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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Sep 25. 2016

Underground Boy

- 다방집 소년(연재소설 #2)

2.



 지금 누가 뭐라고 하든 이 다방집이 내 고향인 것은 분명하다. 술집에서 다방집까지 근 십여 년을 이 곳에서 살았으니 그것은 가릴 수 없는 팩트다. 17살 인생 중 이 지하실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여기 말고 또 어디 갈 데도 없었다. 가고 싶지도 않다. 생각해 보면 줄곧 엄마와 나 우리 둘만 서울에서 살다 내려왔다는 사실 말고는 내가 아는 일가친척이 없었다. 이상했지만 따로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엄마는 내가 여섯 살 무렵에 내 또래 어린아이들만 많이 모여 사는 시설에 한동안 나를 맡겼었다.

 엄마랑 서울에서 마지막 살았던 집은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잠실의 한 주공 아파트였다. 꼭대기 층이라 베란다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비가 많이 오면 강변도로와 그 옆에 있는 가로수들까지 한강물에 잠겨서 무척 신기했다. 너무나 작은 아파트였지만 엄마랑 단 둘이 살기에는 딱 알맞았다. 다리 네 개가 있고 양쪽 미닫이로 브라운관을 여닫을 수 있는 럭키 골드스타 TV가 거실에 있었다. 이 흑백 TV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다방집 내실에 있었지만 아쉽게도 칼라 TV의 시대를 그렇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 다녀오고 나니 없어졌다. 그날은 내가 엄마에게 화를 냈던 아주 드문 날이었다. 그 낡은 텔레비전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기계였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엄마가 식탁에 저녁밥을 차려놓고 돈을 벌러 나가면 하루 종일 금색으로 빛이 나는 작은 마징가 제트 모형을 갖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거나 AFKN에서 하는 제너럴 호스피털(General Hospital) 같은 약간 야한 TV 드라마를 봤다. 제목이야 워낙 오랫동안 방송이 된 드라마라 영어를 읽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작하면서 음악과 함께 종합 병원이 나오기는 하는데 여기 나오는 남녀 어른들은 주로 입을 맞추거나 껴안거나 침대에 같이 누워있거나 인상을 쓰며 마구 소리를 지르거나 뭐 그런 일만 열중했다. 나이가 어려 별생각 없이 그냥 봤는데 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랑 사는 게 아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서로 좋아하더니 웬걸 어느 순간 배신을 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가끔 같이 놀던 예쁜 여자 아이가 어느 날 엄마랑 놀이터에 와서는 날 모른 척을 하고 자기 엄마 친구의 아들이랑 노는 걸 비로소 이해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TV로 세상 공부를 했다. 저녁쯤에는 주로 마징가 제트를 봤는데 어떨 땐 채널 돌리는 것을 깜빡하고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이라는 회전판을 돌리는 퀴즈 프로그램도 계속 봤다. 숫자 공부는 절로 됐다. 분명 ‘단어를 맞추면 숫자가 올라가는데 미국 사람들은 숫자가 올라가는 걸 저렇게나 기뻐할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달러를 뜻한다는 것도 나중에……. 결국 그 다리 달리 TV는 내 기계 유모였다. 비록 어린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없는 미국식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말이다.

 엄마는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가끔은 술 냄새를 풍기며 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은 없었다. 혼자 저녁을 챙겨 먹고 코끼리와 기린과 사자가 있는 동물원을 다룬 입체 그림책(지금은 팝업북이라 불리는)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 다시 잠을 깼고 화장실에서 화장을 지우고 얼굴을 씻는 엄마를 말없이 지켜봤다. 그리고 예쁜 엄마의 따듯한 품에서 나는 아주 좋은 향기를 맡으며 다시 잠이 들면서 엄마에게 진짜 동물원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아침 일찍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 갔다. 기쁘게도 엄마는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구의동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 거기에는 내가 보고 싶었던 동물들도 많았고 또 재밌는 놀이기구도 여러 가지 있었다. 어둡고 큰 드럼통 같은 곳에 들어갔더니 나란히 의자들이 있었고 여러 사람들과 같이 그 의자들에 앉았다. 엄마가 안전벨트를 채워주자 곧 그 통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그런데 나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영어로 말하는 매우 친절한 미국 군인들을 많이 보여주는 TV 유모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배운 바가 있는 여섯 살이었다. “여러분, 가만히 자기 자리를 꽉 붙잡으세요. 그러면 다치지 않아요. 그러니 의자에 가만히 있으세요.” 미군 장교나 되는 냥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사람들이 꽥꽥! 빽빽!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린아이의 책임감 넘치는 명령에 간간히 웃는 소리도 들렸다. 나중에 이날 기억이 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후끈해졌다.

 날씨가 딱 이맘때쯤이어서인지 어두운 통돌이에서 나왔을 때 가을 햇살이 꽤 강렬했다. 무척 즐거운 시간을 엄마랑 보내고 나서 엄마는 점심으로 냉면을 사주었다. 맛있게 냉면을 먹는데 왠지 엄마의 눈이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을 봤다. 엄마는 자장면보다는 냉면을 좋아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냉면인데 엄마는 별로 먹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가 향한 곳은 강변이 보이는 잠실의 주공 아파트는 아니었다.

 어린이 대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아주 멀리 가지는 않았던 것 같았지만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주변에 우리가 살던 신식 아파트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단층집들이 많았다.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에서 주택가로 접어들면서 작은 도로를 따라 주욱 오르막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물었지만 엄마는 신통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타이트한 스커트에 핑크빛 블라우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엄마의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참 예쁜 엄마다. 뒤이어 흔하지 않은 2층 양옥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어두운 골목길을 들어섰다. 한참을 걸어 골목 끝에는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큰 철제 대문이 있었다. 그 위에 옆으로 길쭉한 흰 배경의 철 간판에 검은 글씨로 뭐라고 쓰여있었고 그 옆에 빨간색 십자가도 같이 그려져 있었다. 철제 대문이나 간판이나 상당히 오래된 듯이 칠이 벗겨져 녹이 좀 슬어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뺐지만 엄마는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안경을 써 꽤 깐깐하게 보이는 할머니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좁은 골목길에 비해서 상당히 넓은 공간과 옆으로 길쭉한 2층 건물이 나타났다. 작은 동산이 뒤에 있었고 건물 앞에는 상당히 넓은 마당에 그네와 시소가 있었다.  

 “따라오세요.”

 할머니의 안내로 옆으로 길쭉한 낡은 건물의 현관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의 긴 복도 끝에 있는 원장실이라는 데를 들어갔다. 지대가 높았는지 복도 창문 너머로 꽤 큰 기찻길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철로가 10개는 넘었고 그 위로 어지럽게 철골과 전선줄들이 얽혀 있었다.

 엄마랑 같이 원장실에서 나온 후 어느새 내 손은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 할머니 손에 넘겨졌다. 엄마는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가 엄마가 사라진 후에는 엄마의 하이힐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시설에 있는 동안 하염없이 엄마의 하이힐 소리가 다시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울고불고하지는 않았다. 대신 주머니 속 황금색 마징가 제트를 어루만졌다.

 그 시설에서 새로 왔다고 일부러 나에게 거칠게 구는 형들도 있었지만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나 몇 살 위로 보이는 누나들부터 아주 키가 큰 누나까지 별 탈 없이 지냈다. 특히 키가 큰 누나는 약간 모자란 기색을 보였지만 내가 귀엽게 생겼다며 참 잘 대해줬다. 나보다 어린아이부터 그 키 큰 누나까지 상당한 수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이 시설이 뭐 하는 곳인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단정한 백발에 사각의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상당히 인품이 있어 보이는 원장 할아버지는 자신을 목사라 소개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훠~얼씬 날씬했고 아름다웠던 엄마를 보자 할아버지의 눈빛이 반짝 빛이 났다.

 “당분간 아이 잘 좀 부탁드려요. 원장님!” 어여쁜 엄마가 고개를 조아렸다.  

 “명문대 교수님을 통한 부탁인데 안 들어드릴 수 있나? 걱정하지 말아요. 이 아이는 내가 잘 맡아 줄 터이니! 세상 누구 말을 믿어! 목사 말을 믿어야지! 안 그래요? 허허허!”

 묘하게 비꼬는 듯 말을 하면서도 집요하게 타이트한 옷을 입은 엄마의 몸매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엄마 손을 꼬옥 잡고 있던 나는 당장 기분이 나빠졌다. 잠실 주공아파트 놀이터에서 겪었던 배신의 아픔을 알게 해 준 제너럴 호스피탈에서 배운 바, 이런 인물들은 나쁜 놈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니나 다를까, 두꺼운 성경책을 든 인자한 얼굴을 했지만 다른 어른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시설 아이들에게 상스런 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기 때문에 나는 원장 할아버지가 더욱 싫어졌다. 처음 며칠 동안 예쁜 엄마가 안 보여 마음이 불편해 밥을 안 먹는데 그런 나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개새끼가 처먹으라면 처먹지 말이 많아! 그러니까 니 이~쁜 애미가 너를 버린 거야! 이 쌍노무 새끼야! 어엉! 어딜 노려 봐! 이 똥개 새끼가!” 귀를 잡고 들어 올린 여섯 살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진 말을 하는 원장 할아버지에게 나는 몹시 분노했다. 코피는 터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얼굴이 부어올라 무척 얼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슬그머니 그 키 큰 누나가 내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차츰 나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새 외국인 부모와 함께 시설 밖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그냥 사진을 한 방 찍고 밖으로 나갔다. 남은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축하를 해주었다. 나도 곧 그 아이들처럼 외국 사람과 이곳을 떠나게 될지 몰랐다. 입버릇과 손버릇 모두 나쁜 원장 할아버지가 있는 이곳을 떠나는 것은 괜찮은 일인데 엄마와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주 싫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떤 도움도 없이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힘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17살이 된 지금도 나는 원장 할아버지의 말처럼 엄마가 나를 거기다 버리려 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을 통해 언젠가 내가 홀로 서야 할 때가 온다는 사실만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입양을 나가면 새로 또 아이들이 들어왔다. 겨울이 되자 위문품이 참 많이도 들어왔다. 그렇다고 먹는 게 딱히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처음 왔을 때부터 내 옆에서 잠을 자주던 키 큰 누나가 언젠가부터 원장 할아버지를 보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물론 이 시설의 누구도 원장 할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대거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맡은 여선생님들이나 나를 안내했던 깐깐한 할머니나 이런저런 일을 하는 한쪽 다리를 절었던 아저씨나 누구든 그를 두려워했다.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잠실 주공 아파트의 포근한 침실에 비하면 형편없이 불편한 시설의 방에서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때 내 옆에 자고 있는 누나를 깨우는 원장 할아버지 소리가 들렸다. 기도하러 가자며 원장 할아버지에 이끌려가던 누나에게서 나는 오줌 지린내를 맡으면서 누나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쩔 도리 없이 어두운 복도 끝에 있는 원장실 앞까지 그들을 몰래 따라갔다.

 결국 누나가 원장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키 큰 누나의 고통이 너무나 선명히 느껴졌다.  한동안 문 앞에서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런데 누나의 고통이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나 순식간에 그 일이 일어났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그때 처음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물론 아파트 놀이터에서 예쁜 여자 아이의 엄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었다. 말했듯이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고 그저 본능적으로 알았다. 오래전이라 정확히 어땠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어린이 대공원에 있었던 어두운 통돌이 놀이기구보다 원장 할아버지의 마음속이 훨씬 더 위험했다.  

 자칭 목사님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니 미칠 것 같은 만월이 떠 있는 한밤중의 풍경이 펼쳐졌다. 내 앞에는 압도적으로 커다란 서양식 대저택 앞에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8대 2 가르마를 칼같이 가른 심술궂게 생긴 퉁퉁한 아이가 정원에 서 있었다. 건물로 들어가려는 나를 거만하게 바라보며 팔을 벌려 막아섰다. 대저택의 곳곳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대고 있었다. 그 녀석은 나를 막아서며 마치 재밌는 놀잇감을 만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나에게 날아들었고 소름 끼칠 정도로 긴 손톱으로 내 얼굴을 할퀴었다. 아프기도 했고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뚱뚱한 녀석이 참 잘도 날아다닌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녀석은 나를 놀리듯 사방에서 날아들었고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긴 손톱을 세차게 휘두르며 공격했다. 사정없이 날아오는 녀석의 공격을 피하면서 점차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내 몸이 현실에서의 몸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역시 녀석의 공격을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녀석은 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을 해보고 싶은 것 같았다. 무슨 도깨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AFKN TV에서 봤던 군인들의 훈련 장면들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무슨 특공대 같았는데 주로 육탄전에 관한 것이었다. 마징가 제트가 아수라 백작의 기계수들과 싸우는 장면도 생각났다. 어쩐 일인지 목사의 마음속에서 내 몸은 그것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 나는 17살을 먹도록 축구 공하나 제대로 차지 못하는 개발에다 몸치 아니 몸꽝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생각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속은 차라리 꿈속에 나오는 풍경과 비슷했다. 어느새 녀석이 내 몸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때 나는 박자를 셌다. 그리고 나는 적의 목을 뒤에서 감싸는 특공대원이 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몸을 비트는 특공대원의 동작 그대로 날아오는 녀석의 몸을 비껴 서면서 뒤에서 붙잡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녀석을 땅으로 끌고 내려갔다. 다리로 녀석의 몸을 감싸며 목을 팔로 감았고 있는 힘껏 조였다. 뭔가 강한 분노가 폭발했다. 뚱뚱하고 심술궂은 녀석은 처음에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가 도깨비도 아닌 것이 점차 길쭉하고 축축한 검은색의 기분 나쁜 요괴로 변해갔으며 형언할 수 없이 이상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녀석의 형상이 내 몸과 합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다리 쪽부터 고무처럼 축축한 녀석의 몸이 나와 합쳐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사력을 다해 녀석의 목을 조였다. 아니 녀석은 오히려 나를 축축한 몸으로 먹으려고 했다. 녀석의 몸이 거의 내 어깨까지 나를 먹어가고 있을 때 다행히 녀석의 몸에 힘이 빠졌다. 어느새 축 늘어진 검고 길쭉하고 축축한 요괴를 내려놓자 그 큰 대저택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사방에 까마귀가 날아올라 미칠 것 같은 저 달을 가렸다. 사방이 곧 칠흑 같은 암흑이 되었다.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키 큰 누나가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방에서 튀어나왔다. 누나는 반대편 복도 끝으로 달려 나갔고 그 순간 나는 어두운 복도 창으로 비친 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묘하게도 눈에서 노란빛이 났고 눈동자가 성난 고양이 눈동자처럼 세로로 변해 있었다. 내가 봐도 내가 이상해서 잠시 바라보는데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눈에서 빛도 사라지고 원래 눈동자로도 돌아와 있었다.

 방문이 열린 채 있는 원장의 방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니 처음 원장실에 왔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온통 높은 벽마다 상장이나 사진 같은 게 걸려 있었고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쪽 벽 말고는 각종 캐비닛과 책장이 삼면의 벽을 꽉 둘러싸고 있었다. 원장의 마음속에서 봤던 어둡고 답답한 느낌 그대로의 방이었다. 그나마 캐비닛이 있는 쪽 벽면에 큰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앞으로 길쭉한 가죽 소파가 있었다. 백발의 원장 할아버지는 그 가죽 소파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가죽 소파 앞 낮고 긴 원목 탁자 위에는 두꺼운 성경책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원장 할아버지는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나를 둘러싼 첫 번째 죽음이었다. 원장의 죽음 이후 어수선하긴 했지만 시설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의 딸과 사위가 원장실을 차지했고 분위기는 다시 어두워졌다. 다행히 그날, 나의 예쁜 엄마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데리러 왔다. '또각또각' 거리는 엄마의 구두 소리를 듣자 비로소 나는 안심이 되었다

                           …

 사실 내가 아주 늦게도 자거니와 가끔 자다 깨 신 새벽까지 그 난리를 치니 학교에 가서 모자란 잠을 채울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엄마가 깨웠을 때는 너무 잠이 부족해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겨우 일어났다. 평소에는 이름만 불러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뭔가 어색한지 엄마가 날 보고 오늘 오전에 보도방에 전화를 걸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더 무슨 말을 하려다 참는 것 같았다. 나도 엄마에게 더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는 말을 하고 다방집을 나왔다. 밖을 나와 보니 원체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바닷가 D시라지만 아침부터 공기가 눅눅한 데다가 바람도 심상치 않게 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니 정말 바람도 더 불고 비도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야간 자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뜻하지 않게 비를 흠뻑 맞아 팬티까지 젖은 채 다방집에 들어왔다. 그때, 처음 우리 다방집에 온 미스 나 누나를 보게 되었다. 카운터 안에서 다방집 주인 마담인 엄마가 지폐 묶음에서 오백 원짜리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그려진 지폐를 세고 있었고 마침 카운터 밖에 미스 나 누나가 서 있었다. 미스 나 누나는 AFKN의 뮤직 비디오 클립으로만 보던 팝스타 마돈나를 조금 닮았다. 파마를 한 머리에 약간 살집이 있었지만 <Like a Virgin>을 부르던 마돈나만큼이나 자신만만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의래 새로 우리 다방집에 아가씨가 오면 해왔던 것처럼 엄마가 나를 보며 미스 나 누나에게 나를 소개했다.

 “어머, 비가 많이 오나 보네! 얼른 들어가 수건으로 머리 좀 말리고... 아! 참, 인사 해! 성재야! 오늘부터 우리 집에 온 미스 나! 얘가 아까 말했던 우리 아들 성재”

 “안녕! 성재군! 어머 너무 잘 생겼어요. 언니!”

 “아, 안녕하세요! 에, 에이취!”

 미스 나 누나의 이야기야 예의를 차리는 소리였겠지만(지금은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지만 어렸을 때 머리를 좀 기르면 종종 계집애냐는 소리를 듣곤 했다.) 쫄딱 비를 맞긴 해도 내가 좋아하는 마돈나를 닮은 누나에게는 좀 멋진 다방집 도련님답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을을 재촉하는 차디찬 소나기를 맞은 지라 몸이 추웠는지 부르르 몸을 떨며 재채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방귀를 뀌었다. 한 번이면 어떻게 재채기 소리라고 우겨보겠는데 세 번이나 연달아 꼈다. 젠장!!!!

 17살이나 먹었는데 괄약근 하나 제대로 관리를 못하니 참으로 민망했다. 몸 둘 바를 몰라 얼굴이 벌게졌다. 잠시 눈치를 보니 살포시 웃는 미스 나 누나의 미소는 더욱더 마돈나와 닮아 있었다. 입술 밑에 점이 있는 거나 앞니가 아주 약간 벌어진 거나 어쩌면 그리 똑같을까!

 “에, 에헴! 그럼, 나 들어갈게! 엄마!”

 엄마도 다 큰 아들이 민망한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로 미스 나 누나에게 고개를 꾸벅한 후에 머리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다방 내실 옆에 붙은 내 작은 쪽방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쾅 닫고 가방을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 ‘아이!’ 수건으로 머리를 닦은 후에 흠뻑 젖은 짝퉁 죠다쉬 청바지며 이랜드 긴팔 티셔츠를 벗고 몸에 딱 맞는 흰 라운드 면티와 감청색 츄리닝 바지로 갈아 입었다. 순간 아까 일이 다시 생각나 눈을 감았고 고개를 다시 푹 떨궜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도저한 쪽팔림에 못 이겨 ‘으으!’거렸다.

 뭐 자연적인 현상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감옥 같다고는 했지만 내 작은 쪽방에는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고 자부한다. 몸 하나 당랑 누일 바닥 옆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책상 위에 작은 스테레오 라디오 하나와 스탠드 전등이 있었고 그럴듯한 책꽂이에는 맨투맨 영어나 성문 종합 영어, 수학의 정석 기본 1, 2나 국어, 사회, 국사 과목의 각종 참고서와 문제지가 꽂혀있었다. 특이하게 헤르만 헷세의 소설 데미안도 꽂혀있었다.

 ‘아! 데미안이고 아프락사스고 뭐고, 이 몹쓸 괄약근!’

 다방집 내실 옆 작은 쪽방에서 기본 수학의 정석의 이차 함수 부분을 꺼내 풀며 아니, 공식과 답을 외우며(순열과 집합 이후로는 도통 내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허약한 괄약근에 빈정이 상한 마음을 다독였다. 라디오 방송도 끝이 나고 다방집 영업도 끝낼 시간이라 셔터를 내리러 홀에 나왔다. 홀에 있는 큰 TV는 저 혼자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고 주방 앞 우리 다방집 식구들이 주로 밥을 먹는 테이블에서 엄마랑 미스 나 누나가 김치랑 수육을 놓고 OB 맥주 두 병을 거의 다 마셔가고 있었다. 수육에 새우젓과 김치를 싸 먹으며 미스 나 누나는 입을 하하대며 김치가 참 맵다고 했다.

 그런 미스 나 누나를 보며 약간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 집 김치 처음 먹으면 ‘참 매울 낀데……!!!’ 특이하게 서울 사람인데도 엄마는 매운 걸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고기를 좋아했다. 냉면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맵거나 말거나 미스 나 누나랑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약간 취기가 오르시는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옆모습도 마돈나를 닮았던 미스 나 누나는 ‘하하’ 거리며 매운 혀를 내밀었고 잔에 남은 마지막 맥주를 마셨다. 자꾸 미스 나 누나가 내민 혀가 신경이 쓰였고 한편으로는 미스 나 누나가 청양고추를 한 없이 넣은 저 매운 김치의 뒷감당을 어찌하려나 걱정도 되었다.

 그때 마침, 새 학기가 되고 대학생들이 한 여당의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을 기습했으며 그 바람에 전경 버스 두 대가 불에 타 전소됐다는 한 공중파 방송국의 늦은 밤 뉴스가 있었다. 이 뉴스의 앵커는 좌경 사상에 물든 대학생들이 이런 파괴 행위를 중단하고 본업인 학업에 돌아가야 한다며 인상을 쓰면서 매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군인도 아니고…. 미스 나 누나가 앵커를 두고 말을 했다.

 “저 사람, 영부인 친척이라 저거 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예! 마담 언니.” 미스 나 누나는 약간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뭐지?  

 “그래? 어머! 니가 뭘 좀 많이 아는구나! 금시초문인데 나는! 너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니?”

 “아니에요. 언니! 예전에 알던 손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 그래!”

 그제야, 엄마가 나를 보더니,

 “성재야! 왜?”

 “이제 셔터 내릴까 봐!”

 “응, 그래!”

 사실 엄마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발동이 걸리면 나는 좀 긴장을 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간혹 세게 술을 마시고 어딘가 정신을 잃고 아무 데나 쓰러져 자고 있거나 해서다. 밤이 늦도록 엄마가 다방집에 오지 않으면 온 동네를 찾아다녔다. 엄마는 되도록 술은 오늘처럼 다방집에서만 마셨으면 좋겠다. 엄마가 어디 안 나가게 셔터를 서둘러 내리러 갔다.  

 한편, 잔뜩 인상을 쓴 40대 초반 남자 앵커의 성난 목소리를 듣자니 시외버스 터미널 앞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오는 길에 억수처럼 쏟아지던 빗속에도 멋진 레인코트를 입은 중년의 긴 머리 사내를 봤던 기억이 났다. 그는 중절모를 썼고 우산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이 동네에서 산 십여 년 동안 본 가장 멋진 레인코트를 입은 사내였다.

 마돈나 누나의 빨간 혀를 생각하며 셔터를 내리려고 다방 1층 현관으로 올라갔다. 저녁때보다는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마침 그 검은색 가죽 레인코트를 입고 비슷한 색 중절모를 쓴 댄디한 사내가 다방집으로 막 들어오려고 했다.

 “장사 끝났는데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약간 우울하지만 강렬한 눈빛의 그 멋진 사내는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래! ……알았다. 음… 다음에 오지! 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말을 낮게 그리고 좀 느리게 하는 사내의 또 보자는 말을 듣고 나도 얼결에 작별 인사를 했다. 학교에서야 잠만 자며 삐딱선을 타지만 나는 다방집 도련님 나름의 예의를 아는 17살이다. 그 사내도 예의를 아는지 나를 돌아보며 한 번 고개를 끄덕하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맛있게 담배를 빨아 당기더니 후우 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보더니 “담배 한대 줄까?” 물었다. “아뇨!!!!” 놀란 내가 강하게 부정하자 씩 웃으며 빗속으로 사라졌다. 담배를 그럴듯하게 피우는 서울말 쓰는 멋진 사내라니……. 이 근동에서 서울 말씨를 쓰면 나처럼 거의 사내 취급을 못 받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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