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la vie(그게 인생이야)

지구 반대편의 여름에서

by 유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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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럽의 여름도 어마어마한 폭염이 이어진다. 해가 갈수록 살인적인 더위가 아닌 곳이 없다지만. 세계 곳곳이 더위로 고통받는다는 뉴스를 보면 가끔씩 8년 전 7월, 프랑스의 여름이 생각난다. 적당히 뜨겁고 밤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괜찮았었는데.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어느 작은 마을의 여름은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을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했다. 아침과 낮, 저녁과 밤이 모두 다른 풍경으로 빛났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프랑스행에 도전했다. 프랑스는 어린 시절 가족 여행으로 방문했던 여행지였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국가라는데 내겐 '극호'인 곳으로 남아서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대학교마다 교환학생, 국제 교류, 해외 봉사 등 세계 여러 나라와 협력하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우리 학교도 프랑스로 문화체험과 봉사활동에 지원할 수 있었다. 서류와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나름 경쟁률이 센 과정이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나는 프랑스에 가기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한 학기에 교양과목으로 들을 수 있는 프랑스 관련 수업을 꾸역꾸역 모두 들었고 서류와 면접도 꽤나 열심히 준비했었다. 결과는 최종 합격. 열 명 남짓되는 선후배, 친구들과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작지만 해냈다는 성취감, 뿌듯한 성과였다.


7월은 지구촌 청년 모두에게 여름휴가이자 배낭여행의 기간이다. 프랑스인만 만날 줄 알고 '봉쥬르'를 열심히 입에 붙여 갔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다니. 영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까지 연습해 올 걸. 우리가 머문 곳은 조금 특별한 공동체였다. 여행자에게 일정한 노동과 숙소를 제공하는 곳이자, 누군가에겐 생활 터전이기도 한 곳.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일하고, 먹고, 놀러 다니며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종종 외국인, 특히 서양인을 향해 ‘오픈 마인드’라는 말을 쓴다. 그 해 여름 프랑스에서 내가 느낀 오픈 마인드의 정의는 꽤 긍정적인 의미였다. 그들의 태도는 그저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내 인생을 줏대 있게 사는 것이었다. 물론 보수적인 인간인 나에겐 많이 개방적인 모습을 가끔 접할 때도 있었지만 뭐 어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선이 아니라면 그냥 '너는 그런 삶을 사는구나'하고 넘어가면 된다. 어쩌면 관점과 시야가 넓어진 여행자에게 주어진 특권일지도. 그곳에서 얻은 용기는 '정해진 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니까.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졸업을 해야 하고 취직을 해야 되는 게 벌써 걱정이야."

"왜 벌써 취직 걱정을 해? 네게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는데."


갈색 눈을 빛내며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이탈리아 남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경쟁 시스템과 이 사회의 성공 기준에 대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건 너희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하기엔 또다시 묘한 반항심이 생겼다. 아니 그냥 귀가 얇은 건가.


"따지고 보니 억울하네, 네 말이 맞아. 걱정은 미뤄 두자! 나는 할 수 있을 거야! “

“이탈리아인인 나와 한국인인 네가 프랑스에서 만날 줄 몰랐잖아. 그게 바로 인생이야. “


목적 없이 무작정 여행 중이라는 사람, 환경 보호에 관심 있다는 사람, 요리사가 되겠다는 사람... 저마다 다른 생각들과 저마다 다른 인생을 안고 모였다가 또 흩어지던 7월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도 안 되게 눈부시던 피레네 산맥이 펼쳐진 조용한 마을 풍경. 그런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내 고민 따위는 하찮아지는 법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다시 꽉 막힌 이 사회에 맞추어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아갈 것을 알았지만 그곳에서만이라도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길이 있다는 걸 누군가의 잔소리가 아니라 직접 피부로 느꼈던 나날들. 그렇게 프랑스에서 배운 태도를 몸에 새긴 덕분에 조금은 용기내고, 때로는 쿨하게 살 수 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프랑스에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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