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구행성의 고양이로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복층 집의 엄연한 주인이다.
지금은 새가 지저귀는 아침이고 어제 밤에 근육이 매우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향기도 아주 좋은 여자 손님이 가고 나서부터 뭔가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저 기름 냄새나는 로봇 집사와 같이 있다.
집사 로봇이 나보고 하도 뚱뚱하다고 뭐라 하지만 사실 얼마 전 여자 집사가 집에서 봤던 쿵푸 팬더 6편에 나오는 그 쿵푸 하는 팬더도 뚱뚱하다.
나는 건강한 편이고 실은 날렵하기조차 하다. 나는 이 복층 집의 유일한 주인으로서 이 복층 집에 사는 두 집사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나는 복층의 2층 난간에 앉아서 이 두 집사들을 관찰할 때가 많다.
우선 여자 집사는 밖으로 다니느라 볼 일이 많이는 없다. 사실 이 집의 주인인 나는 자기를 내 엄마라고 말하는 여자 집사가 더 좋지만 자주 볼 기회가 없다는 점은 늘 아쉽다.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여자 집사는 이 복층 집의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올 뿐만 아니라 따스하고 향기롭고 눈빛이 다정하다. 가끔 로봇 집사를 야단칠 때 이집의 주인인 나도 약간 무섭긴 하다.
그녀는 15살 때부터 마음먹은 바 있어 인터넷으로 여성 의류를 사고파는 일에 뜻을 세웠고 대학을 가지 않고 스물에 서울에 왔으며 그녀 나이 서른에 그녀가 세운 회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고양이 종은 인간 집사들의 마음을 읽는 힘을 갖고 있다. 다만 바빠서 무심할 뿐이다. 올해 31살인 여자 집사는 무려 15년이 넘게 여성 패션 의류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해온 업계의 숨은 강자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미모와 몸매가 남달랐던 여자 집사는 소녀들을 위한 패션 액세서리 콘셉트부터 지금의 젊은 여성들을 위한 IT 기반 스마트 패션 웨어까지 스스로 모델을 하면서 고객 상담까지 해왔고 그때 상담한 고객과는 오랫동안 나름의 우정을 맺어 왔다.
여자 집사의 남다른 고객을 향한 스킨십은 지금 같은 장기 불황에서도 그녀의 업체가 선방을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남자 복이 없다. 자신이 찍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미 임자가 있다거나 알고 보니 소인배였다는 게 그녀의 주장인데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뭔가 복잡한 여자 집사만의 사정이 있는 듯하다.
고양이 특유의 신묘한 직감으로는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크게 보면 여자 집사는 훌륭한 외모에 근검절약까지 몸에 베인 엄격한 대인배다. 이런 괜찮은 여자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 보고 썸만 타다 말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이것도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 집사인 로봇 집사는 실질적으로 나를 키운 존재다. 그러나 언제나 무언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듯이 보인다.
나랑 놀아줄 때도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시간에 맞춰서 밥을 주고 간식을 챙겨주지만 로봇 집사는 정신이 있다가 없다가 할 때도 많다.
사실 나는 연애를 못하는 여자 집사보다 저 로봇 집사가 더 걱정이 된다. 여자 집사의 명령을 잘 못 이행해 야단을 맞을 때나 여자 집사의 말이 무슨 말인지 도저히 말귀를 못 알아듣고 쩔쩔매는 꼴을 보는 것은 이 복층 집의 주인으로서 심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저 로봇 집사가 측은하기는 한데 어째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라 더 안타깝다.
사실 내가 로봇 집사를 몹시도 애정할 때가 있었다. 내가 아직 어릴 때였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여자 집사에 비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로봇 집사는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잘 보살펴 주었다. 정확히 밥을 주었고 좋은 간식을 만들어 주었고 또 때가 되면 놀아주었다.
나는 그런 로봇 집사에게 내 고양이 부모를 대신한 애정을 구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내가 깨달은 것은 이 로봇 집사는 그저 내게 시간에 맞춰 밥과 간식을 주고 놀아주는 기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 아니 그런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간을 맞춰 밥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과는 다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따듯하게 바라봐 주고 다정하게 털을 쓰다듬어 주고 진심을 다해 놀아주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놀아달라고 집사의 다리를 비비적거릴 때 가만히 나를 쳐다봐 주고 반응해 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수없이 저 로봇 집사의 다리를 쓰다듬었으나 로봇 집사가 무슨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많이 먹으려고 했다. 외로움을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배부름이다.
로봇 집사가 며칠 전부터 웬일인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데 영 마뜩지 않다. 내가 그를 진심으로 필요로 했을 때 저는 나를 바라봐 주었어야 했다.
아니 언젠가부터 그의 마음이(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저 로봇 집사가 왜 이 복층 집을 떠나지 않는지 혹은 여자 집사가 왜 다른 로봇 집사를 구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가 안쓰럽고 불편하다.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로봇 집사를 매우 차갑게 대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배가 터지도록 먹음으로써 외로움을 달래는 어린 고양이의 허전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간혹 이집에서 사라지는 이유는 그저 나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라기보다는 좀 더 큰 이유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 저 로봇 집사는 간혹 내가 이집에서 사라질 때마다 결코 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part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