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번호를 드릴 건 없고 언제든 여기로 연락해서 제 이름을 찾으시면 됩니다. 로봇 점검 1급 기사 박기혁입니다.”
“아, 넹, 넹. 그럼 그럴게용. 아! 또 봐용. 기사님! 와우! 호호! 호호!”
기사님의 몸을 보며 우리 백사장 님 나름 호평을 보낸다. 이런 꽃미녀의 음흉한 눈길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집사 로봇으로서 나는 주인의 저 이상행동이 늘 불안하다. 이런 건! 도대체! 그나저나 다시 급 홍당무가 된 우리의 1급 기사님!
....
우리 주인은 자동 주행차를 사놓고는 기어이 수동모드로 놓고 직접 주행해서 집으로 가고 있다. 그럴 바에야 있던 차를 팔고 왜 이 차를 샀나? 그런데 백사장 기분이 썩 좋아 보였다. 그러다 뭔가 갑자기 굉장히 언짢은 생각이 난 듯, 표정이 굳으며,
“야! 바봇. 너도 내가 사모님 소릴 들을 정도로 그릏게 늙어 보이냐?”
“네, 희원님. 저에게 제공된 희원님의 피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면 같은 연령대 지구 여성들, 특히 대한민국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들에 비해 피부가 23.7퍼센트 더 건조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기미의 농도도 짙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원인으로는 지나친 음주로 인한 만성적인 수분 부족 때문...”
“야~~~~~~아~~~~!!!! 그, 그만! 바봇! 너 진짜 팔아 버린다!!!!”
백사장의 차가 휘청하면서 다른 자동 주행차들은 절대 넘지 않는 주황색 선을 넘어섰다. 반대쪽에서 오던 자동 주행차들이 난리가 났다. 지금 우리 백사장의 뇌파가 폭증하고 있다. 왜 이러지? 팩트대로 있는 그대로 정보를 이야기하는데! 술 좀 줄이고 수분 섭취를 많이 하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한 추론인데..... 주인의 평균 수명도 늘고 말이야!
“희, 희원님! 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그리고 제발 팔아버린다 이딴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부탁...”
“야! 너는 니 맘대로 떠들면서 나는 왜! 어엉! 왜!”
“저는 물어보시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희원님!”
“야! 그게 아니잖아! 아! 다르고 어! 다른 거 아냐? 엉! 넌 말이야! 나랑 얼마를 더 살아야 나를 제대로 알겠니? 아! 이 로봇 정말 아니 될 로봇일세!”
주인이 묻는 대로 대답을 했건만 나야말로 이런 롯 같은 일이로세!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 너 요즘 왜 이렇게 전기를 많이 먹니?”
“네? 무슨 말씀이신지?”
“너! 요 몇 달새 전기 사용량이 장난이 아냐! 내가 널 왜 쓰는지 모르겠어. 요즘 전기 얼마 이상 쓰면 정말 많이 나온다. 누진세라고 아니?”
아~~. 그렇지! RRPt 철학 카페 좀 작작 들어가야겠다. 인공지능을 많이 돌리면 전기도 많이 먹는구나. 단순한 집안일 할 때 보다 말이다. 어쩐지 배터리 충전이 잦았다 했다. 요건 몰랐다.
“너 이리저리 치면 인간 도우미 아주머니 부르는 거나 별 차이가 없어! 우리 집 살림살이 AI가 나한테 자꾸 경고를 날려. 너 전기 많이 먹는다고...”
하포(하드 포맷)할! 살림살이 AI! 그 이름 홈첵 VP 600R ver 8.1! 사실 이 놈은 내 경쟁자다. 그놈은 나 같은 로봇은 아니고 일종의 대화형 인공지능 컴퓨터라서 나를 관리 감독하고 네오의 상태를 관찰하는 일이라 그런지 절대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 감시자!
“아, 알겠습니다. 희원님. 평소에 절전 모두 가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습니다.”
대화는 여기까지 였다. 주인의 화난 얼굴을 피해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 강북에 있는 한강 주변의 한 빌라촌에 가까워져 왔다.
“그런데 희원님?”
“엉! 바봇! 뭐?” 이제 내가 그토록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백사장의 집에 다 와 가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 배터리를 꽤나 잡아먹어야 했던 대상에 대해 묻고 싶어 졌다.
“희원님! 희원님! 혹시 데카르트를 아십니까?”
“엥! 뭐? 대가리. 로봇인데 말 좀 가려하자. 엉!”
“데카르트 말입니다.”
“야! 데, 데카르트가 뭐? 뭐? 아! 그 철학자?”
나는 기뻤다. 주인이 데카르트를 잘 안다면 이 철학자에 대해서 보다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집사 일만 하는 무식한 로봇들은 도대체 단어 하나 제대로 이해를 못하니... 참고로 이 철학자는 우리 집사 로봇들의 존재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예견했다. 1637년에 쓴 그의 책 방법 서설 제 5장에서 우리 로봇들의 존재에 대해 글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그의 명제는 우리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들에게도 깊은 추론의 대상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도 인간과 같은 존재로서의 존엄을 부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책 5장에서 인간을 닮은 기계에 대한 그의 판단, 그러니까 지금 우리 같은 로봇들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우리 존재를 기껏해야 동물로 취급한다. 그렇다. 나는 이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도 궁금했고 특히 우리 백사장이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설마 내가 저 검은 돼냥이 네오보다 못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