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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국 Aug 12. 2024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의 경우에는 올해 들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없다. 작년 10월, 영화제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던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모른다. 완벽한 하루가 있었는데도 심적으로 힘에 부쳤던 나머지 완벽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거겠지. 계획한 것들을 해내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잠자리에 눕는다면 그것이 완벽한 하루일 텐데 쓸데없이 완벽에 너무나도 큰 기준을 세우고는 한다. 그렇게 해 봤자 힘들어지는 건 나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퍼펙트 데이즈> 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주인공의 하루에는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다. 그저 새벽에 일어나 일과를 마치고 잠들 때까지 하루의 루틴을 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출근 전까지 서두르지 않고 루틴을 해낸다는 게, 책 속의 한 문장이라도 들여다 보고 잠에 든다는 게. 제대로 몸에 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쉬는 날에도 그는 정해놓은 순서로 움직인다. 세탁소에 가서 빨래를 하고,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중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단골 술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물론 이런 모습이 숨 막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더 없이 완벽해 보였다. 마음이 편해지고 위안이 되었다. 매일 새벽마다 문을 나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짓는 그의 상쾌하고 행복한 표정 때문이었다.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던 그의 정갈한 하루에 하나 둘 침투하는 사람과 상황이 그의 삶을, 그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어놓는다. <퍼펙트 데이즈> 는 그 과정을 그려냈다. 그렇게 흔들린 후에도 그는 아침을 맞이하며 여전히 상쾌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아래 글에는 <퍼펙트 데이즈>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의 주인공 히라야마를 연기한 야쿠쇼 코지는 <멋진 세계> 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배우이다. <퍼펙트 데이즈> 를 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오늘이 완벽한 하루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멋진 세계> 덕분에 내 세계가 더욱 멋지게 변했다. 작품의 메시지를 극중 배우가 이렇게나 강렬하게 전달하는 건 쉽게 볼 수 없는데 매번 그걸 해내는 야쿠쇼 코지에게 어떤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퍼펙트 데이즈> 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그걸 증명한 셈이다. 대사 없이 감정을 전달한다는 게, 그걸 애매모호하지 않게 관객이 느낄 수 있게끔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퍼펙트 데이즈> 의 마지막 신(scene)을 보고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다. 본인이 직접 청소 도구를 만들어서까지 맡은 구역의 청소를 완벽하게 해내는, 부지런하고 책임감 높은 사람이다. 화장실 청소라고 하면 모두가 기피하는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걸 보다 보면 그는 오히려 이 작업을 함으로써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다. 애초에 그걸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본인이 맡은 일이니 묵묵하고 빠르고 깔끔하게 일을 끝낼 뿐이다. '어떤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잘하는 거다'라는 말은 꼭 히라야마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여담을 하나 꺼내자면, 이 작품의 기획을 맡은 야나이 코지는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도쿄 화장실 인식 바꾸기를 기획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 기획으로 도쿄의 공공화장실들이 바뀌었고, 영화에 나오는 걸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화장실과는 달리 예쁘고, 깔끔하고, 기능이 참신하다. 도쿄 화장실을 가 보고 싶어지는 영화라는 후기도 있는데, 어쩌면 그 기획이 성공한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야나이 코지의 제안을 빔 벤더스 감독이 수락했고, 장편 영화를 만들자는 감독의 제안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영화의 탄생 과정이란 언제 들어도 신비하다. 마치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운명이었다는 것마냥 모든 연결점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으니 말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그렇게 일과 보통의 일상으로 가득 차 있던 히라야마에게 변수가 불쑥불쑥 생기기 시작한다. 평소 몇 마디 나누지도 않던 젊은 동료의 연애 사업에 엮이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조카와 한집에서 지내게 되기도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흘간 변함없는 일과를 보내던 히라야마를 보여주던 영화는 닷새째부터 갑자기 끼어드는 변수로 그의 하루에 변화가 생김을 보여줌으로써 늘어져가던 관객들을 금방 집중시킨다. 씻지도 못한 채, 책도 펼쳐 보지 못한 채 지쳐 잠들기도 하고, 조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화분에 물을 주는 걸 생략하기도 한다. 늘 정해진 대로 해오던 사람이 변수를 맞이하면 힘들어할 것 같지만, 히라야마의 모습은 어째 평소보다 더 생기가 도는 듯하다. 


혼자가 좋아서 뭐든 혼자 하다가도 가끔씩 사람과의 교류가 생기면 그 하루가 그렇게 기운찰 수가 없다. 혼자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해 보고, 혼자 지나갈 땐 미처 눈에 담지 못했던 걸 보고, 혼자 있을 때와는 달리 자꾸 입을 열게 되니 나 자신이 낯설면서도 즐겁다. 히라야마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혼자이길 자처했으나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사람이고, 사람에게 실망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냈지만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다시 연결된다. 고요한 삶이 좋지만 인간에게 외로움은 의도치 않게 찾아오는 것이라서 그런 변수가 오히려 히라야마를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줬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가 나중에 뒤돌아 보면 더없이 완벽했던 하루인 것처럼.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용기 내어 안아 주던 그때의 눈물, 다음 날 출근길에 운전하며 짓던 그 표정. 그건 무슨 의미일까. 과거에 대한 후회? 가족을 저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 마지막 신에서 히로야마의 눈을 끝까지 마주한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어떤 명확한 감정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렇게 느꼈다. 분명 지금도 히라야마는 완벽한 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떠나온 모든 것에 대한 후회가 여전하고 가끔은 그립기도 하지만 도망치고 싶었던 그 모든 날을 거쳐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하루가 또 다시 주어졌으니 더없이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라고. 


어쩌면 완벽한 하루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루 끝에서 오늘 하루는 완벽했다고 복기하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렇게 느끼는 것.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밝아오는 세상을 보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담고, 피로를 녹여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오며 가며 마주치던 사람과 눈인사를 하고. 그 모든 게 완벽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고, 그 하루가 쌓여 내 인생이 된다. 어차피 내 것인 거, 완벽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 완벽하지 않음을 완벽하다고 부르는 건 또 어떤가.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냈다. 그러므로 오늘은, 완벽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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