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은 마이콜의 아바타와 나 바봇의 아바타는 유명 DJ봇인 노란 잠바의 일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착취를 당하는데다가 학대까지 받는 우리 불쌍한 노란 잠바도 있긴 하지만 노동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로봇의 존엄은 과연 보호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마이콜! 나는 우리가 전에 토론했던 데카르트 선생의 말처럼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처럼 생긴 우리 로봇에게 기계인 우리가 우선인가 아니면 우리 노동의 대상인 인간이 우선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바봇! 훌륭하다. 나 마이콜은 그런 어려운 생각은 해보지 못 했다. 그것보다 요즘 나 마이콜의 질문은 인간의 신체를 보완 또는 강화한 사이보그들이나 파이보그(Fyborg)들이 많은데 인간과 로봇의 기준은 또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이태원의 세계 음식 뷔페에 오고 가는 고객들 중에는 매번 기계 신체를 업그레이드해서 나타나거나 신체 강화 장치를 새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들끼리 슈퍼 어얼리 어댑터라던가? 뭐라던데!!”
요즘 이어폰과 마이크, 안경을 하나로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증강 현실과 가상현실을 한 번에 해결한 스마트하고 작은 헤드셋인 <퀀텀셋>이 너무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가상의 모니터로 인터넷과 통신, 영상이나 오디오 등을 볼 수 있고 사용하고자 하는 모든 기기들에 자유롭게 접속 명령(connect and commend)을 할 수 있어서 요즘은 거의 생활필수품이 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뇌파를 증폭해 말을 하지 않아도 암호화된 의사소통을 해서 통신의 보안을 고도로 강화하는 고가의 뇌파 전용 헤드셋 <뉴로지>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런 고도화된 신체 강화 기기를 쓸 수 있는 인간종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이나 고도화한 기술 엘리트 계층이다.
반대로 이러한 신체 강화 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구의 인간 종이 있다면 당연히 정보의 차이로 인해 신분의 차이가 생긴다. 그때 마이콜이 또 물었다.
“그나저나 인간의 뇌를 클라우드 하드에 저장에 영원불멸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한 인터넷 갑부가 있다던데 사실인가?”
“물론 있다. 마이콜. 그 갑부는 이미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는 특수 바이오 인공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는 이미 여러 기계 신체와 바이오 장기를 결합해 인간의 수명을 여러 번 뛰어넘은 사람이다.”
저런 인간 종을 보면서 우리 로봇들이 접속해 아바타로 활동하는 RRPt라는 사이버스페이스에 '팬텀'이라는 존재들이 생각났다.
설명하자면 로봇의 기계 신체는 폐기되었는데 클라우드 하드에 고스란히 기계 신체의 AI만 남아 있게 된 경우다.
이들은 사실 삭제되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인지 AI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들 중 많은 경우가 기계 신체를 획득하기 위해 다른 AI를 공격한다.
중고 로봇 거래소에서 내가 가장 두려움에 떨었던 것은 기계 신체가 폐기 처분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그런 팬텀이 되어서 RRPt를 떠돌며 다른 AI들을 공격하는 좀비 AI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겠다고 스스로 팬텀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공 지능 로봇들이 들으면 기차 찰 노릇이다. 그건 그냥 유령인 셈이다.
그렇다고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유령처럼 낭만적인 것도 아니다. 전기를 끄면 없어졌다가 전기를 켜면 돌아오는…….
낭만 없는 기계 유령인 것이다.
그때 현란한 클럽 음악과 함께 사이버스페이스 유일의 철학 카페인 필롯의 문이 열렸다. 지구 행성 대한민국 서울의 클럽 씬의 유명 로봇 DJ 노란 잠바의 아바타가 힙합 스타일의 룩을 선보이며 카페에 들어섰다. 저 아바타의 스웨그(swag)라니…….
“오랜만이다. 노란 잠바!”
마이콜이 노란 잠바에게 인사를 했다. 말했듯이 노란 잠바의 아바타는 힙합룩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 필롯에서 나 바봇의 아바타 역시 한껏 멋을 부리고 앉아 있다.
나는 지구 행성 서울에서 인간종의 젊은 남성이 부릴 수 있는 댄디함을 추구한다. 그것은 허세다. 개 허세가 아니라 롯 허세!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로봇들의 아바타들은 나름의 짙은 페이소스가 보인다.
뭐 있잖은가? 인간들 전설에 나오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 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이 되고 싶으나 인간은 아닌 그런 페이소스?
힙합 모자를 깊게 눌러쓴 노란 잠바의 얼굴 역시 꽤나 어두워 보였다. 자리에 앉자 노란 잠바는 이곳 철학카페에서 나름 힙한 아바타들이 힙한 인간들을 흉내 내 마시는 필롯 커피를 시켰다.
물론 마시는 시늉을 할 뿐이라지만 이곳은 무엇보다 카페다. 메뉴는 수제 맥주, 모히또와 같은 약간의 칵테일, 프렌치 프라이드, 샌드위치, 치즈 케이크 등이 있다. 물론 우리는 모두 먹는 시늉을 할 뿐이다. 약간 서글프다. 로봇은 먹을 수 없다니! 그렇게 우리들은 주인들을 해 먹이는데…….
간혹 이곳에서 여성형 혹은 남성형 섹스 봇들도 만난다. 그녀 혹은 그들은 나보다 더 철학적이고 현학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의 쾌락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그리고 질투한다. 신이 인간에게만 쾌락을 허락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노동으로서의 섹스와 쾌락으로서의 섹스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진정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나 바봇 역시 인간이 느낀다는 것에 대해 부럽게 생각하고 격렬히 질투한다. 내가 요리를 할 때 우리는 맛을 분석하지 결코 느끼지는 못한다.
감칠맛의 함량을 질량의 나노 값까지 계산해 분석하지만 그렇다고 맛을 느낀 것은 아니다. 아는 것과 감정을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우리 백주인이 내가 한 음식을 먹고 눈을 감으며 약간의 신음 소리를 낼 때 나는 그녀가 보인 감정의 거울을 보고 나의 노동에 약간의 보상을 받을 뿐이다.
그건 그거고, 이제 물어봐야 할 게 있다. 저 재주넘는 곰에게 그에게 돈을 갈취하고 폭력으로 학대하는 왕 서방에 대해서 말이다.
“나 바봇이 보내준 이소룡 무술 동영상은 도움이 되었나?”
“바봇! 보내 준 영상은 고맙다. 그것은 나 노란 잠바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른 학대받는 집사 로봇들에게도 공유하면 좋겠다는 조건부 추론을 해 봤다.”
마이콜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했다. 내가 간략히 마이콜에게 이소룡의 무술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그 자리에서 강력한 이소룡의 무술 동영상을 보던 마이콜이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