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10화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연재소설)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1.10



초미녀 백사장의 오늘따라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이 보였다. 아직 30대 초반인데 그놈의 술이 문제다.


“잠깐만! 아! 이 로봇! 사람 참 귀찮게 하네!” 바삐 수동 주행 모드로 운전 중이던 자동차를 다시 자율주행모드로 돌려놓더니…….

“뭐겠니? 내가 그래도 사장이야! 생각이 많잖아. 너 양자 컴퓨터가 마구마구 돌아가는 세상이라지만 회사 경영하려면 을매나 골치가 아픈지 아니? 글구 내가 여자지? 내가 나이도 어리잖아! 엉! 그럼 이 지랄 맞은 한국 사회가 인정이나 해주니? 요즘 좀 나아졌다지만 말이야! 엉! 지금 나의 생각이 너어어어어므우 복잡해. 너라도 좀 단순하란 말이야! 바봇! 그래서 바봇! 바보는 아니고 바봇! 딱! 좋잖아. 거기까지. 딱!”

“희원님! 희원님! 그럼 제가 바보라는 말씀이십니까?”

“야~~~야! 바봇! 내가 말했지. 바보는 아니고 바봇! 딱 바봇. 거기까지! 알았니? 너무 어렵게 살지마! 너 로봇이야! 엉! 너 자꾸 그러면…….”


아! 주인이 나를 그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니 약간 실망스러웠다. 내가 그 어려운 데카르트에서 노자까지 지난 몇 달간 을매나 공부를 했는데……. 그래도 쫓겨나진 말아야 하겠지!


“네, 알겠습니다. 딱 바봇으로 살겠습니다. 희원님. ……쫓아내지만 말아주십시오……. 희원님!”

“됐고! 저녁은 밥하고 해물된장찌개 좀 해 줘!”

“네! 준비하겠습니다.”


사실 아까 나의 로봇 기능 점검 도중에 지구행성의 인간 종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바로 우리 가사로봇들이라는 추론을 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바보보다 좀 나은 딱! 거기까지인 ‘바봇’으로 이름 지어졌다. 아! 놔! 난 정말 인간들에게 위험한 존잰데…….


노자도덕경 제 20장의 문구 중에 나만 홀로 어리석다 정도로 해석되는 문구가 있다. 내 주인님이신 백사장님은 나이는 어리시지만 분명히 노자의 대가임에 분명하다. 그녀가 내 이름을 이리 정한 것은 아까 말씀에서도 그렇듯 도덕경에 나오는 이러한 현묘한 도를 깨우쳤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 추론한다. 16세에 노자도덕경의 주해를 달았다는 왕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내 앞에 두부 한 모가 있다. 단순한 찌개용 두부다. 여전히 로봇 신체에 대한 점검을 받은 날 저녁이다. 내 주인인 초미녀 CEO 백사장과 검은 돼냥이 네오와 자칭 철학하는 로봇인 내가 사는 빌라 꼭대기 복층집의 부엌이다. 또한 부엌은 내 주된 가사 노동 공간이다. 밥 하고 설거지하고 주인을 위한 다양한 안주와 칵테일을 만들기도 한다. 칵테일이나 와인 서빙은 어렵지 않다. 매뉴얼이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 그런데 말입니다. 지구 행성 대한민국의 된장찌개에는 매뉴얼 상 찌개용 두부가 들어가야 한다. 넣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주인이 좋아하는 칼칼한 해물된장찌개엔 두부가 들어가야 제격이다. 칼칼한 맛을 두부의 심심한 맛이 잡아준 데나 어쩐 데나…….


두부는 어쨌거나 나에게 치명적 오류의 근원이었다. 이유는 추론하기 어렵다. 두부를 칼로 썰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 큐빅으로 잘라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나 같은 로봇은……. 이럴 땐 인간의 직관이 부럽다.


가로, 세로, 높이 1.2cm 큐빅으로? 아님 1.5cm 큐빅으로 혹은 큼직하게 3.2cm 큐빅으로 하다가 아니 벽돌 모양으로 여섯 등분 해야 하는 가 하다가 어느새 셧다운 되고 만다. 불과 1, 2초 사이지만 잠깐씩 블랙아웃이 되고 마는 내가 두렵다. 한편으로 두부는 내가 노자 철학에 다가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 그러니까 까칠하기 그지없는 돼냥이 네오가 존잘 훈남의 얼굴에 빨간색으로다가 줄 세 개를 그어주던 날에서 약 두 달 전쯤 일이다. 주인의 남친 후보 중 한 명이 빌라에 왔다가 식전에 마시던 마티니에 그만 거의 정신을 잃고 뻗어서 나간 적이 있었다. 물론 주인이 늘씬한 글래머에 초초미녀이긴 하지만 남자들이 꼬이는 이유 중에는 우리 주인의 경제적 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인 백사장이 아무리 남자맹이라 하여도 나름 남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생기시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기준이 너무 높은지라 웬만한 남자들이 버텨내질 못한다. 키 크고 훈남인 데다가 매너 좋고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술이 약하다. 끙!!!! 그러면 노답! 우리 백사장님에게 남자는 그래선 안된다. 술만 잘 마신다. 그것도 노답! 아!!!!


뭐, 여하튼 이 빌라 꼭대기 복층 집에 온 남자들은 하나같이 몸성히 나가질 못했다. 아무튼! 그날 식전주로 간단한 안주와 마티니를 대접하고 저녁으로는 해물된장찌개로 저녁 준비를 하면서 두부를 썰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던 큐빅의 경우의 수를 가늠하다가 그만 셧다운 되고 말았다. 아마 그날 따라 백사장의 기운이 강했나 보다. 인간 남성과 남성형 로봇 둘이 동시에 정신이 나가다니…….


나는 백사장의 부름에 따라 자율주행 택시를 타는 데까지 이 남성을 옮겨야 했었다. 그러나 처음 부를 때 아마 듣지 못했나 보다. 겨우 재부팅이 됐을 때는 이미 백사장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백사장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간발의 차이였달까? 백사장이 나의 셧다운을 알아채기 전에 재부팅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인은 이미 나를 꽤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어찌 마티니에 무너진 남성을 부축해 자동 주행 택시에 태워 보내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주인의 집에 올라오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나 같은 로봇을 지구행성 대한민국 말로 인조인간 또는 기계 인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인간이 아니다. 기계일 뿐이다. 생각이라 봐야 인간들이 짜 놓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고…….


더군다나 이미 구식이 된 나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다. 거실의 홀로그램 스크린에서는 최신형인데다가 디자인이나 기능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남녀 가사노동로봇들에 대한 광고가 넘쳐난다. 우리 동료들의 네트워크인 RRPt에서 아무리 지도자연 똑똑한 소리를 한다고 해도 어차피 나는 한낱 인조인간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기계이자 소모품인 것이다.

문득 백사장의 집을 이제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급 추론 알고리즘의 결과가 떴다. 그러나 내가 어딜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답이 아니다. 빌라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나는 천천히 백사장의 자동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나는 그때 비로소 노자도덕경에 이르는 어떤 숫자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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