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억울함에 대처하는 법
평소보다 일찍 등교한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직 아침조회시간 전이라 핸폰을 내기 전이다. 전화올 타이밍이 아닌데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무슨 일이지? 아이가 이틀 전 결석한 결석계 서류를 제출하러 교무실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째려보면서 니네 엄마 진짜 이상하다, 왜 전화를 미리 안해주냐 그리고 니네 엄마가 전화통화하면서 하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면서 다른 선생님들이 돌아볼 정도로 소리를 질러서 엄청나게 기분이 나빴다며 울먹울먹했다. 아..내가 직감한 게 맞구나. 역시 예상한 대로 진짜 이상한 부류의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분노를 푸는 사람. 직업이 교사이기에 당하는 건 힘없는 아이들인 것이다. 이렇게 나같은 학부모도 한방 가끔씩 얻어맞고. 대부분 좋은 선생님들이 많지만 이런 류의 선생도 적지 않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고 주변에도 그렇다. 심호흡 한번 하고 아이에게 대답했다. 선생님이라고 다 완벽하거나 좋은 거 아닌 거 알지? 엄마 보면 알잖아. 엄마도 교수고 선생님이었지만 맨날 화내고 실수하고 그러잖아. 너희 선생님도 마찬가지인거야. 그냥 그 선생님이 뭔가 다른 일로 기분이 안좋았나봐. 기분나쁘겠지만 마음 가라앉히고 시험 잘 봐! 괜찮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대답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입시를 한달 앞둔 아이들에게 저런 식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담임을 둔 학부모의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내 실수로 불똥이 아이에게 튄 것 같아 더 속이 상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아이가 생리결석 냈다고 우리반엔 왜 이렇게 생리결석이 많냐고 아침 조회시간에 큰소리를 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억울함'을 받아들이며 그것과 같이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예측하고 준비해도 그것과 전혀 다른 일들이 계속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내 뜻대로 안되는 상황에 분노하고 당황해하고 억울해한다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이 들 것이다. ‘억울(抑鬱)’은 한자 그대로 억눌리고 답답한 상 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람이 처한 사정이나 일 따위가 애매하거나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 하고 답답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나의 경우, 천재지변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적인 억울함은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예를 들어, 도로에 갑자기 큰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는 바람에 급하고 중요한 일에 늦어서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피해를 보는 경우라든가, 방금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는데 몇 시간 후에 그 물건이 세일품목으로 바뀌었다든가, 가족들 중에 내가 가장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부모님이 입원했을 때 내가 돌봄을 도맡아야한다든가 하는 일 등이 그런 것들일 거 같다. 억울함을 느끼는 상황 중에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게 바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발생되는 억울한 감정일 거 같다. 내 의도가 아닌데 곡해나 오해로 인해 공격을 받았을 때나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를 믿고 최선을 다했는데 배신을 당했다든가 하는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이런 큰 일들이 아니어도 매일 매일 일상에서도 매우 소소한 억울한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내 아이처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잘못이 아닌데 혼이 난다든가 직장에서 동료가 한 농담에서 상처를 받거나 상사의 말투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일 등 그런 일들이 허다하다. 그럴 때 일일이 다 그것들에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내 자신이 지쳐서 소진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럴 때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을 나는 자주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래,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얼핏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영향을 주지 않을 (중요한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 소소한 억울한 일에 나는 가능하면 그렇게 대응하려고 그 말을 자주 되뇌인다. 실제로 효과가 있다. 억울함은 나의 반응이고 나는 나의 반응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아이가 억울하게 학교폭력에 연루되어 진술 및 조사를 받으러 같이 교육청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거보다 몇 십 배나 억울한 일들이 많이 생길거야. 근데 너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억울한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가. 너에게만 생기는 일은 아니야. 앞으로 대학교에 가서도 또 사회에 나가서도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런 억울한 일들 중에서 작고 소소한 것들은 그냥 받아들이고 정말로 강하게 대처할 일들은 신중하게 잘 대처하는 걸 배우면서 살아가게 될 거야. 엄마도 아빠도 어른이지만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그런 일을 받아들이거나 대처하는 게 쉽지는 않아. 그런데 우리는 가족이고 어떤 일이든 함께 나눌 수 있고 언제나 너를 응원할거야. 그러니까 이런 일에 걸려넘어지지 말고 우리 힘내자 (마지막 멘트는 좀 닭살이 돋았던 거 같다..근데 그 당시엔 나름 심각한 상황이라 아이가 묵묵히 잘 들어주었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