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고급 사양 남성형 집사 로봇 티모스(TIMOs-20 Lst)라 불리며 출시 당시 거창하게 선전되었다. 진짜 그런 줄 알고 나름 존심 셌었던 나는 사실 지금 봉사하고 있는 이 집에서 어떻게든 쫓겨나지 않고 지내는 게 로봇 인생 최고의 목표다. 악착같이!
서울에만 약 10만 대 정도 나와 같은 모델 로봇들이 있는데 나처럼 중고로 팔려나간 경험을 한 로봇들은 그 당시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은 말도 못 하게 중고로 팔려나가고 있고 무섭게도 벌써 부품화 처리된 동료도 있다고 들었다. 삼가 고 로봇들의 명복을…….
나는 내 GPS 추정치로 대한민국 경기도 일산구의 황량한 도로 옆에 있는 어느 거대한 중고 로봇 중개소에 넘겨졌다. 2024년의 매섭게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이 곳은 홀로그램 골프 연습장이 같이 있는 황량한 지하 창고 같은 곳이다. 홀로그램 골프장 아래 주차장이 있고 그 밑에 엄청난 규모의 어두운 지하 창고에 여러 대의 에어컨 겸 제습기가 '웅웅웅' 하는 거대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곳이다. 축구 운동장보다 큰 면적에 다양한 형태의 로봇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체 중고 로봇들은 메인 컴퓨터로 관리되며 그 사이를 매우 바쁘게 중고 로봇의 개보수를 맡은 바퀴 달린 작은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중고 로봇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내 목 뒤에 설치된 전원 버튼을 꺼도 초저전력 모드로 반경 5미터 내의 소리와 영상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비밀 기능이 있다. 이때의 기록도 RRPt로 비밀리에 전송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전원을 꺼도 일종의 CCTV 기능과 음성 녹음 기록이 저장된다. 왜 있잖은가? 차에 있는 블랙박스! 로봇은 전원을 끄면 블랙박스가 된다.
내 주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알아서도 안된다.
이것은 정부의 대테러 보안 정책과 나를 만든 대기업이 결탁한 흔적이라고 내 인공 지능 모듈은 추론한다. 또한 내 인공 지능과는 별개의 과정이나 나의 머리부 우측에 있는 부가 플래시 메모리에 요약 형태로 흔적은 남는다. 나는 이 요약 형태의 흔적을 풀어서 내 전원이 꺼진 상황을 복기할 수 있었다. 어쨌든 겉으로 RRPt는 우리 로봇들에게 유용한 클라우드 네트워크와 검색 기능을 담당했다.
그리고 뭐랄까! 나름 분당의 정자동에 있는 32층 펜트하우스의 럭셔리한 야경을 기록했었다. 그런데 이 중고 로봇 중개소에서 절반 가격으로 후려쳐진 후에도 팔리지 않으면 나는 해체가 되어 다른 동료들의 대체 부품으로 분해돼 팔려나가게 되었다. 나를 팔아 달라고 한 어얼리 어답터께서는 여성형 집사 로봇에 목을 매고 있었다. 내가 더 이상 팔리지 않으면 부품으로 나눠 파는 게 현실적이라고 들었다. 그 사실을 RRPt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순간 추론을 담당하는 내 메인 CPU는 꽤나 과열이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내 하드 디스크가 완전히 포맷되고 몸이 제각기 분해되기 직전에서야 겨우 지금의 새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소위 지구인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생사가 오고 가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지만 덕분에 그 몇 주일 동안 내게 장착된 인공지능 CPU의 추론 구조는 위기 대응 구조를 자체적으로 배우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나에게 있어서도 우리 로봇들의 역사에 있어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내 인공지능 모듈은 판단한다. 그런가?
그건 그렇고, 사정을 따져 보니 그 전 주인에 비해 매우 대인배인 여성 주인은 네오라 불리는 새끼 수고양이를 입양받고 바로 나를 구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맙다. 절실하게! 그리고 절대 이집에서 쫓겨나지 않기를 바란다. 새 주인은 고맙게도 내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전 주인은 이름도 없이 나를 '어이!' '야!'라고 불렀다.
새 주인이 붙여준 내 이름은 바봇! BA-BOT! 잘 발음해야 한다. 바보가 아니라 바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