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래

by 대한극장옆골목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좋았던 건 '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대사다. 집에 홍수가 나서 학교 체육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도 젊었을 땐 나름 계획이 있었지만,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가혹하고 부지런히 선물해 줬다. 나는 그런 아빠가 참 무계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계획을 세우길 좋아해서, 실행보다 계획에 더 시간을 쓰는 타입이다. 언젠가 아무 계획도 안 세우겠노라 다짐하며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가도, 가이드북을 사서 밤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냥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 시작하기가 무서워서 뭉그적거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시작도 전에 계획에 매몰되기도 했지만,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뒤돌아보니, 잘 풀렸던 일은 대부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일이 아니라,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우연히 내게 다가온 일. 그냥 재밌어 보여서 가볍게 시작한 일. 누군가 추천해 줘서 별생각 없이 해봤던 일. 이런 일들이 내 삶을 변화시켰다. 내가 처음부터 각 잡고 고심해서 계획을 세웠던 일 대부분은 금세 고꾸라졌다.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 세상은 상충하는 모두의 계획으로 가득한데, 어떻게 내 계획만 온전히 성공할 수 있겠어.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을 계획이라면 나를 괴롭히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둘까. 그렇다고 '아저씨'처럼 오늘만 살 수는 없다. 다만 삶을 계획이라는 틀에 너무 욱여넣지 말고 흐르는 대로 놔둬볼 필요가 있다. 머릿속이 계획으로 가득하면 지나쳐 가는 새로운 기회와 영감을 보지 못한다. 예기치 못했던 행운이 계획을 벗어난 스트레스 요인으로만 보인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니까 계획은 적당히 세우자. 어차피 내 계획은 제일 좋은 계획이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