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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Oct 09.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 (연재소설 #3(하))

(다소 선정적인 소재가 있어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녀석의 말에 빈정이 상하기 전, 나는 녀석과 꽤 친하게 지냈다. 오늘 같은 토요일 오후였다. 중 2 무렵, 4교시를 마치고 하교를 하다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우연찮게 녀석의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경일이의 집은 D시의 신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산 앞 소나무 숲 근처에 있었다.

 그때는 내가 공부를 좀 잘 하던 때였다. 평생 콘크리트로만 지은 집에서 살았던 나는 녀석의 집에 가서 참 놀라운 경험을 했다. 지금은 가톨릭 신부를 하겠다며 외지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창우랑 호기심이 유난히 많았던 병호랑 같이 갔었다. 성격이나 외모나 모두 제각각인 채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네 명이 의외로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다. 세 녀석 모두 나의 불편한 서울 말씨를 무난히 넘어가 주었다. 

 한동안 버스를 타고 가다 경일이네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나서 일성천이라는 작은 천(川)을 지나는 석조 다리를 건너 얼마간 그 작은 천변을 따라 걸어가자 작은 산을 뒤로하고 있는 고택이 보였다. 우선 나름 인조반정에 공신이었던 명문가의 종가라는 녀석의 집은 무려 이백 칸이나 된다고 했다.

 볕 좋은 가을날, 따사로운 햇볕이 비추어 솔잎들이 은은히 빛나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고택 주변을 안정감 있게 둘러싸고 있었다. 배산임수, 딱 명당 터였다.  다만 키 높은 솟을대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위압감마저 들었다. 경일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문을 밀고 들어가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집안의 가장 어른이신 할아버지에게 먼저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고 했다. 또 집안으로 들어갈수록 언덕도 나왔는데 거기에 세심정이라는 정자도 있었다.

 이백 칸이라고 들었지만 집의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사랑채니 행랑채니 안채니 경일이가 설명을 했지만 뭐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옥에 딸린 마당마다 분재가 잘 된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안채 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갖가지 크기의 장독들도 따듯한 느낌을 주었다.

 장독대 옆을 지나 키가 낮은 문을 통과하자 꽤 큰 마당이 있는 한옥 한 채가 또 나왔다. 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었고 자연스레 마당에 어울리는 연못도 있었다. 그 연못 중앙에 작은 섬이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세월에 영향인지 몰라도 무슨 뱀처럼 구불구불 구부러져 자라고 있었다.

 연못에는 갖가지 색의 잉어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다른 한옥과 달리 검은 칠을 한 나무 기둥마다 흰 칠을 배경으로 파란 한문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도저히 제대로 읽을 수 없이 흘려 쓴 한자들이었다. 단을 쌓은 계단을 올라서니 섬돌 위에 흰 남자 고무신이 단정히 놓여 있었다. 우리들은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올랐다. 앞으로는 연못이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잘 꾸며진 화단이 시원하게 바라보이는 대청마루는 이 고택에서 본 풍광 중에서도 단연 일품이었다.

 경일이 대청마루 우측의 사랑방에 대고 먼저 뭐라 말을 고하고 방문을 열자 작지만 단단한 체격의 할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이 대갓집의 가장 높은 분이신 경일이 할아버지셨다. 일제 강점기 때 꽤 높은 관리를 하셨다고 들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방에 들어서고 할아버지가 병풍을 뒤로하고 정좌를 하시자 남모를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할아버지는커녕 아버지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살던 나로서는 두 번은 이 집에 다시 오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중 2 사내아이 넷이 가방을 내려놓고 죽 늘어서서 넙죽 절을 했다. 

 나는 어쩔 바를 몰라 두 번 절하려다가 마침 옆에 있던 창우가 얼른 나를 잡았다. 그 바람에 잠시 비틀거렸다. 그런 나를 잠시 쏘아보던 작고 단단하게 생긴 할아버지는 경일이에게 “니 친구들이가?” “네! 할아부지!” “집에 손님이 왔으니 부족함 없이 잘 대해야 된데이!” “네, 알았슴니더!” “됐다. 고마 가라!” 그 말을 남기고 나를 한 번 더 쏘아보시더니 작게 혀를 찼다. 할아버지는 눈은 작았지만 상당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계속 나를 쏘아보았다. 

  종갓집 맏며느리이신 경일이 어머니께서는 과연 대가를 이끄는 풍모를 가지셨다. 한복을 입으신 넉넉한 풍채에 인자하면서도 기품이 깃든 얼굴은 내가 사는 다방집에서는 보기 드문 관상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들 친구들의 방문임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한창 먹성 좋은 사내아이 넷의 밥을 손수 챙겨주셨다. 열네 살 인생을 살면서 그 당시까지 그렇게 넉넉한 밥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경일이 어머니는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과 큰상을 들고 경일이의 방으로 밥상을 직접 날라주셨다.


 “마이 묵어라. 니들 때는 한참 마이 묵어야 하는 기라. 알았제!”

 “네, 감사히 묵겠습니더!” 일동이 외쳤다. 

 “야! 야! 경일에이! 필요한 거 있으면 이 엄마를 불러라! 알았제! 그카고…. 쟈는 이름이 뭐꼬? 참말로 곱상하게 생깄네.”

 “엄마! 사내아한테 와 곱상하다 캅니까! 쟈가 성재라니까요. 내가 가끔 말하는!”

 “아! 쟈가 성재가? 성재야이! 반갑다이. 니가 우리 경일이 마이 도와준다 카던데 앞으로도 잘 좀 부탁한데이!” 나는 뜻밖에 경일군 모자간의 대화에 불려 나와 밥을 먹으려다 말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아! 네. 경일이 어머니. 그러겠습니다.”

 “어서 묵으라. 그래 나는 이마 가볼꾸마. 밥 다 먹고 밖에 내놓고. 알았제! 아드님아!”

 “어이, 알았심니더!”


 서로에게 모종의 비밀과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엄마랑 나 사이에 비해 이 모자(母子)의 대화는 보기에 참 좋았다. 나로서는 엄마와 서로 풀어야 할 비밀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이백 칸 고택보다 이 모자간의 대화가 나는 더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지만 보기 좋은 것은 보기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참 식성 좋은 아이들 네 명이 먹기에 넉넉한 밥상에는 갖가지 나물반찬에 그 비싼 조기구이에 소고기 산적에 각종 전들 하며 토란이 들어간 뭇국에 김치가 놓여 있었다. 경일이 말로는 마침 어제가 제사였다고 했다. 종가라 제사가 많은 것이다. 특히 유수한 세월을 이어온 종갓집 김치는 우리 집 김치에 비해 백배는 덜 매웠지만, 남다른 감칠맛이 있었고 어젓과 파래가 들어가 상당히 시원한 맛이 특징이었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한 술 떠 입에 넣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런 밥을 매일 먹는 경일이 녀석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친구들은 경일네 집 밥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밥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갖가지 반찬과 밥을 입안 가득  욱여넣고 토란 된장국을 한 술 떠 입에 넣었는데 급하게 삼키느라 갑자기 사래가 걸려 사정없는 기침을 시작했다. 

 손으로 입을 막았는데도 밥알이 온 방안으로 난사가 됐다. 경일이에게 미안할 틈도 없이 숨이 턱 막혀왔다. 숨이 막히니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침 경일이가 등을 세게 두드려주었다. 다행히 숨구멍에 넘어갔던 밥알이 튀어나왔다. 숨이 돌아왔고 살 것 같았다. 밥을 먹다가 죽을 뻔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경일이는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자기 방구석구석 떨어진 내 밥알을 주었다. 녀석에게 고마웠다. 그러면서 죽는 게 어디 먼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어느 정도 내가 안정이 되자 녀석들은 측은한 눈빛으로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먹성이 좋을 때라 그런지 내가 이제 괜찮다고 말을 하자마자 또다시 스테인리스로 도금한 밥그릇에 코를 박고 맹렬히 먹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죽다 살아나 헛기침을 하면서 물을 몇 번이나 마셨더니 물배가 차 더 이상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나마 좀처럼 먹기 힘든 그 비싼 조기구이는 이미 거덜이 난 터였다. 

 밥상을 치우고 나서 경일이방의 뒷문을 여니 안채 뒤뜰이 보였다. 거기에 있는 매화나무나 소나무나, 왕벚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가을볕을 받아 빛이 나고 있었다. 맨날 취객을 상대해야 하는 나는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 좋았다. 지하실에서 평생 살 것은 아니니 언젠가 이런 곳에서 살아봐도 좋겠다 싶었다. 

 내가 뒤뜰 풍광을 한동안 즐기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이런저런 농담을 하다가 트림을 길게 꺼억하던 병호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자기에게 아주, 아주 좋은 사진들이 있다며 보여줄까 말까 물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보여달라고 했다. 천주교 신부를 하겠다는 창우의 눈빛이 유난히 빛이 났다.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병호는 경일이 방 문을 다 닫더니 어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 가방 깊숙한 곳에서 무슨 보물을 꺼내듯 딱딱한 종이에 인쇄된 컬러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서양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에서 걸리면 최소 정학인데도 병호의 호기심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범생인 데다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경일이의 표정도 생전 처음 무언가를 본다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 달아올랐고 천주님을 섬기는 신부님이 되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창우 역시 중 2 사내아이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했다. 창우 녀석은 얼마 전에 수음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맹세까지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뚱뚱한 체격의 창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멍하게 벌리고는 얼음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힐끗, 힐끗 사진을 훔쳐보고 있었다. 

 공부 빼고 여러 곳에 관심이 많았던 병호는 자신이 친구들에게 뭔가 큰 선심을 쓴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기 집에 놀러 오면 더 많은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어렵게 구했다면서 야한 포즈의 서양 여자 사진이 가득 들어있는 도색 잡지까지 꺼냈다.

 "와!!!!"

 아이들은 처음 보는 것이라 그런지 소리를 내며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다만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당연히 처음으로 볼뿐만 아니라 매우 호기심에 차 있다는 듯한 표정 연기를 해야 했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집에서 서양 여성의 적나라한 음부를 보는 중 2 사내아이들이라니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싸구려 샹들리에 조명이 음침하게 내려 비치는 지하실이라면 또 모를까? 아니면 내 방, 그러니까 다방집 내실 옆 쪽방이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지하실은 다방으로 전업을 하기 전까지는 술집이었다. 술집 장사라고 해 봐야 ‘니나노’ 거리며 젓가락을 두드리고 아가씨들과 사내들이 노래를 부르고 뽀뽀를 하고 서로의 가슴을 주무르고 담배를 피우고 노름을 하고 싸우고 춤을 추고 맥주를 박스 채 들여놓고 끝도 없이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맥주병을 치우고 안주를 만들어 내야 했다.

 당시에 내가 잠을 자는 내실에서 노름판이라도 벌어지면 늦은 밤 시간이 돼 졸음에 겨운 나는 그런 떠들썩한 술꾼들 옆에서 쪼그려 잤다. 잠결에도 광주에서 난리가 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리는 똑똑히 기억이 났다. 그런데 우리 집을 거쳐 갔던 많은 술집 아가씨들 중에는 만취만 하면 옷을 모두 벗고 자는 누나가 있었다. 

 나로서는 그 누나가 내실에서 옷을 모두 벗고 잠을 자면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어쩔 도리 없이 이불이라도 덮어주어야만 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누나는 광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누나는 아주 짧은 숏커트 머리에 눈 화장을 짙게 했었고 검붉은 루주를 입술에 발랐다. 그리고 팔 안쪽에 담뱃불로 지진 흉터 자국이 여럿 있었다. 엄마는 누나에게 이런 거 자꾸 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일렀었다. 누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저 “알았어요. 마담 언니!” 라고만 했다.

 12월인데도 누나는 몸이 더운 지 수시로 이불을 걷어차고 몸부림을 쳤다. 결국 나는 그 누나의 음부를 보고 말았다. 적나라하게…. 안타깝게도 누나의 허벅지 안쪽에도 담뱃불로 지진 흉터가 있었다. 나는 왜 그 누나가 그런 자학을 했는지 아니면 어떤 일을 당한 것인지 미처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이 막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 날, 내실에서 작은 조개를 닮은 누나의 음부를 두 엄지로 벌린 채 마치 산부인과 의사처럼 말없이 노려보고 있는 내 모습을 엄마가 보고 말았다. 나는 과학 수업 시간에 현미경으로 체세포를 들여다보듯 따듯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은밀한 내부를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밀히 살피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내실의 미닫이문이 열렸고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도 그때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이었다. 엄마는 만취해 누워있는 누나 옆에서 다시는 누나나 다른 여자의 그곳을 함부로 만지거나 보면 안 된다고 내게 다짐을 받았다.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없어서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그저 알았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홍합탕은 공짜로 줘도 먹지 않았다. 웬일인지 자꾸 그때 엄마의 참담한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하튼 술이 깬 누나와 나를 불러 넣고 엄마는 자초지종을 누나에게 설명했다. 나에게는 누나에게 사과를 하라고 시켰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누나는 매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 보았다.

 엄마는 누나에게 내 뺨을 세게 후려치라고 했다. 누나는 나를 같은 눈초리로 쳐다볼 뿐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보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경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엄마는 누나의 손을 들어 내 뺨을 후려쳤다. 눈에서 별이 번쩍했고 코피가 났다. 엄마에게 직접 맞았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 뒤로 다시 엄마에게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그 누나에게 한 달 치 월급을 미리 주고 이제 술집은 더 이상 하지 않겠노라 말했다. 그 날로 누나는 짐을 싸 우리 집을 나갔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엄마는 일수 빚을 내서 개업한 지 1년도 채 안 된 술집을 기어이 다방집으로 바꿔버렸다. 나중에 엄마가 그랬던 걸 돌이켜 봐서는 내가 맹자 정도 인물은 되어야 할 텐데!라고 얼핏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술집이나 다방집이나 뭐가 다를까 싶었다. 엄마 말로는 나 때문이 아니라 외상 장사보다는 현찰 장사가 더 낫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다방식 인테리어 공사에 의자며 방석이며 카운터며 각종 다방 자재와 재료에 드는 비용을 다 일수 빚을 내서 해결했다. 그 일수 빚이 얼마나 많은지 몇 해가 지나서야 다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다방이 많이 생겨 장사가 안 되는 요즘 다시 일수 빚을 받으러 김씨 아줌마가 우리 다방집에 들르기 시작했다. 벌이도 시원찮은데 하루 5,000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내가 없는 용돈을 모아 매주 주택 복권을 사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시 이 유서 깊은 고택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 2 쯤 돼서야 비로소 사내아이들이 이런 데 관심을 갖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대갓집에 들어서서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은 서양 여성의 적나라한 음부 사진이나 종갓집 모자간의 정겨운 대화보다도 대갓집 할아버지가 나를 쏘아보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그것은 하찮은 예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랫것들을 쏘아보는 눈빛이었다.

 대접할 손님과 그렇지 않은 상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멸’을 뜻했다. 과하게 컬러가 증폭된 서양 여자 사진들을 보는 내내 나는 이 집 할아버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했다. 혹시나 경일이 엄마가 오시지나 않나 귀를 쫑긋 하고 숨을 죽인 채 병호의 사진이나 도색 잡지에 열중하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내 속에 꿈틀거리는 살의를 숨겨야 했다.  

 그즈음 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내 능력과 함께 내가 가진 아주 어두운 본능에 회의하고 있었다. 처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나는 전율을 느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보다는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나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부터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싱클레어가 바라본 데미안처럼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정도로 곱상하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뭐, 지금도 약간 그렇긴 하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라도 할라치면 여자가 야구한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아시다시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내 나이에 비해 조숙했다. 나이 11살에 이미 여성의 가장 깊고 따듯한 곳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으니….

 그건 그거고, 경일이랑 친하게 된 것도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던 경일이를 아주 못살게 굴던 태진이라는 녀석의 마음에 들어가 경일이를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경일이 녀석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눅이 들게 됐지만, 중학교 시절, 경일이는 그 일 이후 나에게 많이 의지했었다. 다른 두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2 무렵,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내속에 있는 악마 같은 본능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아프락사스! 선과 악 그리고 죽음을 같이 담고 있는 그 신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어디선가 고양이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내속에 어떤 욕망의 불길 또는 악마 같은 본능에 확 기름을 끼얹었다. 성에 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친구들이 서양 여성의 신체에 과몰입하고 있을 때 나는 기어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내 속에 있는 악마 같은 본능이 나를 이기고 말았다. 경일이의 조부께서 나를 바라보던 그 경멸의 눈빛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그 노인의 마음속에서 나는 처음 경일이네 집에서 봤던 솟을대문과 비슷하게 생긴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대문은 매우 거대해서 마치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갈 기세였다. 나는 붕 날아올라 그 한옥의 전경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 노인의 가족이 사는 그 큰 이백 칸 고택보다 열 배는 더 넓었다.

 거대한 한옥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슨 커다란 궁궐 같았다. 황혼의 햇살은 그 넓디넓은 한옥을 고루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넓은 궁궐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사각형의 연못에서 황혼의 햇살을 받아 뭔가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날아가 보니 연못 중앙에 자리 잡은 상당히 넓고 둥근 섬 위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능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튼 채 잠이 들어있었다. 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뱀 같았고 이무기라고 하기에도 뭔가 모자란 느낌이었다. 내가 날아가 그 섬에 내렸을 때도 그 황금빛 능구렁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잠을 잤다.

 구렁이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때, 구렁이가 혀를 날름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반응을 보였다. 누런 눈을 번쩍 치켜뜨더니 나를 노려봤다. 소름 끼치는 눈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두려움을 잘 못 느꼈다. 하지만, 노인의 목숨을 앗아보겠다고 그 마음속까지 들어왔으나 막상 이 황금빛 나는 거대한 능구렁이를 어떻게 해치워야 할지 막막했다.

 잠깐이나마 다 포기하고 이 노인의 마음속을 빠져나가야 하나 망설였다. 잠시 주춤하고 있는 데 거대한 구렁이의 소름 끼치는 눈은 좀 전에 이 마음의 주인이 나를 노려보던 경멸의 눈빛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경멸은 상대가 자신보다 하찮다고 느낄 때 보이는 감정이다. 또는 사회 규범이나 법을 심하게 어겼을 때 사회 구성원들이 보이는 모종의 징벌에 가깝다. 비록 실수는 했었지만 내가 상대를 업신여기지 않았는데 상대가 나를 경멸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경멸도 자주 하면 버릇이 되며 경멸을 통해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상대적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 역시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순간 거대한 구렁이가 먼저 나를 공격해 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민첩했다. 급하게 옆으로 피하며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일격을 당했을 찰나였다.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이 마음속 게임의 룰은 아마도 나 역시 상대방에게 패배한다면 내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러니 함부로 남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일은 나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닌 이 황금 구렁이는 상당히 강력했다.  

 일단 거대한 구렁이는 내가 피한 것이 분했는지 고개를 바짝 쳐들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구렁이가 몸을 일으켜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날아올라 내가 떠 있는 위치까지 거침없이 공격해 왔다. 이 구렁이가 날기도 하나 얼핏 생각하던 찰나였다. 황혼에 비쳐 반사된 구렁이의 금색 광선을 눈에 맞았다가 잠깐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여기까지 튀어 오를 거라고 예상치 못한 구렁이의 공격으로 나는 상당히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대로 공중에서 떨어졌고 깊은 연못 아래로 빠져들었다.

 거대한 구렁이가 나를 따라 연못 속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는 구렁이의 움직임이 더 유연해졌다. 나는 연못 바닥에 그대로 가라앉았다. 잠시 이대로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렁이는 유유히 나를 향해 꿈틀대며 왔다. 거대한 녀석의 머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됐다. 나는 이제 죽는다고 생각했다. 사레들려 죽을 뻔했었지만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 구렁이가 나를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을 때였다. 

 어디선가 거대한 하얀색 잉어 한 마리가 그 구렁이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그러자 구렁이는 그 거대한 하얀색 잉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구렁이에 칭칭 감긴 잉어는 구렁이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구렁이에게서 여전한 경멸의 눈빛이 보았다. 그리고 나는 분노했다. 분노는 나의 힘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가 저를 이길 수 없었다.

 발로 연못의 바닥을 찼다. 쿵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연못을 치솟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거대한 구렁이도 나를 따라 튀어 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격의 속도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빠른 공격이었지만 이제 그런 공격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음 공격을 더 쉽게 피하자 더욱더 흥분한 구렁이는 철옹성 같던 궁궐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거칠게 나를 쫓았다.

 해가 지평선을 천천히 넘어가는 가운데 거대한 한옥들이 황금빛 능구렁이의 움직임에 거침없이 부서져 나갔다. 이리저리 어떻게든 구렁이의 공격을 피했고 마치 궁궐처럼 보였던 수 없는 한옥들과 담장과 정자들과 나무들이 처참하게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정신없이 나를 쫓던 구렁이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솟을대문을 무너뜨리고 한옥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이없게도 황금빛 능구렁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너무나 작아져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빛나던 황금빛조차 잃어버렸다. 거대한 한옥 앞에서 그렇게 거대했던 황금빛 능구렁이는 한옥을 부수고 스스로 집 밖으로 나오자 고작 아주 길쭉한 야구방망이 크기의 검은색 능구렁이로 전락했다.

 나는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그 구렁이 앞에 섰다. 여러 차례 성인 남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허세가 강하더라도 그들이 보이는 마음속 풍경은 매우 처량한 느낌이었다. 작아진 후에도 여전히 능구렁이는 경멸하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저 눈빛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검은 구렁이의 뒤로 가 구렁이의 목 부위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능구렁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부림을 치며 거칠게 내 오른 팔뚝을 감았다. 여전히 강력한 힘이 팔에 느껴졌고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아~~~~~악!!!”

 아마도 곧 팔뚝이 으스러질지 모를 일이었다. 녀석은 내 팔뚝을 으스러뜨리고 나서 기어이 목을 감을 것이다. 작아졌다고 상대를 얕봐서 안 될 일이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다른 한 손으로 구렁이의 머리 부위를 잡고 있는 힘껏 비틀어 버렸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느끼는 분노만큼 육체적 힘도 같이 강해졌다. 한동안 나는 내 팔을 조여 오는 구렁이 최후의 일격을 버텨야 했다. 그 구렁이도 나와 똑같은 힘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구렁이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름다운 황혼은 이미 지고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이 허망한 그런 어두운 밤이 되었을 뿐이다.     

 내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아직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누구도 내 눈동자가 고양이 눈동자처럼 변했다가 정상이 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셋 다 어느새 서양 도색 잡지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앉아 있었다. 방안은 온통 모종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있었다.

 나는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잠깐 팔소매를 걷어 보니 내 오른 팔뚝 전체에 능구렁이가 감았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때, 병호가 

“니 너무 흥분한 거 아이가? 짜아슥! 이런 걸 종종 봐줘야 되는데…. 미안타! 야야! 순진한 아한테 몬 볼 껄 비 줘가 아가 얼굴이 허옇게 질리뿐네!”

 “아냐! 아냐! 괜찮아! 병호야!” 

 그런데 마침 경일이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들아! 과일 묵어라!”

 경일이 어머니의 인기척에 아이들은 잠깐 사이 난리 법석을 떨었다. 방안의 열기를 만들어 내던 모든 것들이 병호의 가방 안으로 들어가는 데 딱 5초가 걸렸다. 뒷문까지 열렸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자 모두들 아무 일 없듯 시치미를 뚝 떼었다. 과일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저녁때가 되었고 경일이 어머니는 저녁밥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저녁은 묵고 가야지! 아무리 바빠도… 어잉, 이 사람들아!”


 나는 미리 집에 말을 하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더 어두워지기 전에 기어이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토요일인데 차라리 집에 전화하고 하룻밤 자고 가자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평소와는 다르게 완강한 내 눈치를 살피더니 같이 따라 나왔다. 대갓집 앞을 흐르는 일성천을 따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이백 칸 종갓집 고택을 은은히 둘러싸고 있던 소나무 숲이 피처럼 빨갛게 황혼으로 물들고 있었다.

 조선 왕가의 피가 흐르는 명문가 종손인 경일이는 그다음 주 월요일에는 등교하지 않았다. 나는 경일이에게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 또한 그 뒤로 경일이가 사는 고택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그 날, 지하 다방집에 돌아와 보니 홀 중앙에 자리 잡은 어항에 6년을 하루같이 내가 밥을 주고 키웠던 큰 잉어가 죽어 있었고 내 팔뚝에 생긴 시꺼먼 능구렁이 자국은 얼마 후 사라졌지만 내 속에 어두운 본능이 생길 때면 슬그머니 무슨 문신처럼 금빛 자국이 되어 나타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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