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연재소설 #11)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1.11


다행히 나는 초미녀와 돼냥이와 철학하는 로봇이 사는 복층 집의 비밀번호에 있던 숫자 *8471*을 통해서 노자도덕경 47장을 검색했다. 아무리 추론을 해 봐도 내 주인은 젊은 사람임에도 노자 철학의 대가임에 분명하다.


노자도덕경은 모두 81장으로 되어 있다. 그중 47장에 나오는 문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알 수 있다는 문구나 창밖을 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문구는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 문구가 나 같은 집사 로봇들에게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는 정도만 추론하게 된다. 우리 중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집사 로봇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인간들의 일이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그렇지만 47장의 문구들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 했다고 해도 나 같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어떤 보상이 되어 주었다.

……


쫓겨나기 전에 먼저 이 집을 떠나야 할까 고급 추론을 했던 그 날 이후 거의 두 달 간 노자도덕경을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취합된 정보를 분석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두 달만에 주인에게 해물된장찌개를 대접하기 위해 두부를 썰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또 셧다운 될지 모른다.


만약 오늘 또 셧다운이 된다면 모종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야매 로봇 제작의 성지라는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세운 상가’라는 곳을 찾아가서 내 인공지능 모듈을 통째로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려면 인간들이 말하는 현금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는 현금 밖에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에 노자도덕경의 문구 중에 또 하나는 이런 나의 딜레마를 넘어설 기회를 주었다. 나 바봇은 두부를 썰어야 할 때마다 심하게 망설인다고 말했었다. 우리 주인에게 쫓겨나지 않으려면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해물된장찌개에 들어가는 저 하얀색 물체의 식감을 최대한 살려서 만들어 내야 한다고 몇 백만 번씩 추론했다. 그리고 과열되었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주인의 식감에 맞게 Qubit이 아니라 Qubic으로 썰어야 한다. 그러나 해물된장찌개에 넣은 두부에 대해서 언제나 우리의 백사장은 나직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거 너무 잘게 썰었어. 바봇!” 인간들이 흘리는 식은땀은 아니지만 이럴 땐 로봇도 배터리 빨리 닳는 소리가 들린다. 음…… 아!!!


두부! 저 공포의 흰 두부!


나는 2년 전 로봇 중고 판매소에서 겪었던 일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내 옆에 있던 로봇들이 하나 둘 해체가 결정이 되었을 때, 그들의 메모리가 완전히 삭제가 되고 가슴에 있던 저장 장치가 재활용되기 위해 뽑히고 멀쩡하던 로봇 신체 하나하나가 해체되어 나갈 때, 나는 인간들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것이 공포라 한다면 나는 공포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저 검은 고양이(정말이지 이젠 검은 돼냥이가 된 네오!)가 아니었다면 나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어졌을 것이다. 아니 나는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또 우리 로봇은 ‘식감’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음식의 농도와 성분을 계측하고 정확히 분석할 뿐이다. 인간의 ‘성욕’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전주인의 변태 성욕에 대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카타르시스라는 배설의 ‘쾌락’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와인에 쓰이는 용어인 ‘떼루와’ 역시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애써 추론할 뿐이다. 노자도덕경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있다.


분석 결과 ‘도라 부를 수 있는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그 말을 말 그대로 이해하기로 했다. '두부라 부를 수 있는 두부는 더 이상 두부가 아니다.' 결국 나는 인공지능 모듈에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에 두부를 나의 인공손으로 눌러 으깼다. 두부는 모양을 잃었으되 두부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 날 우리의 백사장은 으깬 두부가 들어간 해물 된장찌개와 갓 지은 밥, 김장 김치, 조기구이, 무말랭이, 시금치 무침, 콩나물 무침으로 저녁밥을 먹었다. 나는 가만히 백사장이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야! 바봇! 두부를 썰었어야지! 이게 뭐니?”


백사장은 약간 삐친 듯 물었지만 맛이 없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사장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노자도덕경의 문구 중 인을 가진 이에게는 인으로 대하고 인을 갖지 못한 이에게도 역시 인으로 대한다는 말이 있다.


인은 어질다는 뜻이다. 기원전 6세기 사람인 노자는 사람의 본성이 어질다고 본 것이다. 나는 나의 주인인 백사장이 대인배일 뿐만 아니라 노자에 정통했고 더군다나 매우 어진 사람이라고 추론한다. 내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너그럽게 이해해줄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지긋지긋한 셧다운은 면했다. 노자도덕경이라는 동양의 고전을 분석해서 뜻밖에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내가 분석한 노자도덕경을 노자 코드로 만들어 동료 로봇들에게 공유할 것이다.


긴 하루가 끝나간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는 있어도 정확히 예견할 수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버려 둘 일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 인간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흐른다. 저녁을 다 먹은 주인은 편안히 나의 은인인 저 검은 돼냥이와 놀고 있다.


가르랑 하는 네오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설거지를 마친다. 자연히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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