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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Apr 16. 2022

'내가 책임져야 할 한 뼘 땅'

얼떨결에 나에게 온  정원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계획하고 고민하고 추진해서 실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얼떨결에 어떤 일이 나에게로 뚝 떨어진 경우가 있다. 모든 것을 자기주도적으로 하고자 했던 나에게 전자의 경우는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적어도 시작과 과정만큼은 의욕이 넘쳤으며 의미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고 어쩌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마지못해 그 일을 하더라도 처음에 느꼈던 저항감을 끝까지 떨쳐내기가 참 힘들었다.


2년 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가족 모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공간 이동이 필요했다. 가족 구성원들의 독립적인 공간확보가 절실했다. 결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인이 먼 곳으로 이사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평소에 그 집을 마음에 들어했던 나는 번개불에 콩궈먹듯 이사를 추진했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일들이 척척 타이밍이 맞았다.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작은 화단이 있는 1층 빌라는 익숙지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사 후 처음 몇 달은 급한 이사로 인한 피로감과 무더위, 갑작스런 무기력증 때문에 집의 일부인 뒤편 작은 공간과 화단에 발을 디뎌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그 공간이 마치 없는 듯 꼬박 1년을 그냥 실내에서만 살았다.


이사온 후 어언 1년이 지난 어느 봄날 아침,  뒤늦게 그 땅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황폐한 그 자리에 초록초록 작은 싹들이 땅 위를 비집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대부분 잡초이거나 이 정원의 터줏대감인 길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떨군 수많은 은행열매에서 싹을 틔운 은행나무의 어린 2세들이었다. 삐죽삐죽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 주인도 줄곧 방치했던 그 마르고 황폐한 빈 땅에 이웃집에서 던졌을 법한 빨래집게들와 담배 꽁초들도 눈에 거슬렸다. 그 때만해도...'아휴 저걸 언제 치우나. 없는셈치고 그냥 냅두자'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즈음 공동주택 단톡방에 누군가가 은행나무가 너무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은행잎들도 많아서 성가시다며 화단의 나무들을 몽땅  베어버리자는 의견을 냈다. 여기에  명이 동조하는 댓글을 달았다.  글을  순간 이상하게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너무 귀찮지만 .. 내가 이대로 이 공간을 방치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없는 압박감과 의무감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 집 정원은 법률적으로 따지면 빌라 전체의 공동소유다. 건물을 세울 당시 아파트 공동 정원처럼 1층에 위치한 제법 큰 화단이었는데 이 건물의 앞과 옆으로 다른 빌라들이 잇달아 세워지면서 옆집과 이 건물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생겼던 거 같다. 그래서 삼면에 벽을 세우고 위로는 철망 가림막을 만들면서 외부와의 통로가 사라졌고 이로인해 자연스럽게 1층 세대 집의 일부가 되었다.


정원 가드닝은커녕 실내 식물 하나 키우는 것도 잘 못해서 매번 말라죽이기가 일쑤였던 나였기에 혼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했다. 그 때 옛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오래 전 같은 분야의 일을 하다가 일찌감치 자연과 환경에 눈을 떠서 숲 가드닝과 도시농부를 하고있는 한 친구에게 S.O.S를 보냈다.


와서 좀 도와줘!

나 정원이나 식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갑자기  책임질 땅이 생겼어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와줘...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른채로

내가 책임져야할 한 뺨 땅이

얼떨결에 나에게 왔다.



* 제목 “내가 책임져야 할 한뼘 땅"은  헤르만 헤세의 <정원가꾸기의 즐거움>에서 헤세가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알결에 맡게 된 땅을 보고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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