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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Oct 02.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연재소설 #3 (상))

 마돈나를 닮은 미스나 누나가 처음 우리 다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을 때 설레어서 그랬는지 비몽사몽간에 몽정까지 했다. 꿈속에서 나는 평소처럼 내실 쪽방의 내 책상에서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이 끝나자 다방집 1층 현관문 셔터를 내리려고 내실을 거쳐 다방 주방 앞으로 나왔다. 당연히 홀에 있어야 할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돈나의 공연 복장을 연상시키는 검은 망사로 된 옷을 입은 미스 나 누나가 주방 앞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앉은 고혹적인 모습으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컵에 담긴 맥주를 맛있게 마시고는 매우 섹시하게 입술을 핥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느새 내 눈 바로 앞에 와서는 새빨간 혀를 내밀었….

 그리고, 그리고….

 “아! 아!!! 그으으으만!!!!”  

 거시기 쪽을 두 손으로 가리며 벌떡 일어났다. 잠이 깨자 갑자기 밀려오는 이 더러운 기분이란! 아이! 정말!!! 다 큰 나이에 몽정이라니!!! 허겁지겁 침대에서 벗어나 다방집 남녀 공용 화장실로 뛰어갔다. 전광석화처럼 재빠르게 흰 면티와 츄리닝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었다. 빨리 목욕을 하고 싶었다. 나는 비록 지하실에 사는 소년이지만 매일 찬물에라도 온몸을 비누로 싹싹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매우 깨끗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더군다나 내 몸에서 나온 분비물이 내 몸을 더럽히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목욕은 나에게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면 당연히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행동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오고 가는 버스에서 내 옆에 서 있는 여학생이 내 몸에서 풍기는 비누 냄새를 맡거나 흘끔흘끔 내 옆모습을 쳐다보는 부수적인 효과가 생기기도 했다.

 다방집 남녀 공용 화장실은 다방집 건물 뒷마당에 낸 비상구 바깥쪽 출입구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서울에서 그것도 잠실의 주공 아파트의 신식 화장실을 쓰던 사람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다방집 화장실은 사람 하나 겨우 들어설 정도의 공간이었다. 달랑 화변기 하나에 작은 세면대가 있었고 천장에 백열등이 달려있었다. 출입문은 둔중한 나무였고 거울 달린 세면대 위에 담긴 물을 손잡이가 있는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로 퍼서 목욕을 했다. 세면대 거울 위에 뚫린 작은 창문에서는 1년 내내 환풍기가 돌았다. 그렇게 열심히 환풍기가 돌고 매일 청소를 했지만 인이 베인 남자들의 지린내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런 냄새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나는 정신없이 그야말로 은밀히, 그러나 허겁지겁, 그러면서 완벽히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미친 듯 목욕을 마치고 드디어 팬티를 빨기 시작했다. 아까 비에 젖은 팬티를 갈아입은 지 채 몇 시간도 안 됐으니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참 쓸모도 없는 거시기인데 어디 갖다 버릴 수도 없고 스스로도 한심해서 “아이 씨! 진짜”라는 말을 할 참이었다.  

 그때였다. 역시나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벌컥 화장실 문이 열렸다. 이 시간에 누구? 엄마인가?

 “어멋!”

 “아! 저기! 저기! 저! 잠시만요!!! 누나! 문, 문!”

 17살이나 먹었는데 7살도 아니고…. 7살 때까지야 엄마를 따라 여자 목욕탕을 다녔다만……. 그나마 빨고 있던 팬티로 겨우 거시기를 가린 매우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 상태로 전날 저녁에 내 괄약근을 무기력하게 만든 미스 나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마돈나를 닮은 누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모두 가렸는데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문 열면 바로 세면대여서 누나와 나 사이의 너무 거리가 가까웠다. 아! 이런!!!

 “미, 미안!”

 미스 나 누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문을 쾅! 닫았다. 엊저녁 방귀를 연사 한 미약한 내 괄약근의 만행보다 한층 더한 쪽팔림이었다. 평소 나름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능력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쾅쾅쾅쾅!’ 넋을 놓고 멍하게 있는데 다급하게 마돈나 누나가 화장실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네? 누나! 왜, 왜요?” 창피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으며 대답을 했다. “저~~~~!” 그런데 뭔가 매우 절박한 누나의 목소리였다. “내가 배가 너~무 아파서…. 지, 지금 내, 내가 너무 쫌! 급해! 응?” 누나는 어느새 서울 억양의 말씨를 쓰고 있었다. 분명히! 뭐지? 이 누나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젖은 몸에 허겁지겁 츄리닝과 면티를 입으면서 “아, 네, 아, 알겠어요. 자, 잠시만요!!! 누나!”

 결국 남녀공용인 다방집 화장실 겸 욕실을 미스 나 누나에게 양보하고 다방집 건물 뒷마당으로 나갔다.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비눗물이 덜 빠진 문제의 팬티를 널고 빨래집게로 고정했다. 뭐든 다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밤하늘은 말갛게 개어 있었고, 여전히 바닷바람이 불었고, 별들은 유난히 반짝였고, 나는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여느 구라파 황제 부럽지 않은 내 침대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창피를 넘어선 개망신에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멋진 다방집 도련님 행세를 하려고 했는데 그러기는커녕 한 밤에 옷을 다 벗은 채 변태처럼 팬티나 빨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아! 침대에서 이불 킥을 날리는 데 후다닥 다방 내실로 들어가는 마돈나 누나의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하긴 우리 다방집 김치가 맵긴 맵지! 암! 며칠 고생하시겠네! 저 누나!’라는 생각에 아주 잠깐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온몸을 강제로 노출당한 다방집 도련님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마돈나를 닮은 누나를 다시 볼까 상당히 고민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마돈나 누나가 서울말을 썼다는 사실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잠을 자고 미스 나 누나와 다시 눈이 마주칠까 봐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입맛이 없다며 아침을 건너 띄고 도시락만 챙겨서 새벽같이 학교에 갔다. 연이틀 잠을 못 자니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내 기분과는 전혀 상관없이 비가 그쳐 화창한 아침이었다. 아침을 건너뛰니 평소보다 기운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부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고 있었다. 우울한 나와는 다르게 이렇게 이른 아침의 등굣길을 활기차게 걷고 있는 남녀 학생들의 대부분은 우등생 나부랭이들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학교는 학력이 평준화된 큰 도시와 달리 아직 비평준화 지역이라 D시 인근에서 공부를 좀 한다는 학생들이 다닌다. 나는 신도심 근처 신설 중학교 때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아 간신히 이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다만 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1학기 초반은 그럭저럭 버텼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학이 어려워졌다. 국어나 영어는 할 만한데 수학을 포기하고 나니 저 우등생들을 따라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냥, 총체적 의욕상실!  

 과외는 금지하고 교복은 강제로 자율화했던 시절이라 남학생이나 여학생 구분할 필요 없이 청바지를 많이 입었다. 남학생들은 교련복을 따로 맞춰 입긴 했지만, 결국 청바지가 교복을 대신한 것이다.

 지금 등교하는 남녀 학생들은 대부분 머리가 단정했다. 여학생들은 어느 길이 이상 머리를 기르지 못했다. 그리고 매일 언덕배기 학교를 오르느라 어쩔 도리 없이 남녀 학생 모두 하체가 튼실했다. 학교 정문까지 상당히 높은 언덕길인지라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5분간은 줄곧 오르막이었다. 바닷가 근처 학교였지만 이 학교의 위치만큼은 어떤 해일이 와도 끄떡없을 정도였다. 마돈나처럼 세련된 파마를 한 미스 나 누나에 비해 저마다 큰 가방을 하나씩 등에 짊어지고 낑낑대며 오르막 학교를 오르는 모범적인 여학생들은 내게 어떤 감정의 동요도 주지 못했다.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상당히 조숙했던 탓이기도 했다. 하필 버스에서 뿔테 안경을 쓴 어떤 여학생이 모종의 쪽지를 건네주기도 했지만, 다방집 소년이 이 학교 교감 선생님의 딸을 사귄다는 건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별별 생각에 머리가 복잡한 채 시큰둥하게 등교를 하는데 녀석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름은 이경일. 인조반정으로 유명해진 명문가의 종손이다. 지금 같은 반이며 중학교 동창이자 중학교 내내 전교 1등! 지금 이 학교에서도 아까 그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과 전교 1, 2등을 다투는 그야말로 수재다. 키 크고 어깨 딱 벌어지고 명문가 종손답게 귀공자풍에 조상 대대로 아흔아홉 칸 한옥에 살았다. 더군다나 경일이 아버지는 D시의 구도심인 D항구 주변에 여러 채 건물을 가지고 있었고 한참 개발 중인 신도심 땅은 거의 다 경일이 문중 소유라고 들었다. 최근에 구도심 인근에서 발견된 온천수를 개발해 큰 온천탕 겸 모텔까지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니까 대대로 그 집안은 D시의 유지였고 경일이 아버지는 지금 시의원까지 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게 분명했다. 결정적으로 녀석은 귀가 작은 나보다 두 배는 크고 두꺼웠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늘 녀석의 뒷자리에 앉는데 볼 때마다 역시 귀가 크면 복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나보다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복이 많은 종자다.

 남녀 공학 고등학교였어도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은 각기 다른 교사(校舍)를 썼다. 생색만 낸 남녀공학! 헉헉대며 도착한 학교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남학생 교사(校舍)로 들어섰다. 1학년 4반 푯말이 보이는 반 출입구까지 가는 동안 아는 체를 안 하고 녀석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녀석이 슬쩍 뒤를 돌아봤고 먼저 인사를 했다.

 “성재야!”

 “어어! 안녕! 경일아!”

 “니 우짠 일이고? 일찍 왔네!”

 “으, 응!”

 경일이는 중학교 때 참 친하게 지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러모로 좀 주눅이 들게 만드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한테는 예전만큼 편하게 말을 하지는 않는다. 워낙 운동도 젬병인 데다가 공부도 하락세인 내가 지금 저 녀석보다 잘 하는 것은 아마도 거시기가 시도 때도 없이 잘 선다 뿐일 것이다. 만약 그것조차 녀석에게 밀린다면 나는 학교 뒷동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저 D 항구 앞바다에 빠져 죽으리라 다짐했다. 교실에 들어서서 녀석은 바로 책을 꺼냈고 나는 녀석의 뒷자리에 앉자마자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녀석의 뒤라면 만사 오케이! 키도 큰 녀석이 어깨도 딱 벌어졌고 등판도 넓어서 머리를 이 녀석 등에 바짝 들이민 채, 팔꿈치를 안정적으로 책상에 궤고 고개만 꾸벅거리지 않게 자세만 잘 잡으면 절대 선생에게 자는 모습을 들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나만큼 오전에 잠을 보충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툭하면 나도 놀라 잠이 깰 만큼 갑자기 코를 골았다. 우리는 갑자기 학교에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공비가 나타나 총을 갈기는 게 아닌가 깜짝, 깜짝 놀랐다. 그만큼 강력한 코골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친구는 선생들에게 걸릴 때마다 무지막지하게 맞았다. 선생에게 사정없이 매를 맞는 이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교시 왼손으로 필기를 하시는 남자 수학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대로 오메가 손목시계를 풀고 이 친구의 뺨을 갈겼고 2교시 님자 국어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대로 두꺼운 몽둥이로 정신 차리라며 엉덩이를 사정없이 팼다. 3교시 여자 영어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대로 젖꼭지를 찌르거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4교시 덩치가 산만한 남자 공업 선생님은 두꺼운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에 철썩철썩 때렸다.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다양한 사정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선생들에게 맞았다. 여학생들은 아무래도 우리보다 나을까 싶었다. 항상 여학생들이 있는 교사(校舍)가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잠이야 깨우면 될 일인데 저렇게 사납게 때려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선생들은 왜 이렇게 학생들을 쥐 잡듯 때려야 할까?   

 그 와중에 중학교 시절부터 선생에게 맞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범생인 데다가 얼핏 조선 왕가의 피가 흐른다는 경일이 녀석은 선생들에게 이대로만 가면 서울대 법대에 가도 남을 성적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 말은 맞다. 이 녀석은 분명히 거기에 가고도 남을 녀석이다. 그리고 녀석은 젠틀했다.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녀석들이 나를 두고 다방 하는 서울년 아들이라고 뒷담화를 날려도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고 중학교 때 친구라며 나를 참 잘 대해 주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나는 녀석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자기 아버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 좋았던 마음을 놓아 버렸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나로선 무척 빈정이 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바로 옆 작은 항구 도시인 D시는 예전부터 바닷바람이 세기로 유명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여객선 터미널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일본으로 가는 배들이 많아서 그 시절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는 쇠락한 항구가 되었다. 물론 어촌으로 봐도 어획량이 그리 많은 곳은 아니었다. 그저 제주도처럼 바람이 많았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은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무슨 일인지 어획량이 더 줄어 뱃사람이었다가 일을 놓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러자 바람은 일을 놓은 남자들을 더더욱 흔들어댔다.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다 보니 마음도 같이 흔들리는지 사내들은 술과 여자와 노름에 빠졌다. 따라서 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의 아비들은 있으나 마나 하거나 아이들 엄마를 때리며 돈을 찾는 개종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D시에 크게 필요도 없어 보이는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섰고 인근에 시장이 생기면서 신도심이 개발되자 근처 논밭들이 점차 상가와 주택가로 바뀌어갔다.  우리 다방집 손님들 말을 귀동냥하다 보니 70년대 중후반 D시 인근 해안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이런 개발이 덤으로 추진되었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하실로 이사를 오고 나서 바로, 주변 농사를 위해 만들었던 조그만 저수지가 메워졌고 그 위에 큰 상가 건물이 지어졌다. 1층은 상가였고 2층에 큰 당구장이 들어섰고 3층과 4층에 D 시라고 하면 바로 이름이 나오기 시작할 정도로 유명해진 카바레가 몇 해 전부터 영업을 했다. 큰 도시가 아니라서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히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 소문이 나 우리나라 제2의 도시에서 파마를 멋들어지게 한 중년의 여자들이 삼삼오오 택시를 타고 몰려왔다. 덩달아 제비족도 끓었다.

 그러는 사이 신도심 인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땅 판 값에 따라 졸부와 망부로 나뉘어갔다. 경일이네 문중은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그나마 자투리땅을 판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도 사내들은 노름과 여자와 술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당장 우리 집인 수도 다방을 찾았던 친구들의 아비들이 레지 누나들에게 했던 진상 짓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바 나는 남자 어른들의 진실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고작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도 레지 누나들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만지거나 허벅지를 주무르거나 애써 껴안으려고 하거나 어깨에 팔을 감쌌다. 수시로 입을 맞추자고 뻘! 소리를 했다. 아무리 지하실이라도 백주대낮에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많은 친구들의 엄마들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미워하는 이유야 뭐 대충 흔들리는 남편들로 인해 비롯된 것이지만, 친구들 역시 술집과 다방집을 했던 우리 집을 비롯해 여기저기 다른 술집이나 다방집 아가씨들을 못살게 굴던 제 아비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기에 사실 내게도 별로 좋은 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술집을 하던 시절 그 아비들이 남긴 외상값은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내실 금고에는 그 아비들이 맡기고 간 남성용 시계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물론,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선생들의 진상 짓 역시 엄마가 이 지하실에서 술집을 하던 때 이미 알게 되었다. 선생 중 하나는 미모가 뛰어났던 엄마에게 상당히 오랫동안 지분거리며 귀찮게 했다. 유부남이었고 그 선생의 아들도 내가 아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날 보는 눈은 늘 서늘했다. 나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그 스승 사(師)와 아비 부(父)에 대한 미련을 놓아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군(君)이었는데…. 하필 신 새벽에 학교에 와서 언제나 그렇듯이 경일이 녀석 뒤에서 잠을 자는데 3교시 미술 수업은 여자 미술 선생님이 결혼을 이유로 그만두시고 새로 선생님이 아직 오시지 않아 자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푸근히 더 잠을 청할 참이었다. 그런데 경일이의 짝 태현이가 갑자기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지금 대통령을 아작을 내겠다는 과격한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잠이 퍼뜩 깼다. 이런 패기라니! 오, 훌륭한데!

 하지만, 의외로 17년이나 산 태현이가 오직 존경하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녀석은 나랑은 별로 친하지 않았다. 구도심의 D 항구의 선주 아들이자 경일이와는 초등학교 동창이고 뭣보다 나보다는 녀석의 공부가 훨씬 나았다.

 뭔가 결심이나 한 듯 태현이는 박 전대통령이 구국의 일념으로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했으며 반공을 기치로 국력을 배양하기 위해 시월 유신을 선포했다가 심복의 배신으로 목숨까지 잃었다며 열변을 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박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을 잇는 불굴의 영웅이라고까지 말했다.

 더군다나 영부인 육영수 여사조차도 괴한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지난 여름 방학에 박목월 시인이 쓴 육영수 여사 평전을 읽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육 여사야 말로 국모의 현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그 순간 울컥했는지 녀석의 목이 잠겼다. 시종일관 태현이는 9시 땡 하면 모든 TV 뉴스에 나오는 지금 대통령을 저주했다. 머리숱이 많은 박 대통령에 비해 현 대통령은 대머리라 늘 머리에서 빛이 날만큼 반짝거린다며 비아냥거렸다. 체육관에서 대통령 선서를 할 때도 머리에서 빛이 나와 눈이 부셔서 도저히 눈을 못 뜰 지경이었다고….

 17살을 산 자기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대통령 그 자는 자신을 키워준 박 대통령을 배신한 개종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태현이가 흥분을 했는데도 경일이는 마치 큰 산이나 된 듯이 가만히 녀석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에 흥이 난 태현이는 저 대머리가 고귀하신 박 대통령의 자식들을 잘 돌보기는커녕 집에 거의 가두다시피 했고 또, 마약을 하고 창녀촌을 전전하는 박 대통령 외아들의 비위 사실을 흘려 돌아가신 영웅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분개했다. 잠이 거의 달아나서는 이 친구는 어디서 이런 유식한 말들을 들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D항구에 배가 여러 척 있는 선주를 아버지로 둔 유복한 친구였지만 요즘 아버지가 급하게 배를 판다는 소문이 들렸다. 태현이 아버지도 점차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녀석은 나름 박통 시절 잘 나가던 아버지의 흔들림에 걱정이 앞섰는지 지금 저 빛나는 머리를 한 대통령을 향해 큰 적개심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현이는 그러면서 언젠가 저 빛나는 대머리 새끼는 자기가 꼭 아작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위험한 말씀을!!! 그나저나 초록은 동색 아닌가? 전, 현직 대통령 둘 다 쿠데타로 독재자가 된 비슷한 자들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이 덜 깬 채 태현이가 걱정스러워졌다. 태현이가 한다고 한 그 일은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다. 내가 근 10여 년간 술집과 다방집을 하는 엄마와 살며 이 지하실로 배달이 되는 조석 간 5종 일간지들을 매일 탐독한 결과는 군인이 민주주의에 반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면 그 국가의 국민들은 대단히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박통에 이어 독재를 하고 있는 현 대통령의 쿠데타를 봐서도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을 향한 존경 역시 놓아 버린 지 오래였다. 여러모로 안쓰러운 태현의 말을 듣고 보니 정작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대통령도 정당성이 없으니 악착같이 며칠 남지도 않은 아시안 게임에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까지 열심히 챙기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참! 나!  

 결론적으로 나는 군사부일체에서 임군 군(君)까지 놔버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군사부(君師父) 모두 별로였다. 참 여러모로 특이한 인간이구나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피터팬이 사는 나라가 있었다면 진작에 거기로 날아가고 싶었다. 나는 남자 어른이 되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러나 시간은 용서가 없었다. 어김없이 거시기에 털이 났고 시도 때도 없이 거시기가 서대는 바람에 지난 새벽에 일어난 소동처럼 남우세스러운 일들이 연이었다.   

 종례에서 역시 저 빛나는 대통령의 머리만큼이나 거의 대머리이신데 옆머리를 길러 윗머리를 애달프게 덮으셔서 더욱 측은하게 보이는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2학기 개학하자마자 친 첫 모의고사 성적을 발표하셨다. 자기 아버지를 존경하는 경일이 녀석의 성적은 여전히 전교 1등이었고 나는 더 나빠졌다.  

 몇 년째, 보아도 경일이는 참 재수가 없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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