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제일 관심 있는 캐릭터는 '고지라'(고질라)다. 그 공포스럽고 늠름한 자태가 참 멋있다. 마치 공룡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랄까. 1954년작 '고질라'는 '킹콩'(1933)처럼 스톱모션으로 촬영하려고 했으나, 워낙 예산과 일정이 빡빡한 탓에 미니어처 세트에서 고무 슈트를 입고 촬영했다. 그 결과 고질라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일본 특촬물의 원조이자 괴수 영화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다. 이후 나온 후속작과 리메이크판을 합치면 서른 편이 넘는다.
최근에는 괴수들을 내세운 시네마틱 유니버스 '몬스터버스'에서 새롭게 리메이크되었다. 할리우드 물을 먹고 근육 돼지로 변했는데 CG 퀄리티가 엄청나다. 1998년에 폭망했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을 '고질라'(2014)에서 되살리고,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에서 괴수 선물 세트를 보여주더니, 이제 고질라는 '고질라 VS. 콩'(2021)에서 콩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던 고질라가 아니다. 이 세계관에서 고질라를 포함한 괴수들(타이탄)은 고대부터 존재한 생명체로 인간들의 핵실험과 환경 파괴로 화가 매우 많이 난 상태다. 그런데 자연의 균형을 맞춘다던 고질라는 인간의 편에서 다른 괴수들과 싸운다. 심지어 주인공과 눈을 맞추며 교감까지 한다. 자연의 균형은 우리가 제일 많이 깬 것 같은데.
원작 속 '고질라'는 인간에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재앙이었다. 서구의 잦은 핵실험으로 인해 깨어난 고질라는 일본을 초토화시킨다. 온몸으로 방사능을 내뿜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질라는 일본을 초토화한 핵폭탄을 의미한다. 세리자와 박사는 우연히 산소의 파괴력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한 강력한 폭탄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를 발명하게 된다. 그는 고뇌한다. 신무기는 고질라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지만, 세상에 공개되면 분명 세계적인 전쟁에 이용될 터. 그는 결국 설계도를 모두 태우고, 하나뿐인 폭탄을 고질라에게 발사한 뒤, 본인 또한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보고 후회했다던 아인슈타인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결국 고질라는 핵무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와 상처를 이야기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핵무기가 사용된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죽었고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다. 분명 그것은 비극이었고 일본인들에게는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분명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처럼 고질라가 아무 죄 없는 일본에 화풀이한 게 아니다. 그 사건에는 분명 자신들의 만행에 대한 책임 또한 담겨있는 것이다. 반성은 쏙 빼고 자신들을 피해자로만 보는 관점은 60년이 지나고 새로 리메이크한 '신 고질라'(2016)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보니 고질라가 마냥 좋게만 보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