 그 카운트를 대신 세어줄 심판의 존재가 부재한다. 하지만 시헌 옆에 든든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제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지 않은가. 여차해서 쓰러졌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다함께 카운트를 세어보자.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이를 악물고, 다시 조금씩 일어서서, 다시 두다리로 나 멀쩡하다는 듯 허세 조금 섞어 버티기 전까지. 


<카운트> / 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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