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진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왜?'라는 질문이다. 단도처럼 짧고, 날카롭고, 효과적으로 폐부를 찌른다. 기습적인 공격에 답변자는 당혹스럽다. '왜'라고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있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왜? 왜? 왜?" 생각의 틈 사이로 연속 공격이 들어온다. 알고도 못 막는 가드 불능기. "그니까 왜냐고 오오~!" 결국 폭발한다. "아휴, 빨리 밥이나 먹어!"
마치 감탄사와 같은 짧은 말인데, 꽤나 있어 보이는 질문이다.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탐구하는 듯한. 괜히 철학적인 듯한. 이 짧은 질문을 받은 사람은 긴 답변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게다가 답변하지 못하면 스스로 무지함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화가 난다. 그래도 모르는 건 죄가 될 수 있지만, 질문하는 것은 죄가 아니잖아. 최선을 다한 질문자는 괴로워하는 답변자를 흥미롭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답변을 하면? 다시 '왜?'라고 하면 된다.
'왜'라는 질문은 왜 하는 걸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과에 대한 직관이 있는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떠한 원인은 '반드시' 결과를 만든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를 철석같이 믿는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행동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 기저에 있는 의도를 파악하려 한다. 그런데.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는 객관식 보기에서는 '반드시'가 들어있으면 꼭 그게 답이더라.
우리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상호작용으로 가득한데, 그중에서 단 몇 가지 이유를 추려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 있는 거다. 그래서 뭐든지 의미를 찾아내려 하고 결과에 원인을 가져다 붙이기 바쁘다. 그것이 팩트든 아니든 자신이 납득하면 그걸로 충분해한다. 그렇게 왜라는 질문과 그럴싸한 답변으로 자신이 인지하는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마지막으로, '왜'라는 궁극의 기술에도 반격기는 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차피 답은 우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