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가지고 싶다

by 대한극장옆골목

이번에 거실 PC에 하드디스크를 추가해서 용량이 많이 생겼다. 깔끔하게 비어있는 드라이브를 보니 무언가 채우고 싶다. 비어있는 걸 보면 채우고 싶은 본능인지. 무언가를 소장하고픈 욕구인지. 그래서 틈나는 대로 -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 영화 쇼핑을 즐긴다. 하드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영화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아직 구입해놓고 보지 않은 영화들이 산더미인데 말이다. 심지어 나는 OTT를 세 개나 구독하고 있다. 넷플릭스, 왓챠에 티빙까지. 여기선 새로운 영화와 드라마가 경쟁하듯 쉬지 않고 올라온다.


계산을 해보자. 한 달에 볼 수 있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영화를 정말 정말 보지 않는 한, 그때그때 보고 싶은 영화를 구입해서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그래도 수많은 영화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편리하다. 그 많은 영화를 개인이 모두 구입하기엔 어려우니까. 그리고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가지고 싶다. 영화를 소장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OTT로 서비스되는 영화들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서비스를 해지하는 순간, 더 이상 그 많은 영화들을 볼 수 없다. 계약이 종료되는 많은 영화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다. 새로 서비스되는 작품들은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지만, 종료되는 영화들은 그렇지 않을 뿐이다. 결국 영화가 무한정으로 공급되고 소비자가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은 소비자가 느끼는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영화가 하나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하면 소비되고 잊히는 소비재가 되는 것이다. 언제나 터치 한 번으로 보고, 금세 잊히는 영화들. 음악도 그렇잖아. 원할 때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CD를 살 필요가 없고. 특정 곡을 콕 집지 않아도 내 기분에 맞춘 노래를 알아서 무한정 틀어주니 따로 노래를 기억할 필요가 없고.


하지만 내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실체에는 내 감상과 추억이 담긴다. 손에 만질 수 있는 물건이면 더 좋다. 누군가와 함께 본 영화관 티켓. 그 극장에서 나눠주던 영화 팸플릿.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영화의 포스터. 그리고 어렵사리 구했던 한정판 DVD와 블루레이. 거기에는 영화뿐 아니라 내 이야기가 있다. 영화관에 가던 길, 같이 영화를 본 사람, 그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었는지. 우리 집 침실에는 '원 데이' 대형 포스터가 있고, 장식장에는 '피아니스트의 전설' OST CD와 굿즈(엽서)가 있다. 나에겐 큰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다. 이런 소품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가 잠시 잊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를 그때로 데려간다. 그렇게 나만의 영화를 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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