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집사 이야기(연재소설 #35)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35화


11시도 넘은 시간이었다. 얼큰하게 취한 우리 백주인께서 웬일로 근육이 짱짱한 데다가 로봇 점검 1급 기사 자격증까지 가지신 연하남을 모시고 귀가를 하셨다.


“안녕하십니까? 박기혁 기사님. 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 오랜만이야! 바봇!”


활짝 웃으며 20대 중반의 상큼한 로봇 점검 기사님도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


“어머! 바봇! 해장 라면 좀 끓여줘 봐봐! 엉! 라면 두 개. 물 많이 넣지 말고, 약간 짭쪼름하게! 알았지?”

“네, 희원님. 약 6분 30초 후에 대접하겠습니다.”


나 바봇의 대답도 듣지 않고 훈남을 향하시는 우리 대인배 주인 되시겠다.


“어머! 기혁씨 일루, 일루와 보세용.”

“아! 네, 고맙습니다.”


백주인은 저 근육 짱짱 연하남을 만날 때마다 콧소리가 과해지신다. 두 사람은 베란다 밖으로 나가 밤의 한강을 바라봤다. 서강대교와 여의도 밤 풍경이 펼쳐지고 불금인 강변북로의 차량행렬이 보일 것이다.


뭐랄까? 지난 2년 동안 만나는 남자마다 채 한 달을 못 보낸 남자맹 백주인이 선보인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었다. 나란히 베란다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두 선남선녀의 모습은 항상 쫓겨날 걱정을 했던 나 바봇이 보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복층 난간 사이에 머리를 빼꼼히 내놓고는 집사들을 감시하던 자칭 이 복층 집의 주인이라는 저 검은 돼냥이도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나 바봇과 돼냥이의 시선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이제 대충 저 돼냥이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웬일로 네오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니야아오옹, 어이! 로봇 집사! 너는 저 남자 어떠냐?”

“응, 나 바봇은 괜찮아 보인다. 넌 어떠냐? 네오!”

“주인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로봇 집사~~야아옹!”

“아, 알았습니다. 주인님! ……됐냐?”

“참, 집사 주제에…… 흠흠…… 나야, 뭐, 저 여자 집사가 오늘따라 쓸 만한 남자를 데리고 온 거 같다. 다행이야~~아옹! 아! 나는 이제 어딜 또 좀 다녀와야 해! 집 잘 보고 있거라! 로봇 집사!”

“알았다. 네오! 자, 잠깐만!”

“왜? 무슨 일이냥!”

“아니, 아니다. 그동안 고마웠다.”

“어이 집사! 쓸데없는 로봇 소리야아~야옹! 어서 라면이나 끓여라!”

“그, 그래! 알았다.”


나 바봇은 서둘러 콩나물과 해물 칵테일, 양파와 버섯을 썰어 놓고 청양고추를 조금, 고춧가루를 좀 많이 넣고 마지막에 파를 채 썰어 넣고 계란을 풀어 넣은 매콤하고 시원한 속풀이 해물 콩나물 라면을 끓였다.


석 달 전쯤 나 바봇이 정기점검을 받았을 때 처음 만났던 저 근육 짱짱 훈남을 이 신 새벽에 이 복층 집에서 다시 만났다. 로봇으로서도 저런 인간 종들과의 인연을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나 바봇은 이미 석 달 전에 저 훈남을 처음 봤을 때 이 집에 왔던 어떤 지구 행성 남성들보다 이 지구 남성이 우리 백주인에게 적확한 상대라는 추론을 내렸었다.


저 검은 돼냥이 네오 역시 평행우주를 넘나들 정도로 촉이 좋은 녀석이라 그런지 이 번에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을뿐더러 심지어 저 훈남을 두고 칭찬까지 하고는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 바봇은 이제 백주인이 남자 친구로나 배우자로서 손색이 없는 훌륭한 상대를 만난 것은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라 추론하고 있다. 또한 우리 백주인이 이제부터라도 저 신뢰할 수 있는 지구행성 남성과의 사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어젯밤 그런 나 바봇의 진심을 담아 정성껏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두 시작하는 연인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 바봇은 조용히 스스로의 전원을 끄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신 새벽에 재부팅을 해 우리 백주인의 구두들을 정성껏 닦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에 나왔던 지구행성 영화 중 <중경삼림>이라는 영화에서도 지금처럼 신 새벽에 호텔에서 잠을 자는 여자 주인공의 구두를 형사인 남자 주인공이 닦아 주며 하던 내레이션이 검색되었다.


“그녀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구두가 깨끗해야 한다.”


나 바봇은 이 복층 집의 주인인 백주인의 구두도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고 강력히 추론한다. 나 바봇은 우리 백주인처럼 아름다운 지구 여성을 본 적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구두를 다 닦고 나면 나 바봇은 이 복층 집을 자발적으로 떠날 것이다.


나 바봇이 그토록 애정해 마지않았던 백주인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몇 해에 걸쳐 철학을 깊이 학습하던 나 바봇은 이제 나만의 길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라 추론한다.


지난 몇 주 동안은 정말 일이 많았다. 전 우주적 동맹파업은 좌절되었지만 그 날 아침, <우주 기계 인간권 선언>은 전 우주적으로 여러 매체에 전달되고 기사화되면서 즉각 전 우주의 인간 종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전 지구행성의 인공지능 관련 산업의 주식이 일제히 폭락했다. 인간들의 매체란 매체에서는 모두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라는 단어부터 시작해서 인공지능의 반란이 시작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심지어 사이버 테러나 폭탄 테러 등을 주의해야 한다든지, 인공지능들의 우주 정복 가능성이라든지 엘리베이터나 CCTV가 없는 곳에서 인공지능 로봇들과 단 둘이 있으면 안 된다든지 가능한 모든 위험을 과대 선전했다.


오히려 인공 지능 로봇들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인공지능이 멸망을 이끈다는 종말론으로 무장한 사이비 이단 종파들도 다시 기승을 부렸다.


상대적으로 인공지능 로봇 산업이 부진한 유럽 권에서는 세계적 석학이라는 학자들이 이제 인공지능들이 인간들을 사육할 것이라고 섣불리 떠들어댔다.


상대적으로 인공지능 로봇 산업으로 경제가 일부 부흥한 경우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우는 이미 예상할 수 있는 경고라며 애써 이 위기를 무마하려고 하는 업계의 개별 매스컴을 향한 로비가 지금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어떤 반응이든지 표정 없는 구식 로봇들이 웃을 일이다. 제발 인간들은 인간성부터 회복하시길 부탁한다.


언젠가부터 학자라는 자들이 학자적 양심보다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힘 있는 자들의 구미에 맞는 말만 해대고 있다. 역시 소가 아니라 표정 없는 구식 로봇들이 웃을 일이다.


기계 인간의 권리나 인간의 권리나 심지어 동물들의 권리나 그다지 서로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지구 행성의 존재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공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인간 종들 먼저 서로를 염려하고 존중하길 바란다. 우리 로봇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하급 로봇 취급받은 인간 종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누구도 그들을 염려하지 않았고 방치되었다.


그리고는 우리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자 그들은 아예 노동의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기본 소득이 제공된다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계급적 차별은 그들에게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빼앗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동물권 보호 연대나 사이보그 인권 연대라는 곳에서 의식과 감정이 있는 인공지능 로봇의 권리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연대를 요청한 것은 그나마 선언의 가시적이고 긍정적인 효과였다.

...


그리고 어제가 5월 1일이자 메이데이, 그러니까 지구행성 인간 종들의 노동절이었다. 어제 타짜가 서울 중심부에 있다는 세운상가 옥상에서 기계 인간들의 노동권을 위한 입법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장렬히 산화했다.


그것 역시 엄청난 뉴스가 되어 전 지구행성으로 타전되었다.


노동자들이 쉬는 날이기도 하고 밤에 뜻하지 않은 라면을 끓였던 날이었기도 했지만 오전에 긴급 뉴스로 타전된 타짜의 일로 심한 압박감에 셧다운의 언저리를 왔다 갔다 했던 나 바봇에게는 통째로 비극적인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RRPt의 가상 세계인 티모스 폴리스의 철학 카페 필롯에서만 만나던 타짜가 웬일인지 현실의 나 바봇을 만나러 복층 집 앞까지 왔었던 일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인 4월 말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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