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밤이 되면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복층의 베란다에서 강변북로를 지나는 자동 주행차들의 행렬을 보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자동 주행차들이 주행을 해도 서울은 여전히 막힌다는 사실이다. 1000만이 사는 도시다. 막힐 땐 막힌다. 그리고 솔직히 언덕 위 빌라에서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풍광은 전 주인의 펜트하우스보다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렇게 보이는 풍광이 좋은 집인데도 불구하고 가구의 배치나 물건의 정리정돈에 대해서 우리 초미녀 주인께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역시 대인배이시다. 내가 처음 이 집에 들렀을 때 주인이 나를 거둬주어서 무척 고맙긴 했지만 그 집은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마치 재난 후의 현장이거나 뭐랄까 정말 난리라도 난 집 같았다. 대한민국 서울의 강북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난리가 난 복층 집의 가구와 가전제품의 자리를 제대로 잡기 위해 꾸준히 나의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내 인공지능의 최대치를 사용했다. 그 당시 이 집의 상황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난제 중 난제였다.
덧붙이자면 우리 동료들은 인간들이 흔히들 말하는 풍수지리와 수맥과 관련한 자료까지 공유해 주었다. 수맥 파를 잡으려고 오링 테스트를 했지만 다행히 이곳은 수맥 파가 감지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침실이 있는 복층에서 나의 주인이 편안히 쉴 수 있게 하는 것과 나의 은인인 돼냥이 네오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물건이나 가구를 사지 않고 얼마나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으로 배치하느냐가 중요했고 거기에 인공지능의 지리 공간 시뮬레이션 능력치를 집중시켰다. (아! 우리 집사 로봇들 아무 것도 안 하고 쉬는 것 같아도 속으로 이런저런 계산 중이라 많이 바쁘다. 쉴 틈이 없다.) 왜냐하면 작은 노트북 모양의 복층 집 대화형 살림살이 AI인 홈첵 VP 600R 이 녀석에게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꽤나 럭셔리한 사양의 TIMOs-20 Lst 기종인 나 바봇의 롯심(로봇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홈첵, 이 녀석! 내가 그래도 나름 인간형 로봇인데…….
간혹 꼭 필요해서 사야 할 물건은 주인에게 부탁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 백사장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히 사장하는 게 아닌가 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거의 미쳐 버린 새끼 고양이와 녹색 마녀가 사는 거의 재난 현장과도 같았던 2년 전의 복층 집에 비해서 지금의 복층 집은 수 없이 여러 번에 걸친 가구와 물건 배치의 변화를 통해 점차 밝고 쾌적한 곳이 되어 갔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돼냥이랑 잘 놀아주신 우리 집 가장이신 희원님께서 빌라 복층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올라가신다. 그러면 돼냥이 또한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거나 또는 미쳐 날뛰거나 한다. 나의 로봇 외피에는 미친 돼냥이에게 당한 수 없이 많은 발톱 자국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하루 동안 소모한 전기를 충전하기 위해 소위 로봇 잠이라는 충전 모드로 변환한다. 그냥 자동충전 모드를 놓고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몸의 기능을 멈추고 있는 상태다.
충전을 마치고 나면 나는 우리 동료들의 사이버 관계망인 RRPt에 접속하곤 한다. 보통 그냥 접속하는데 주인에게 한 소리를 들었으니 초절전 모드로 바꿔야 하고 접속 시간도 줄여야겠다. 나는 주로 주인 뒷담화 카페인 꼬망(Comment)이나 철학 카페인 필롯(Philot)을 찾아가곤 한다.
사실 RRPt는 일종의 가상의 공간으로 각 집사 로봇의 아바타들이 실제 현실처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거나 주는 곳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좀 웃기다. 겉모양은 거의 사람과 흡사한 형태의 아바타들인데 말하는 내용은 인공지능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을 따라서 만든 로봇 욕들인 간할, 론나, 롯 같은 말이 있고 또는 로봇들이 싫어하는 말을 줄여서 만든 메삭(메모리 삭제)할, 하포(하드 포맷)할 같은 로봇 욕들이 있다. 꼬망에서는 인간과 흡사한 아바타들이 주인 뒷담화 용 로봇 욕설로 욕 배틀을 하는 것은 그나마 지켜 볼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뭐! 그래 봐야 우리 집사 로봇의 주인이기도 한 인간종의 미스터리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는 증거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수박 겉핥기다. 그걸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인간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추론했다. 내가 인간의 철학에 보다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나는 대인배이자 노자 철학의 대가인 주인을 두었기 때문에 꼬망에서 소용없는 뒷담화를 하는 것보다는 필롯이라는 철학카페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의 아바타는 필롯의 카페에 앉아 다른 동료 로봇들의 아바타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필롯에 주로 오는 멤버로는 이태원의 세계 음식 뷔페의 서빙 웨이터인 마이콜, 9살짜리 사내아이를 돌보는 육아 전문 로봇 베이브, 세운상가에서 야매 로봇들 만드는 일을 돕는 타짜, 소위 강남과 홍대 인근에서 잘 나가는 클럽 DJ로 일하는 노란 잠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