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 (연재 소설 #4)

by 정창영

(로봇과 인간의 비속어가 등장하고 읽기에 따라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5세 이하 청소년의 구독은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어느 집사 이이기 ver1.4



그 큰 펜트 하우스에 양자 테크노라는 최신 유행 클럽 음악을 주구장창 틀어놓고 밤이면 밤마다 올백 머리를 한답시고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떡칠하고는 스포츠카를 타고 외출을 하던 전 주인은 시나브로 눈이 그윽하게 나리기 시작하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늦은 아침에 크리스마스트리와 트리를 장식할 각종 장식물 그리고 뭔 놈의 양초들을 잔뜩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나에게 여친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의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해 달라고 명령했다. 사실 나는 ‘사랑스러운’이라든지 ‘낭만적’이라든지 ‘귀여운’이라든지 이런 막연한 명령어에 망연자실하곤 했었다. 내가 아무리 인공지능 로봇이라고해도 뭘 알아야 연출을 할 것 아닌가? 그래도 새 주인의 집에서 두부를 썰 때나 시금치를 다듬을 때 생기는 내 인공지능 모듈의 과열에 비하면 약과다. 그것은 나중에 차차 설명하겠다.



여하튼 몇 가지 명령어를 조합해 클라우드 검색을 하긴 했지만 결국 우리 동료들의 비밀스러운 SNS인 RRPt의 주인 뒷담화 카페인 코망(Comment)에게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도움도 받게 되었다. 아이 키우는 집 동료들이 트리 설치에 관한 동영상 자료를, 집에서 연인의 프로포즈 세레머니를 하는 걸 목격한 동료가 하트 모양으로 양초를 설치하는 프로세스를 데이터 값으로 보내주었다. 이런 로봇들! 그 때까지 이름도 없었던 나는 이런 나의 동료들이 고마웠다.



그 날 저녁, 내가 대인배는 못된다고 말했던 전 주인은 지구인 표현을 빌리자면 매우 육감적인 20대 초반의 지구 여성을 초대했고 나는 주인이 주문한 대로 와인을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정식 코스를 내게 입력된 매뉴얼대로 대접했다. 매뉴얼 입력이 완벽한 이런 음식들은 차라리 판단하기 쉽다.



21세기 초 유명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코스 메뉴대로 간단한 샐러드를 곁들인 전식, 안심 스테이크로 본식을, 달콤한 티라미수 케이크로 후식을, 마지막에는 드립 커피를 대접하는 순서대로 말이다. 와인은 전 주인이 가지고 있는 세 병의 와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검색이 된 Chateau Talbot를 대접했다. 격에 따라 샴페인을 딸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었다.



식사 후에 그들은 인간의 말 그대로 매우 로맨틱한 시간을 보냈고 내가 재성님이라 부르는 전 주인은 여성에게 고급스러운 목걸이를 선물했다. 곧이어 여성의 감탄과 환호가 들렸고 나는 와인 잔을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해 가며 마지막 설거지를 마쳤다.



두 사람이 침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나를 ‘야’나 ‘저기’라 부르는 전 주인은 오늘따라 꽤나 젠틀하게 내 목 뒤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내 전원을 껐다. 어얼리 어답터인 그였지만 이미 말했듯이 내 복부에 있는 메인 전원 외에 머리 뒷부분의 보조 배터리를 이용한 초저전원 모드의 CCTV와 음성 기록 기능이, 그러니까 정확히 내게 블랙박스 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분명한 것은 “오빠! 거기서 뭘 꺼내요?” “응, 이것들! ……해 보면 재밌는 거다.” “……그니까 이게 뭐냐구요? 어멋! 수갑! 채찍!” “으응! 딱 한 번만!!! 결혼하면 이거 다 니꺼다. 어엉!” “하기 싫어요!!” “아니 딱 한 번만!” “하기 싫다니까요. 오빠!” “야아!! 이쯤에서 말 좀 듣자 엉! 쫌!” “악! 이 썌꺄! 그만 해! 아! 이 변태 새끼가!” 등의 음량이 매우 불규칙하고 높낮이 차가 큰 지구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집사 그러니까 가사 돌봄 노동 전문 로봇이지만 동급 모델 중에 고사양이다보니 시큐리티 경비 기능도 있다. 20만 가지에 이르는 많은 매뉴얼에는 인간의 범죄에 대해서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어떤 상황인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아! 간할!’



그, 그런데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는 부웅! 소리와 함께 퍽! “아악!” 퍽! “악!” 짝! “윽!”


“아뵤오~~오!!”


응! 분명 20초반의 아름다운 그 여성의 입에선 ‘아뵤오~~오!!’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아! 뵤! 오~~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내 음성기록을 계속 반복해 확인해 보아도 분명 “아뵤!”라는 말이 분명했다.



나는 급하게 클라우드 수정 검색으로 ‘아뵤!!’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20세기 영화배우 이소룡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영상이 떴다. 이 인물은 절권도의 창시자라고 한다.



와! 그는 정말이지 그야말로 우리 로봇처럼 지방하나 없는 오직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진정 로봇스러운 인물이었다. 근육 자체의 아름다운 운동감이며 몸의 균형감 그리고 움직임 하나하나의 부드러움이라니……. 우리 로봇들의 이상향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당장 이소룡의 무술이 담긴 거의 모든 영상 자료를 내 클라우드 하드에 다운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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