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슬퍼할 겨를이 없어
006.
여름에 하는 이별만큼은 피해보자고 다짐했다.
'이 여름만 지나면..'
'지금은 여름이니까..'
이런 말들을 되네이면서 이별을 미뤘다.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도, 익숙한 도시와의 이별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이렇게 화창하고 싱그러운 날에 마음마저 슬프면 더욱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언제 한 번 내 맘대로 인생이 흘러갔던 적이 있던가. 여름에도 헤어짐은 찾아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연둣빛 조명이 빛날 때. 내 마음을 대변하는 이별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세상이 모순과 부조화로 무너질 것 같다. 이토록 눈부신 세상에서 나 혼자만 땅으로 꺼져가는 느낌. 오색찬란 화창한 거리를 걷는 단 한 명의 흑백 여인.
그 해 7월의 이별은 숨 막히는 열대야를 내 눈물로 더 적셔 꿉꿉하게 만들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상대를 향한 분노가 더해져 나는 온 우주의 태양보다 더 활활 타기도 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상처를 줄 수가 있어. 너 따위가 내게.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비참함으로 끓어오르는 불덩어리를 끌어안고 여름밤을 지새웠다.
애석한 여름.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름의 장점은 역시나 낮이 길다는 것. 감정 덩어리만 남았던 밤은 금세 지나고 아침을 맞이할 준비도 안 되었는데 뜨거운 태양이 정신 차리라고 일러준다. 모든 게 싫지만 여름의 이별에서 마음에 드는 건 딱 하나, 계절에 힘입어 회복을 빨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으나 그만큼 빨리 일으켜 세우는 계절.
밤이 짧으니 다행히 상대에게 질척거리는 연락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는 시간도 짧았다. 슬프디 슬픈 노래를 들으며 감성에 취하고 싶었으나 당장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이 성가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우면 슬픔이 줄어든다.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다.
무더위 속 이별은 다행히 짧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아름답게 남겨주자. 빛나는 계절에서 눈물바람은 최대한 피해보자. 어떤 이별이 준비가 되었겠느냐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