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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Apr 08. 2022

위로해줘서 고마워

식물이 나를 돌볼 때

'위로'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consolation'.  우리는 힘들 때 주로 어디에서 어떻게, 그리고 어떤  '위로'를 받고 있을까? 동료나 친구의 마음을 담은 다정한 말 한마디는 아마도 인간관계에서 받을 수 있는 위로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술, 달콤한 케이크나 진한 커피 역시 나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는 일,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쇼핑을 통해서도 위로받을 수 있다.  일을 해낸 후의 성취감과 보상 그리고 자녀가 잘 자라주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큰 위로가 된다. 예술활동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의 경우, 절대적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이 경우, 아마도 앞에 열거한 인간적인 층위에서의 위로와 비교했을 때 더 깊고 오래 지속된다는 차이점이 있을 것 같다.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은 눈과 입과 귀를 즐겁게 하는 위로를 끝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자극과 소비를 통해 받는 '위로'는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이다.     


지난 해 5월에 쓴 글을 마지막으로 브런치를 떠나있었다. 그동안 누구에게나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들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위에서 언급한 여러 차원에서의 크고 작은 위로를 받고 힘을 내고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떤 큰 사건을 통한 위로보다 일상의 작은 루틴 하나가 그동안 지친 나를 꾸준히 위로해주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온다. 그건 지난 몇 달 동안 추운 겨울 정원을 피해 실내에 들여놓은 식물들이 죽지 않게 물을 준 일이다. 

내 몸이 힘들고 귀찮아도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때를 놓치면 모든 가능성이 박탈되는 일. 그 중에 하나가 식물을 키우는 일이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 햇빛이 드물게 쨍 비칠 때 잠시 시간맞춰 베란다 문을 통해 바람과 해를 쪼일 수 있게 하고 다시 해가 저물면 따뜻한 실내로 들여놓는 일. 자주 하지는 못했다. 다만 시들지 않게 꾸준하게 물을 주는 일 만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식물에 물을 주는 일은 급하게 쏟아붓지만 않는다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가라앉고 진정된다.  물이나 바람, 햇빛이 부족해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번 넘긴 작은 식물들. 열대지역이 태생이라 추위에 약한 녀석들을 적당한 온도를 맞춰 돌보는 일상의 짧은 순간순간들. 아무리 복잡하고 괴롭고 무기력한 상태였어도 적어도 식물들 하나하나에 조용히 물을 주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웠던 것 같다. 


이제 드디어 봄이 돌아왔고 그동안 방치되었던 메마른 정원의 흙을 뚫고 초록새싹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것도 안했는데 그동안 한뼘 정원의 땅은 눈과 추위, 비와 바람을 견디면서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가 몰라도 어떤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추위를 피해 실내에 피신해있어야 했던 식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마음껏 (다시 추위가 올 때까지) 밖에 머무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그동안 나를 돌보아주고 위로해준 식물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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