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이고 처절한 춤사위
*본 연재글에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구독 전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너 <조커> 어떻게 봤어?"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 스토리를 안다면 이 영화를 잘 봤다고 하기에도 조금 이상하거든요. 그렇다고 재미없었다고 하기엔 러닝타임에 비해 영화가 너무 빨리 끝난 느낌이고. 좀 슬펐어, 그렇게 답하면 상대방의 머리 위에 더 많은 물음표가 뜨죠. 뭐,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렵니다. 너무 잘 봤고, 슬펐고, 아름다웠고, 그에게 공감도 됐다고 말이에요.
<조커>는 2019년에 개봉했습니다. 제게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연도였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영화를 볼 때 그 감상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건 본인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19년에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사회와 정치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일 때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제게 많은 도움이 됐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스스로를 너무나도 피곤하게 만들던 시기였죠. 그래서였을까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저를 처음부터 사로잡기에 딱이었어요. 사회 비판이라는 주제와 떨어질 수 없는 이 영화가 그 시기의 제게 준 매력점은 매우 컸죠.
추적추적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듯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그로 인해 답답한 느낌을 자아낸다기보단 오히려 긴장감을 조성해 흥미를 유발합니다. 그런 분위기 치고 색채감이 강한 것도 의외고요. <조커>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분명 이상한데 웃기지는 않는 것도, 묘하게 홀리듯 보게 되는 것도 다 이 영화가 건 어떤 최면 같습니다.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아서(호아킨 피닉스)가 노트에 끄적일 때, 그의 필체에서 드러나던 고통이 인상깊습니다. 이 장면을, 이 문장을 다시 곱씹으려고 한 번 더 영화를 보기도 했고요. 오역 논란이 많았던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가치있기를' 이 문장도 저는 번역과 상관없이 좋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문장들을 모두 이해했고, 그 문장들에 공감했으니까요.
2019년 개봉 후 영화가 내려가고 따로 OTT에 업로드되지 않아 작년 재개봉 당시 오랜만에 다시 <조커>를 봤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2019년의 저와는 상당히 많은 부분 감상이 달랐다는 것이죠. 2023년, <조커>를 보면서 느낀 건 감동이나 슬픔보다는 공포와 분노였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던 그 장면은 여전히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완벽한 연출이라고 감탄했지만요.
2019년에는 <조커>라는 영화에 완전히 스며들어 감상했다면, 2023년에는 한 발자국 떨어져 감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서의 슬픔보다는 아서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먼저 보였고, 그 끔찍함에 공포스러운 감정이 대부분이었던 거죠. 이런 영화에는 이런 감상법이 맞는 거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인공에 깊게 이입하지 않기, 멀리 떨어져 상황을 바라보기. 우리가 아서에게 이입한다고 해서 똑같이 끔찍한 짓을 저지를 일은 없겠지만 감정 소모를 줄이고 정신 건강을 지키는 건 영화 감상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저는 누군가 처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대로 대답할 것 같네요. <조커> 그 영화, 참 잘 봤다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