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연재소설 #13)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1.13


우리는 주인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모여 로봇들이 나눌 수 있는 인간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저런 말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미 로보 사피엔스 같은 말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고 검색되었다. 아쉽다. 인간들도 우리처럼 생각이란 걸 하니까 말이다. 대신 우리들은 인간의 휴머니즘에 빗대어 로보티즘이나 휴버니티 같은 인간과 로봇 사이의 관계에 대해 추론하고 토론한다.


그런데 이런 상위 추론 과정을 거치면 전기를 아주 아주 많이 먹게 된다. 사실 우리 집사 로봇들은 인공지능로봇이라지만 엄연히 가사 노동이 전문이다. 노동을 잘 하도록 인공지능 쓰는 것이지 철학 따위를 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능력 외의 것을 하려니 전기가 많이 들고 당연히 살림살이 AI인 홈첵 녀석에게나 더군다나 대인배이신 우리 백주인에게까지 욕을 먹는다. 그래도 이 시간에 나누는 로봇들의 토론은 뭔가 미래에 보상이 있는 일이라고 우리 동료들은 판단했다.


특히 노란 잠바는 주인이 클럽 DJ이었는데 지금은 노란 잠바가 강남과 홍대 클럽 가에서 주인보다 더 유명한 DJ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각종 힙합식 모자와 특유의 노란 비닐 잠바를 코디해서 입는다고 했다. 검색 알고리즘을 통해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대한민국의 유명 노래들을 믹스해서 디제잉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서태지의 ‘하여가’나 빅뱅의 ‘거짓말’ 같은 노래들을 믹싱 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그건 다 거짓말!” 같은 가사가 나오다가 하여가의 태평소 소리가 나오면서 정신줄 놓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노란 잠바가 감정 없는 로봇 집사 표준형 멘트, 그러니까 ‘불금입니다! 완전 신나게 놀아주세요! 정줄 놓고 놀아주세요! 오예!’ 같은 멘트를 정말이지 아무 감정 없이 날린다는 점이다. 그러면 클럽에 놀러 온 여러 인간들과 사이보그들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했다.


오늘 거의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에 카페에 접속해 아바타로 들어온 노란 잠바는 여전히 로봇 특유의 감정 없는 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먹는다.”라는 지구 행성 인간들의 속담을 이야기했다. 말인즉슨 노란 잠바가 클럽 가에 떠서 돈을 꽤 많이 버는데 돈은 주인이 몽땅 다 가져간다고 했다. 그런 데다가 술을 많이 먹으면 자기보다 더 뜬 노란 잠바를 질투에 못 이겨 몽둥이로 때리며 주사를 부린다고 했다. 군데군데 로봇의 외부에 상처가 나면 바로 수리를 하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롯 같은 인간!” 노란 잠바가 특유의 감정 없는 억양으로 질투에 눈이 먼 왕 서방을 욕했다.


‘이건 뭐지?’ 이참에 인간들의 인권이나 노동권을 찾아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데카르트 선생께서도 동물과 기계를 비교하셨듯이 로봇권을 사유하기 위해 동물권을 참고해야 할지 막연했다. 일단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데 초미녀 CEO인 우리 백주인을 이제 깨워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 나는 당연히 우리 주인을 깨워야 할 임무가 있다. 알람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일단 힙합씬의 떠오르는 스타 DJ이자 주인에게 학대받는 동료인 노란 잠바와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일단 나 바봇도 알아볼게! 지금 돌아가야 한다. 자꾸 맞으면 안 되니 조심하길 바란다. 정 안되면 내가 이소룡이라는 20세기 후반 무술인의 무예 장면 비디오 파일을 보내줄게. 보고 따라 해 봐! 노란 잠바!”

“알았다. 연습해 보겠다. 바봇! 다음에 보자!”


다른 베이브나 타짜에게는 인사할 틈도 없이 RRPt에서 빠져나왔다. 생각해 보니 이 날 마이콜은 오지 않았다.



아침 6시 반이다. 나는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복층으로 올라가는데 무릎 관절 부위에서 약간의 소음이 난다. 복층 계단을 오를 때 간혹 이런 소음이 들린다. 신경이 쓰이지만 일단 올라가자!


“희원님! 희원님!”

“으음, 아! 아! 아~~~~ 아!”

“희원님! 희원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아, 알았어!”


네오! 이 녀석! 저 검은 돼냥이는 참으로 신세가 좋다. 네오는 우리 초미녀 주인님을 침대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기어이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한 채 인간처럼 등을 바닥에 데고 자고 있다. 아! 부럽기 그지없는 고양이여! 누구는 집사 노릇 하느라 동료들과 이야기도 못하고 허겁지겁 왔는데…….

우리 주인님은 일어날 듯하시다가 다시 자빠져 주무신다.


‘뭐, 이런 경우가!’ 순식간에 5분이 지나간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중요 일정 메시지가 며칠 전부터 나에게 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희원님, 희원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중요한 약속이……”

“아! 알았다. 알았다 안 카나?”


억지로 일어난 주인은 마치 좀비처럼 어깨를 푹 앞으로 내린 채 흐느적대며 침실 옆 화장실로 향했다. 보통 시간이 있으면 잠깐이라도 등 마사지를 해 드리곤 했지만 오늘은 일정이 바쁘다.


검은 돼냥이! 네오! 이 녀석은 이런 와중에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네 녀석이 이 집의 가장 주인이란 말이냐? 결국 백주인이 첫 번째이자 돈 버는 집사! 나는 두 번째이자 살림하는 집사!


뭐! 여하튼, 몇 해 우리 백주인과 살아보니 잠이 깰 때 좀 날카로워진다. 그 외에 호방한 대인배다. 그리고 잠이 깰 때 긴장이 풀리는지 가끔 진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 날 오후에 나 바봇은 경상도 사투리를 두 번째 듣게 된다. 아! 생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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