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좋았다

by 대한극장옆골목

나는 조용한 극장이 좋다. 멀티플렉스는 지점이 많아서 어디서나 가깝고, 식사나 쇼핑까지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오늘 뭐 하지? 영화나 볼까?"하고 가면 딱이다. 하지만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땐 조용하고 사람이 적은 극장을 찾는다. 학생 때는 종로에 있는 서울극장에 조조 영화를 보러 많이 갔다. 내 닉네임에 있는 충무로 대한극장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극장이기도 하다. 신도림 씨네큐는 멀티플렉스치고 사람이 적어서 좋아한다. 이런 극장들을 가다 보면 가끔 관객이 너무 없어서 문을 닫는 거 아닌가 싶어 은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코미디 영화는 사람들이 많으면 같이 웃으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집중해서 보고 싶은 영화는 조용한 영화관이 낫다.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상영관 하나를 한두 명이서 전세 내기 일쑤였다. 서울극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영화를 의도치 않게 어떤 아저씨와 단둘이 본 적이 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저 뒤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알아채는 게 싫어서 안우는 척했다. 나오다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마주쳤을 때 어찌나 민망하던지. 평점은 안 좋아도 이 영화는 나에게 소소한 추억과 함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 혼자서 대한극장에 '황해'를 보러 간 적도 있다. 물론 그 당시 솔로였다. 나홍진 감독에 하정우, 김윤석 배우인데 고민할 게 뭐 있겠나. 그런데 영화 내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훠얼씬 어둡고 음울했다. 엔딩도 그랬고. 영화가 끝나고 한층 가라앉은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내 뒤에 어떤 커플이 있는 게 아닌가. 나야 그렇다 쳐도 한껏 멋을 낸 커플이 이브 아침부터 '황해'라니. 하정우가 어떻게든 사람 하나 죽이겠다고 전전긍긍하고, 김윤석이 족발 뼈다귀로 사람들 뚝배기 깨는 영화를. 여자분의 표정이 심히 좋지 않았다.


어디 이 뿐이랴. 극장에서의 추억은 영화를 볼 때마다 하나씩 쌓인다. 팝콘 냄새와 시원한 콜라. 영화 시작 전 나오는 리더필름에 올라가는 기대감과 흥분감. 영화가 끝난 뒤 맛있는 식사, 그리고 함께 나눈 영화 이야기. 그런 추억들이 그립다. 마지막으로 극장에 간 적이 언제인지. 2020년 1월 1일에 새해 기념으로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그다음 주쯤 '나이브스 아웃'을 봤다. 그게 마지막이니 벌써 1년도 더 됐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서 다음번에 가면 상영권을 대량으로 할인받아서 사려고 했는데. 만약 샀으면 1년 동안 하나도 못쓸 뻔했지 뭐야. 물론 극장에 다녀온 친구들 말로는 사람이 워낙 없고 띄엄띄엄 앉아서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선뜻 발이 떼지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보는 맛에 길들여졌나 보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극장에서 빅 스크린으로 볼만한 영화가 아니라면, 나간 김에 영화나 한편 볼까 하는 게 아니라면, 극장에 선뜻 안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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