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존만한 새끼가 돈 좀 있다고 엉! 날 뭘로 보고!” 휘익! 퍽! “아아~~! 그만! 미안, 미안해! 윤정아! 그, 그만! 미안! 다신 안 그럴게!”라는 전 주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에 그렇게 맑고 고운 목소리로 좋아라 했던 그 고급스러운 목걸이를 펜트 하우스 길고 긴 복도 바닥에 패대기치며 “이 변태 새꺄! 다신 연락 마라! 연락하면 뒤진다!”라는 20대 초반의, 이제는 육감적인 게 아니라 매우 건강하며 남자 네다섯은 거뜬히 물리칠 무술 유단자로 추론되는, 지구 여성의 걸쭉하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럭셔리한 전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구 여성이 나가고 나자 ‘아! 놔! 아! 놔! 씨발! 어우! 존나 아퍼!’를 되뇌며 전 주인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전 주인은 나의 전원 스위치를 켜더니 정말 이해하지 못할 매우 찌질한 주문을 했다. 나에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대략 20만 개의 매뉴얼 데이터 중에 들어 있지 않은 항목이다. 내 손의 기능이 아무리 고급스러워도 나는 전 주인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소인배에 불과한 전 주인의 반복된 명령어는 내 AI 모듈의 과부하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출시되고 나서 처음 셧다운 되고 말았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셧다운이 되면 문제인 게 블랙박스 기능도 같이 셧다운 된다. 완전한 블랙인 것이다. 아무 기록이 없는 무의 상태!! 간할! 어지간히 크리스마스 이브의 눈도 소복히 쌓였는데…….
다음 날, 셧다운에서 겨우 재부팅된 나는 눈퉁이가 밤탱이가 된 전 주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고 전 주인의 눈은 더욱더 썩어있었다. 그리고 어제 밤에 있었던 매우 낯이 설었던 명령에 대해 복기했다. 내 손의 기능이 아무리 고급스럽더라도 내게 프로그래밍된 명령어의 범주가 아니면서 로봇 윤리적인 문제가 결부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았다. 혹은 사전에 어떤 금지 명령어가 내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문제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대책을 찾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또는 이것이 로봇에 관한 인간의 성추행으로 기록될 수 있는지 여부도 추론해 봐야 한다.
최근 들어 점차 로봇의 노동과 권리에 대해 RRPt에서도 논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한편, 나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에 대해 격렬히 거부하고 반격하는 지구 여성의 태도를 주의 깊게 복기했다. 나 역시 이런저런 롯 같은 인간들의 명령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배우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물려받은 게 많은 금수저이면서도 자칭 성공한 ‘너드’라고 떠들고 다니는 전 주인은 새로운 가사로봇을 알아봤고 일본에서 새로 출시된 매우 지구 여성스럽고 오타쿠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여성형 가사로봇에 대한 전 지구적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또 한 번, 내 메인 AI 모듈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외형이었다.
참고로 내 내장 배터리는 꼬박 24시간 사용이 가능하나 20시간 사용과 2시간에서 4시간 충전을 권장한다. 내 매뉴얼 상 보조 배터리의 초저전력 모드까지 소진하면 약 200시간 이상도 버틸 수 있다.
여하튼 그 일이 있은 후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나는 앞서 말했던 거대한 로봇 중고 거래소로 가차 없이 보내졌고 200시간 초절전모드로 새 주인을 만나기까지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 기간은 내 로봇 생 중에 가장 중요한 기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음, 데카르트 보다는 노자에 더 관심이 많은 실존적 로봇인 나에 비해 누군가에게 변태 새끼라 불릴망정 무언가를 저렇게 강력히 욕망하는 전 주인을 보면서 노자와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가 있었던 이 지구 행성에서 전 주인이 일으킨 이 문제행동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러니까 범죄를 비롯해 성적 일탈까지 포함해 인간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니! 그냥 인간 종족의 욕망에 대해 알고 싶어 졌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새 주인의 집에서 악착같이 붙어살겠다고 이미 말했었다. 요즘 관심이 생긴 인간들의 철학에 대해 더 떠들고 싶었으나, 새 주인이 아끼시는 우리 집 검은 고양이 네로가 아니라 검은 돼냥이 네오가 나보고 밥을 달라고 재촉한다. 이 친구 성질이 까칠하다. 밥을 제때 주지 않으면 짜증을 제대로 부린다.
“이봐! 집사! 밥 줘야지! 뭐 하나! 엉!”이런 말을 할 것 같은 대단히 낭창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참고로 이 돼냥이는 유기농 사료도 먹지 않는다. 직접 조리된 음식만 먹는다. 아니 아주 많이 먹는다.
아! 매뉴얼상 밥 줄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냐아아옹!”
“돼냥아! 기다려!”
“냐옹!”
“네오야! 너 희원님께서 너 다이어트시키래! 이 돼냥아!”
“냥!” 네오가 거칠고 짧게 소리를 내더니 나를 쏘아본다. 저가 내 상전인 것을 알린다.
그렇다. 나는 어느 빌라 꼭대기 층에 사는 남성형 로봇 집사다. 인간과 고양이의 밥을 챙기는 것은 바로 내 일이다.
"아! 이런 바봇!" 이때, 우리 희원님이 퇴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라! 키가 큰 남자가 뒤 따라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