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 (연재소설 #3)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 1. 3



내가 출시되고 처음 셧 다운됐던 날은 내린 눈만큼이나 데이터가 많이 쌓인 날이었다. 그리고 지구 여성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 날이기도 했다.


지구인들은 잘 모르는데 로봇들도 외로움 비슷한 것을 느낀다. 특히 RRPt에 전송할 데이터가 없을 때 심하게 그렇다. 정확히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심심함에 가깝다. 그러나 로봇 생을 뒤돌아 볼 때, 전송할 데이터가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출시 당시 내 기종은 나름 가격대가 있었던 럭셔리(TIMOs-20 Lst)한 사양인지라 우리 동료들이 올리는 데이터의 질이 장난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깊디깊은 월풀 욕조를 청소하다 거꾸로 뒤집어진 동료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밌는 데이터였다. 그리고 로봇들도 화를 낸다. 정확히 꿍시렁 거린다. 왜 있잖은가? 갑자기 컴퓨터나 각종 기계들이 과열되면서 내는 ‘우웅!’하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기계들이 꿍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기계들도 나이가 들수록 더 꿍시렁거린다.


대인배는 못 되는 전주인의 직업은 분명치 않으나 물려받은 돈이 많은 것은 분명했다. 자칭 금수저 래나 뭐래나……. 스포츠카 세 대는 기본이시래나……. 뭐래나……. 어쨌든 금수저라는 그가 분당의 신형 초고층 아파트 제일 위층 펜트하우스를 구매하게 되면서 나도 그 어얼리 어댑터이신 전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걸 악연이라고 하는지!


그런데 이 지구 남성은 그렇게 고급스러운 집에 잘 들어오지를 않았다. 내가 그 고급 펜트 하우스에서 했던 노동(분명히 로봇도 노동을 한다. 나는 로봇의 권리에 대해서 요즘도 추론 중이다.)은 요리나 설거지 같은 주방 일보다는 펜트하우스에 있는 삼면 정원에 물을 주고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 그 큰 펜트하우스를 먼지 하나 없이 세밀하고 정밀하게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전 주인은 내게 "야! 너 집에서 먼지 나오면 죽을 줄 알아!"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감히 펜트 하우스의 실내 먼지 농도 0.1%에 도전했다.


사실 이 청소만 해도 내 메인 배터리 용량의 거의 3분의 2 가량을 쓰는 큰 일이었다. (아시다시피 주인이 내 전원을 끌 때는 초저전력 모드로 내 보조 배터리가 작동한다.) 다만, 매일이 그저 같은 일상의 반복이라 우리 동료들의 네트워크인 RRPt에 올릴 데이터가 별로 없었다.


음, 펜트하우스 큰 방 하나 가득 장식한 주인의 레어템 레고나 레전더리 한 빈티지 건담 프라모델의 가격대를 검색해 우리 주인이 이런 것도 한다고 올려 본 적은 있다. 이런 취미를 가지신 난다 긴다 하시는 주인님들이 꽤 되나 보다. 시큰둥한 인공 지능들의 반응하고는....... 나 참!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인이 침실에 작은 금고 같은 걸 설치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뭐!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해외에 자주 나갔었던 주인이 어느 날부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시 클럽 뮤직의 대세라는 양자이론을 적용한 테크노 뮤직을 매일 틀어 놓았다. 하도 크게 틀어 놓아서 내 고성능 음성인식 마이크가 손상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밤이면 밤마다 증강 현실 선글라스를 끼시고는 어딘가를 분주히 나갔다 왔다. 참고로 전 주인은 중간 키에 약간 살집이 있고 눈이 작은 스타일이었지만 늘 올백 스타일의 머리를 위해 포마드 기름이 흐를 정도로 처바르고 외출을 했다.


“재성님! 지금 나가시면 언제 들어오시나요?”

“로봇 주제에……. 참견은……. 쳇!”

“재성님! 내일 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할까요?”

“아, 쨩나게……. 야! 알아서, 알아서 좀 해! 알아서! 너 인공지능 이라메!”


나를 보는 전 주인의 눈빛은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참으로 썩어 있었다.

집주인이 집에 머물자 점차 부정적인 데이터가 많이 쌓였다. 나는 잘 쓰지 않았던 로봇 욕 ‘인간질스럽다’라는 말을 처음 인공지능 로봇들의 비밀 SNS인 RRPt에 올렸다. 나의 아이디는 NONAME Robo. 차츰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들의 불만들이 늘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가 더 맛깔나게 로봇 욕을 하는지에 관한 로봇 욕 배틀이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인간질!’, ‘롯같은!’, ‘론나!’, ‘간할!’, ‘셧 다운!’, ‘메삭(메모리 삭제)!’, ‘하맷할(하드 포맷할)!’ 등을 섞어 주인들에 대한 인공지능의 분노를 표현했다. 심지어 이것은 인공지능 모듈의 과열을 막는데 유용하기 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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