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창영 Oct 23.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연재소설 #4(하))

다방집 소년 4(하)

(다소 자극적 소재가 있어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일요일 오전에 시간대 별로 쌍화차 할아버지들이 가시고 나면 엄마는 늦은 아침을 챙겨주었다. 미스 나 누나도 엄마랑 같이 목욕탕을 갔다 와서 그런지 엄마와는 뭔가 다른 샴푸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런데 내 거시기가 또 신호를 보내왔다. 아! 이 무참한 거시기야! 너는 왜! 시도 때도 없이 반응을 하는 것이냐? 하필 금요일 밤에 입었던 그 부끄러운 츄리닝 그대로인데 거시기만 오만방자하게 텐트를 쳤다. 거시기야! 너는 도대체 왜 이리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냐?

 누가 보든 아니든 나 혼자 무척 민망했다. 평소 마돈나만큼이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띤 미스 나 누나와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미스 나 누나도 금요일 밤의 곤란한 소동 이후로는 절대 우리 다방집 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무슨 독극물 보듯 했다.

 엄마가 갑자기 “김치도 먹어 봐! 미스 나야!”하자 깜짝 놀란 미스 나 누나는 “아, 네! 마담 언니!” 하며 슬그머니 김치를 들었다 놓았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누나가 나를 보고 웃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내리깔고 엄마의 그 매운 김치에 돼지고기와 비계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까지 곁들여 밥을 먹었지만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마구 들이부었다.

 밥을 다 먹고 여전히 텐트를 친 츄리닝 때문에 부득이하게 양주머니에 손을 불룩하게 집어넣은 불량한 자세로 밥을 잘 먹었다는 말을 남겼다. 허리를 어설피 뒤로 뺀 채 엉거주춤하게 내실을 향하자 엄마가 나를 불렀다.


 “성재야! 너 어디 아파?” 하필 미스나 누나 바로 옆에 서게 되었다. 누나의 시선이 딱 내 츄리닝에 머무는 것만 같았다. 아! 제발 텐트 친 이 상태를 들키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아, 아니! 허리가 좀 아파서!” 그러면서 어쩔 수없이 손 하나를 빼 허리를 탁탁! 쳤다.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아들!” 헉! 공부라니? 공부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쓸모도 없는 거시기와 함께 내 마음도 이리 방황 중이니!

 “엄마! 나 지금 도서관 갈 거야!”

 “어! 그래!”  


 뭐에라도 쫓긴 듯 서둘러 가방을 챙겨 십분 정도 걸어서 D시 유일의 시립 도서관에 갔다. 아, 그전에 다방집 건물 뒤로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는 D시 시외버스터미널 앞 복권 판매대에 가서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500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내 복권 한 장을 샀다. 1억 원의 희망! 여전히 고양이 한 마리가 멀찍이 나를 따라왔다.

 무조건 많이 들어가는 프로스포츠 가방(너무 책을 많이 넣어서 가방과 끈을 연결하는 삼각형 금속 고리가 휘어지기까지 한)에 성문 종합 영어니 수학의 정석이니 국어 참고서니 가득 책을 챙겨갔지만 학교 공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근방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모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매달 시험을 볼 때마다 나는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렇다고 공부 잘하는 아이 마음에 들어가 시험 답안을 훔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시큰둥한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나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도서관 앞 공터에 있는 큰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넓은 공터 겸 주차장을 지나 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도서관 서가로 가 거기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곤 했다. 물론 중 2 이후 내게 고민을 안겨준 데미안도 여기서 읽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 서가에는 야한 책들이 많았다. 월탄 박종화의 <여인천하>도 읽을수록 야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도 얼마 전에 읽게 되었다. 성 쉴피스 성당이나 뤤느가나 몽파르나스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막연히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도시에 대해 마치 매춘부 같다는 표현을 썼다. ‘첫 5분은 좋지만!’이란 표현도 썼다. 어떻게 천하에 파리를 두고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할 수 있나? 기가 막혔다. 하지만 뭔가 솔직한 자기고백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언제 마음 편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평생 안고 가야 할 비밀이다.  

 정작 이 책은 읽자마자 엄청 야했다. ‘타냐….’로 시작하는 성적 묘사는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 적나라했다. 마치 굉장한 스포츠카가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작중 주인공처럼 나도 거시기에 뼈가 있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도대체 시도 때도 없이 발기를 해대는 통에, 어떡할 도리 없이 망연자실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도서관 누구도 19세 미만인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책은 무조건 좋은 거니까! 그렇지! 그래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을 읽었다. 그것도 매우 야한! 하기는 상당히 고가의 삼성 비디오 데크가 있는 다방집에 사느라 별별 비디오를 보기도 했다. 딱히 포르노까지는 아닌데 당시에 보기 힘들었던 일본 영화도 봤다.

 중세 시대 일본 여성이 길을 가다 갑자기 정사를 나누는 등 엄청 야한 데다가 곧이어 일본 무사들이 1대 1 정면 승부를 벌이는데 엄청 인상을 쓰던 무사 1이 순식간에 상대방의 머리를 댕강 자르면 패자의 목에서 피가 주기적으로 솟구쳐 나오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또는 느닷없이 좀비들이 등장해 사람을 내장을 파먹거나 혀를 먹는다든지 정말 별별 희한하고 이상하고 역겨운 비디오들이 많았다. 모든 다 우리나라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분명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다 학교 선생들에게 걸렸으면 나는 정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이런 비디오를 본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밝히자면 나는 희한하고 괴상한 영상들 보다는 이렇게 차분히 앉아 야한 책을 보는 게 더 좋았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글을 읽고 마음으로 상상하는 게 더 다가왔다.  

 그래도 <북회귀선>을 읽다가 내용이 너무너무 적나라해서 자꾸 옆 사람 눈치를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도서관 서가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책을 즉흥적으로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우연히 <희랍인 조르바>를 읽게 된 것도 이 날이었다. 서가를 둘러보다가 운명처럼 이 책을 만났다. 서가 주변 내가 좋아하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한 번 읽기 시작하니 책이 잘 읽혔다. 여하튼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작가의 이름도 평생 처음 들어 봤지만 책을 읽는 순간 그리스에 살았던 조르바에 빠져들었었다.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나는 남들은 모르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술 더 떠 다방에 오는 손님들의 체취를 맡으면 그의 인생이 보이기까지 했다. 간혹 사람의 마음을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다.

 문제는 내가 어떤 분노에 사로잡힐 때마다 내게 분노를 일으킨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무슨 수를 쓰든 그의 목숨을 앗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울 엄마가 여기 D시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이유는 역시나 나의 분노와 그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시설에서 백발의 원장이 죽고 나서 얼마 후 엄마의 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무척 안심했다는 말을 했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는 곧바로 우리나라 제2의 도시로 쫓기듯 내려와서 선술집을 열었다. 왜 거기까지 왔는지 그 저간의 사정은 나는 잘 모른다. 엄마는 여기까지 내려온 것은 무슨 교수님 덕택이란 말씀을 자꾸 하셨지만 나중에는 그런 말조차 아꼈다.

 엄마랑 내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가파른 산등성이에 단층집들로 빼곡한 어느 동네를 관통하는 2차선 자동차 도로 주변이었다. 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상가를 이루는 작은 시장이 있었는데 그 시장 상가 1층이었다. 달랑 방 하나 있는 2층에서는 살림을 살았고 시멘트 계단을 내려오면 1층에서는 선술집을 했다. 이 술집에서 근처 국민학교 1, 2학년을 다녔다.

 그런데, <고향집>이라는 선술집을 하던 엄마의 짓궂은 손님들이 술집 근처나 집에서 하나 둘 죽어나가면서 우리 술집에 대한 소문이 고약하게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가 요물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하던 시장 상가 선술집 근처에 단독 주택 2층을 통째로 빌려 점집을 요란하게 하던 50대 초반의 무당이 우연히 우리 술집 앞으로 지나다 나를 보고는 벌벌 떨었던 것이 문제였다. 당시 우리나라 제2의 도시에서 점 잘 보고 용하기로 소문이나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중년의 무당이 8살 먹은 사내아이에게 벌벌 떨었으니 시장 인근에 내가 요물이라는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사실 내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30대 초반에 아이 하나 딸린 미모의 서울 여자가 가파른 오르막 도로가 관통하는 한 시장 상가에 세를 얻어 2층에서 어린 사내아이를 하나 키우고 1층에서 각종 전과 나물 같은 제사음식을 안주로 막걸리를 파는 선술집을 하니 당연히 치근덕거리는 사내들이 없을 리 만무했다.

  언젠가 잠을 자다 깨 양은으로 된 막걸리 잔이 떨어져 나는 소리가 요란해 1층에 내려가 보니 주방에서 술이 취해 엄마를 뒤에서 붙잡고 엄마의 음부에 손을 넣으려던 근육질의 아저씨를 보자마자 엄청난 고성을 질렀다. 왼손 팔에 뽀빠이 문신을 새긴 그는 마도로스라 불렸고 자신을 화물선 기관사라고 말했었다. 간혹 놀러와 이런저런 외국 얘기를 늘어놓더니 세계의 사창가는 다 다녀봤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던 사내였다. 아무리 해외 여러 곳을 다니는 화물선 기관사라고 해도 나는 분노했다. 분노했고 또 분노했다.

 엄마는 그때 처음 분노한 내 눈을 제대로 보고 경악했다. 내 눈의 눈동자가 고양이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다방집 1층 셔터 앞에서 술 취해 행패를 부리던 주씨 아저씨의 목숨을 앗으려 했던 때 엄마는 또 고양이 눈을 하고 있던 나를 본 것이다.

 어쨌든,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 근육질의 사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다. 누구도 그 남자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몰랐다. 나도 그 사내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선원의 마음속에서 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를 날고 있었다. 파도가 높은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큰 화물선 갑판에 있던 사내에게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사내의 목을 단박에 꺾어버렸던 것 같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만큼 나의 분노가 컸다. 엄청난 근육질의 사내였지만 내면의 자아는 형편없이 허약하고 초라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가게 라디오에서는 혜은이의 <제3 한강교>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엄마는 그 아저씨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그전부터 두어 번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었지만 결국 선술집 안에서조차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가자 엄마는 결국 그 시장 상가를 떠나야 했다. 나는 시장을 떠나던 그 당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서울말을 또박또박 쓰는 8살 사내아이를 그렇게나 두렵게 쳐다보는 시장 사람들의 불길한 눈길을! 나는 다짐했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들을 다른 이들의 눈에 띄게 하지 않을 것을…….

 무엇보다 형사들이 몇 번씩 찾아왔었다. 사인을 찾기 위해 부검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러면서 몇 번씩 형사가 우리 술집에 들리던 와중에 젊은 형사가 한 명이 남았다. 이형사라고 불리는 20대 후반의 그 형사는 이 곳에서 흔치 않게 고운 서울 말씨를 쓰는 데다가 아주 어여쁜 엄마에게 무척이나 친절했다. 어쩌면 그 형사 소개로 D시까지 오게 되었다. 언제 생각해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가끔 그 형사가 우리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언젠가 자다 눈을 떴을 때 그 형사가 엄마 옆에 자고 있는 걸 보고 무척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은 오래가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점차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몇 해 전 결혼을 했다고 했다. 엄마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간혹 그 형사처럼 엄마나 나에게 친절한 사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음탕한 농담에 음흉한 눈길로 엄마의 몸매를 살피는 개종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여쁜 엄마를 괴롭히는 사내들이 싫었고 술 취한 남자 어른들의 추행이 너무 미웠다.

 그런데 여기 D시에 와서도 엄마는 여전히 술집을 했다. D시 신도심 인근의 초등학교에 전학을 가자마자 얼마 후였다. 하교 길에 “너거 집 술집 하지?” “너거 엄마가 직접 술도 따르나?” 라며 이것저것을 짓궂게 묻던 친구들이 있었다. 너무 어린 친구들이라 죽여 버릴 수도 없어서 너무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갔었다. 이제 더 이상 술집을 하지 말자고 애원을 했다. 역시나 엄마의 눈이 흐려졌고 이윽고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국민학교 4학년이 되어서 내가 술에 취한 광주 출신 누나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는 사고를 치고 나서야 엄마는 이 지하 술집을 다방집으로 전업했다. 그런데, 다방으로 바뀌고 나서도 더 싫었던 것은 다방집으로 전업을 하고 나서도 역시나 어디서 들었는지 친구들이 나에게 우리 다방집 레지 아가씨들도 티켓을 끊고 몸을 파느냐는 질문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됐다손 치더라도 아이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데 싶었다. 그때도 아주 잠깐 녀석의 목숨을 앗을까 고민했다. 사람들은 목숨을 걸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겉으로 몸치인 데다가 싸움에 젬병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런 말을 한 아이와 몸싸움을 벌였다.

 그런 아이들과 몸싸움을 했고 많이 맞기도 맞았지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절대 어린것들은 죽이지 말자고. 어쩌다 불량한 친구에게 돈도 뺏기고 여러 명한테 몰매를 맞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녀석들의 마음만큼은 가만 두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이제 몸싸움조차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내게 친절했던 경일이를 마구 때리고 괴롭혔던 녀석만큼은 가만두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떤 분노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시작하자마자 그런 일이 있었다. 올 때마다 커피 한 잔 달랑 시켜놓고 심하게 레지 누나들을 희롱하던 강씨 할아버지가 중풍을 맞았다. 착한 미스 서 누나는 말도 못 하고 당했다. 본인은 짓궂은 장난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소위 글밥을 먹었다는  사람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봤지만 나는 애써 태연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어떤 딜레마에 시달렸다. 나도 모르게 엄마나 우리 다방집 레지 누나들을 괴롭히는 남자들이 있으면 그냥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방에 보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강씨 할아버지나 주씨 아저씨의 목숨을 앗는 일은 내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내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지만 말이다.   

 내가 경험한 마음의 힘은 나이나 지위, 경제적인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에 들어가 봐야 그 사람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떤 경우, 큰 성벽처럼 답답한 느낌이 드는 상대를 만날 때면 웬일인지 그 마음속에 맹수나 괴물이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엄마의 참담한 눈이 떠올랐다. 엄마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엄마는 자신이 등록금을 못 내서 선생에게 불려 나가는 아들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17년 평생을 지켜본 바로는 어떤 도움 없이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고 사는 밥을 먹고사는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기 너무 싫었다. 특히 남자 어른이 되기 싫었다. 말했듯이 어디 피터팬이 사는 나라가 있으면 거기로 가고 날아가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얼마 있으면 엄마에게 독립해 혼자 살아가야 할 때가 찾아올 것이다. 물론 부모 없는 아이들이 같이 사는 시설에 보내졌던 6살 이후로 늘 염두에 두던 문제였다.

 그런 내게 지금 읽고 있는 <희랍인 조르바>는 어떤 해방감을 맛보게 했다. 삼라만상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조르바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맞아! 그렇게 살아야 해! 소설에 어느 젊은 가톨릭 신부가 자기 거시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돌로 자기 거시기를 내리찍어버리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인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꼴리는 거시기를 가진 나로서는, 또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 때문에 늘 뭔가 비밀스럽게 살고 있던 나로서는 조르바처럼 시원시원한 인물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천주교 신부가 되겠다며 외지로 떠난 퉁퉁한 창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녀석은 내게 맹세했던 것처럼 수음 따위는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녀석이 잘 있는지 연락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어쨌든 책에 흠뻑 빠져 점심도 거른 채 책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희랍인 조르바에게 대장이라 불리던 주인공과 조르바가 칼 같이 단호하게 이별을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도서관 주변에서 이상하게 아주 위험하면서 강렬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노랫소리 같기도 했고 웅얼거리는 주문 같기도 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뒷골이 쭈뼛해져서 아주 답답했고 순간 목이 콱 조여 왔다. ‘아! 이 느낌! 도대체 이건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고 주변을 둘러봤다. 목이 조여 오면서도 그 느낌은 뭔가 모를 그리움 같았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큰 끌림이었다.

 그때 도서관 서가의 문이 열렸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내 또래 소녀였다. 탄탄하고 건강한 몸매에 매우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혼혈 같았다. 전체적으로 서구적인 매력과 동양적인 매력이 뒤섞인 매우 독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가슴이 매우 건강했다.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이 딱 마주쳤고 그 소녀는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눈이 점차 흐려졌다. 그 순간 문뜩 나는 정신을 잃고 책상에 머리를 쿵 박고 말았다. 완전한 암흑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Underground Bo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