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바친 단편영화로 3년만에 영화제에 가게 되다

내 쓰레기 같은 영화

by 씨네마조이스트


몇 개월 전, 독립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다녀오게 됐다.
2023년에 처음 단편영화를 완성했고
2024년에 영화제에 쭉 돌렸지만 어떤 곳에서도 초청을 받지 못했었다.
그 후로 한 배우 형으로부터 분기 별로 한 번씩 전화가 왔다.


배우

OO아 너 영화 진짜 재밌어.


감독

(웃으며) 편집 다시 하자고요?


배우

앞에 IPTV 같은 장면만 좀 어떻게 못하냐?

뒤에 진짜 재밌는데

앞에를 못 넘어가는 거야.


분기별로 한 번씩 편집하자는 전화가 왔었고

나는 어차피 망한 영화다.
그것 밖에 안 되는 영화다.
죄송하다.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더 좋은 작품을 찍어서 꼭 영화제를 같이 가자는 말로 넘겼었고
이 형은 포기를 못했다.

그러다 올해 5월인가.
약 1년 반쯤 만에 역시나 분기별로 전화가 오던 때, 마침 한가하던 그때 편집본을 열어봤고
생각보다 드러내야 할 부분들이 보였고 편집을 다시 마쳤다.

그리고 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편집본을 영화제에 한 번 내봤고
선정 연락이 왔다.



약간의 본문 텍스트 추가.png 영화제 선정 관련 메일



주변에 소식을 알리면서 말했다.
우연찮게 가게 됐다. 그렇게 큰 영화제는 아니다.

근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꽤나 기뻤던 것 같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처음 제작지원을 받아 나름 스탭도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에서 찍은 작품이었고
내 개인적인 사비 또한 많이 투자되었다.

또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내심 꼭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보고 싶었다.

추운 겨울에 정말 배우, 스탭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밤새워가며 만들었던 작품이다.

지금이면 아마 그렇게까지 하지 못할 것 같은... 정말 갈아만든 작품이다.

근데 결국 1년 동안 영화제에 가지 못하자 내가 항상 주변에 했던 말이 있었다.


감독

쓰레기야. 그 작품.


지인

뭐가 쓰레기야. 잘 만들었어. 재밌어.


감독

쓰레기야. 재미없잖아.

그냥 열심히 만들었고 다른 작품으로 영화제 가면 되지.


말만 그랬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연출적으로 모자란 부분이 너무 너무 많이 보였고 그냥. 뭐. 별로였다.
진심으로 별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제에 못 갔다고 생각했다.

근데 왠걸 막상 영화제에 가게 되니
작품이 다시 살아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죽인 작품이 스스로 갑자기 부활한 느낌이었달까.
내가 살린 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난 것 같았다.

결국 어쨌든 저쨌든 영화제에 가게 됐고
영화제에 가기 전에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내가 만든 영화는 코미디다.
근데 나는 수천 번을 봐서 그런가.
안 웃겼다.
안 웃긴 것만큼 민망한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싸한 분위기 속에 영화가 상영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꽤 컸다.


회심의 코미디 장면, 허나 관객 중 아무도 웃지 않고 민망한 기운만 감돈다.

관객들도 덩달아 민망한지 자리에서 꿈틀 거린다.

그걸 본 감독, 갑자기 일어나더니 소리를 지른다.


감독

그럴 줄 알았어!!

재미 없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나는 망한 영화를 만들었다!!!

내가 만들었다!!!!! 와!!!!!!

그러게 선정 왜 했어!!

나 쪽 한 번 팔려보라고 뽑은 거지!!!


그렇게 상영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이 소리를 치고 나가는 감독...


결국 그는 그렇게 죽었다.


이런 망상도 했다.

몰라.
젠장.
쪽 한 번 팔리지 뭐.

결국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


우리 섹션에는 앞에 두 작품이 상영됐고 내 작품이 세 번째 순서였다.
근데 참... 두 번째 작품이 너무 잘 찍어서 기가 많이 죽었다.
심지어 두 번째 작품도 코미디였고 반응이 참 좋았다.

젠장.
내 영화가 시작됐다.


감독

(머릿 속 생각) 재밌나. 관객들 보나? 집중하나?


그래도 좀 보는 것 같기도.

앞 부분 재미 없는데 말해줄까. 재미 없다고.

근데 10분만 참으면 그때부터 좀 재밌는 장면 나오니까 좀만 기다리라고.

10분만 참으면 그렇게까지 재미없진 않을 거라고.


(지나가는 장면들을 보며) 아 저 장면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줄까.

설명은 좀 해드리면 조금이라도 재밌게들 보시지 않을까.


내 영화 10분 쯤에 배우가 카메라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그 장면에서 객석 좌측 뒤쪽. 허업...!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인터뷰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감독

방금 '허업...!' 하신 분 누구시죠?

아 그쪽에 계시군요.


놀라신 건가요?

왜 놀라셨죠?

혹시 지금 재밌으세요?

지금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거 맞죠?

감정이입을 좀 하셨나요?

지금까지 영화 어떠셨죠?

재밌으셨나요?

앞으로도 재밌을 것 같나요?


생각보다 볼만한가...? 싶은 생각과 동시에 마의 10분 구간이 지났으니
아마 지금부터는 그래도 반응이 조금씩 나와야... 푸하핳!!!

.....!!!!!!!

누군가 웃었다!!! 웃었어!!!!
이건 코미디다!! 코미디 영화가 맞아!!

객석에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꽤나 많이들 웃었다.
꽤. 진짜 꽤 다들 많이 웃었다.

하하하(흐흑...)핳 캬컄카 하핳 ㅇ아아핳하핳아(흐흑..)항하핳
하훟우에헤헿ㅇ
하하(흐흐흑)하핳!!! 킼키쿠킄

반응이 꽤나 좋자 옆에서 지인이 웃으며 나를 보면서 말했다.


지인

(웃으며) 반응 좋은데?


어두워서 안 보였겠지만 나는 울고 있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이 울었다.
모두가 웃는 와중에 나는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웃어주는 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면
내가 쓰레기라고 욕했던 내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울컥했다.

관객의 웃음소리로 쓰레기가 아님이 증명된 것 같았다.

내가 쓰레기라고 욕했던 내 작품을...
아니라고 좋은 애라고 재밌는 애라고 관객들이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감독

이 쓰레기야!!!

쓰레기 같은 놈!!

죽어!!

없어져버려!!!!


자신의 영화를 마구 밟아대는 감독. 근데 그때 누군가 감독의 영화를 감싸며 대신 맞아준다.


감독

너 뭐야!!

비켜!!!

이 쓰레기 같은 놈 당장 죽어야 돼!!


누군가

아니야...!!! 진짜 얘 괜찮은 애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감독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쓰레긴데?!??!?

니가 뭔데 니가 뭘 알아??!?!?!?


계속 마구 짓밟으려고 하는 감독. 그러자 누군가, 감독을 밀치며 더 강하게 외친다.


누군가

아냐!!!!!

내가 알아!!!!

얘 좋은 애야.

진짜 좋은 애야!!!


...오히려 너가 모르는 것 같은데?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감독. 물어본다.


감독

진짜?

진짜 괜찮은 애야?


누군가

어. 진짜 괜찮은 친구야.

잘 좀 해줘라.


그때 극장에서, 관객들한테서 내가 구원 받은 것 같았다.
너 영화 찍어도 된다고.
한 번 찍어보라고.
나쁘지 않다고 꽤 재밌다고.
적어도 쓰레기는 아니라고.

속으로는 제발 그 작품이 인정 받았으면 좋겠다고 발악했던 것 같기도.





곧 유튜브 <여백조각> 채널에도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나중에 많은 시청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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