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마블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뭐예요? 하고 물으면 고민이 깊어지지만, 마블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건 뭐예요? 하고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작품을 말한다.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연출한 샘 레이미의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 안에서 설명되는 세계관 자체가 나의 평소 생각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작품에 빠져든 게 크다. 참, 앞선 시리즈에서보다 레이첼 맥아담스를 더 길게, 더 다양한 모습으로 마음껏 볼 수 있었던 것도 한몫한다.
나는 잘 때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던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꿈을 꾸지 않은 날이 없기 때문이다. 푹 자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날은 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뿐 꿈을 꿨다는 건 확실히 인지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에는 꿈 속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길게는 한 달까지 이게 꿈인 줄도 모르고 꿈 속에 살다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 시기에는 꼭 잠을 자지 않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꿈 속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할 만큼 또렷한 의식에, 당연히 제대로 잠들지 못했으니 일어나면 피로감이 한가득이다.
한때는 잠에서 깨지 않길 바랐던 날들도 있었고, 그런 날엔 오히려 꿈 속의 나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분명 내가 맞는데 내가 사는 환경과는 다른 곳에서 내가 하는 일과는 다른 일을 하는 내가 펼쳐질 때, 저절로 다른 세상의 나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꿈이 아니라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내 모습을 꿈을 통해 보고 있는 거라고. 너무 생생하고 또 너무 자세해서, 그리고 꿈 속의 내가 현실의 나와는 다르게 너무 잘 살고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위안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나는 이렇게 힘들어도, 다른 세상의 나는 행복할 수 있구나. 가끔은 그 사실이 위안이 되기는커녕 억울하기만 할 때도 있었다. 행복한 쪽이 내가 되면 안 되는 건가? 꿈은 왜 하필 행복한 나를 보여 줘서 이렇게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걸까. 그쪽 세상에도 한 번쯤 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나 또한 꿈 속에서 나를 보는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느낄까.
*아래 글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지만, 마블 팬들에게는 이 작품이 대표적인 불호 작품인 듯하다. 기존의 마블 영화 분위기와 다르고 흔히 말하는 캐붕, 캐릭터 붕괴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빌런으로 변신한 완다를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배우인 엘리자베스 올슨은 이 역할을 맡아 굉장히 즐거웠다고 했고 나 또한 그런 완다의 모습이 캐붕으로 느껴지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완다라는 캐릭터의 내면을 본 것 같아 새롭고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또한 평소 마블의 평이한 연출이 지겹게 느껴졌던 나로서는 이 작품에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음악과 점프 스케어가 히어로 영화에서는 익숙하지 않았으나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져 신선했다. 그런 연출이 영화의 메시지와 조화가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대혼돈'이라는 제목의 표현과 부족할 것 없이 어우러졌다.
간단한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전 연인이었던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어김없이 도시에 나타난 외계 생명체와 싸우던 스티븐은 다른 차원에서 온 차베즈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돕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완다에게 갔다 사건이 시작된다. 다크호스를 손에 넣고 멀티버스를 지배하는 완다의 공격을 받다가 차베즈의 능력이 작용해 열린 차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둘은 지구 838이라는 세계에 떨어진다. 그 세계에서 스티븐은 달가운 인물이 아니었고, 완다를 막고 차베즈를 구해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838 세계의 크리스틴과 함께 고군분투하게 된다.
"만일 어딘가에 당신이 행복한 세계가 있다면, 가고 싶지 않겠어?"
스티븐이 처음 완다를 찾아갔을 때 그녀가 한 말이다. 완다는 행복하고 싶었고, 끔찍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있는 세계를 찾게 되고 그 세계의 완다가 되기 위해 점점 악해진 것이다. 어둠이 장악했다고 표현해도 무방한 이 영화의 중심을 '행복'이라는 개념이 관통하고 있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스티븐이 지구 618 세계로 넘어갔을 때는 그 세계의 스티븐이 질문한다. 행복하냐고 말이다. 지구 618의 스티븐은 크리스틴과 함께하는 행복한 세계를 찾다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모두 다른 현재를 살고 있지만, 중요한 운명을 비껴나갈 수 없었던 인물들은 똑같은 죄책감 속에서 비슷한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크리스틴 앞에서 한 번도 솔직할 수 없었던 스티븐은 다른 세계의 크리스틴 앞에서 처음으로 솔직해지고, 크리스틴은 그런 스티븐에게 두려움에 맞서 보라고 말한다. 살아온 세계는 달랐지만 늘 함께했던 서로의 모습에는 다름이 없었기에 둘은 그 자체로 위로받고 그 존재에 안심한다.
행복을 위해 삶을 망치는 것. 인간들은 참 이상하지 않은가. 행복하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 일이 많은 것을 망치게 되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적지 않게 보이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도 '멀티버스'라는 세계관을 통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많은 것에 후회하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과거를 뒤돌아 보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지만 사실 그러고 있는 시간에 우리는 행복을 놓치고 있다는 것.
미래를 넘겨짚고 이 사람을 걱정한다는 핑계로 관계를 망친 스티븐이지만 눈 앞에 있는 감정,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했다면 그 운명을 바꿀 수도 있었을 테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스티븐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또한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부디 내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스티븐에게, 완다에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바란다. 행복하기 위해 애쓰다가 행복을 놓치지 말고,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다 틈틈이 행복하기를. 그렇게 다른 세계의 나를 부러워하지 않고 가끔 닿지 않는 안부만 물으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