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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국 Aug 14. 2024

미식과 괴식

<더 메뉴>

살아가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부러운 사람은 '먹는 걸 즐기진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로 말하자면 먹기 위해 산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먹는 것을 사랑한다. 음식보다는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요리에 취미가 있다거나 집에서 직접 식사를 차리는 편은 아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내게 가끔씩 '미식가를 해 보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물어 보곤 하신다. 똑같은 이름의 음식도 지역마다 가게마다 어떻게 그리 맛이 다를 수가 있는지. 장금이처럼 어떤 맛이 어떤 재료인지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 차이를 느끼고 맛을 즐길 줄 알아 여전히 먹는 게 즐겁다. 그만큼 맛없는 걸 먹게 되는 날은 하루를 망치는 듯한 느낌까지 들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요리보단 먹는 행위에 일가견이 있는 거라 영화 또한 음식을 주제로 했다고 해서 더 관심이 가는 편은 아니다. 유명한 작품인 <리틀 포레스트> 를 보고 나서도 요리를 하던 장면보다 딸과 엄마의 관계가 머릿속에 더 크게 자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주제로 하여 나의 큰 관심을 끌었던 영화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더 메뉴> 이다. 트레일러를 본 사람들이라면 기억나겠지만 고급스러운 음식을 매우 우아한 촬영과 고품질의 화질로 보여 준다. 그 배경에 깔리는 으스스한 효과음과 트레일러 전체를 아우르는 비장한 분위기의 편집은 이 작품이 보통의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예고한다. 


랄프 파인즈,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라스 홀트 등의 화려한 출연진에 감각적인 장면, 미스테리한 스토리.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이 영화의 트레일러를 확인했을 때, 당장 이 영화를 봐야만 하겠다는 욕구가 가득 차올랐다. 재빠르게 예매를 해 자리를 잡았으나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아쉽게 취소하는 결말을 맞았지만. 다행히도 두 달 뒤인 12월, 정식 개봉을 한 덕분에 시간을 내서 극장으로 달려갔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상영관을 빠져 나왔다. 그야말로 미식이었다. 이 영화를 눈에 담는 행위 그 자체가. 배우들이 공을 들여 플레이팅한 한 장면 한 장면을 음미하고 난 뒤 드는 기분 좋은 포만감은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상미'가 좋은 영화를 찾는 사람들에겐 이 작품을 빼놓지 않고 추천한다. 어디 영상미뿐이겠는가. 연출, 연기, 스토리.... <더 메뉴> 가 선사하는 모든 메뉴가 당신의 입을, 아니,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오늘은 <더 메뉴> 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가 포함된 스토리 설명은 넘어가려고 한다. 대신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할 때 군침이 고이고 결국은 배달 어플을 켜게 되는 것처럼, 당신이 당장이라도 디즈니 플러스를 켜서 <더 메뉴> 를 보게끔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같이 감질맛 나는 시식을 한 입 하러 가 볼까. 



1. 배우에게 집중하는 것은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주연을 맡은 세 배우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친숙한 얼굴들이다. 그래서 더욱 신선한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랄프 파인즈와 당시 뜨겁게 떠오르고 있던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가 호흡을 맞춘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대되는 지점이었다. 두 배우 사이에 존재하는 긴 시간, 대선배와 실력 좋은 후배의 합. 장르도 장르인지라 마치 연기 대결이 펼쳐질 것만 같아 설렜고 역시 두 배우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니콜라스 홀트는 마치 저 혼자 다른 장르를 연기하는 것처럼 뻔뻔한 코미디 연기를 선사해서 예상치 못한 만족도 있었다. 과하지 않은 완급 조절이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2. 음식의 맛을 상상해 보는 건 필수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정갈한 촬영을 눈으로 잘 음미하고 있었다면, 화면에 꽉 차는 생소한 음식들의 맛도 머릿속에서 음미해 보라.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맛' 하면 내로라하는 작자들이고 이들은 새로운 음식을 맞이할 때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맛을 표현한다. 물론 우리는 먹어 보지 못했으니 대충 짐작만 하게 되는데 그 재미가 꽤 쏠쏠하다. 말미에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음식이 하나 나올 텐데, 그게 클라이맥스다. 영화가 끝난 뒤, 괜히 그 음식을 먹고 싶어질 것이다. 기존에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가끔씩 생각나는 메뉴가 되었고 요즘도 이 영화가 생각날 때마다 찾아 먹고는 한다. 


3. 이 글의 제목에 '괴식'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예상해 보자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다. 공포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럿이 모여 외진 곳으로 초대받아 가는 모습이 충분히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패턴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 잔인하지는 않으나 눈을 감을 감게 되는 장면이 몇몇 있다.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몇 번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모든 장면의 연출이나 색감이 아름답다보니 첫 번째 관람에서 눈을 감았던 부분들이 아쉬워 재관람을 할 때는 용기 있게 장면을 제대로 바라봤는데 만족스러웠다. 그 장면들이 모두 영화의 연장선이니 힘들지만 않다면 눈에 담는 것이 좋겠다. 



끝으로 갈수록 어떤 지점은 뜬금없이 보일 수도 있겠고, 보는 사람에 따라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 부분이, 굳이 돌려 말할 필요가 없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힘을 푼 것이라고 느꼈다. 스토리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끝까지 눈을 떼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안야의 모습까지 음미해야 이 성대한 코스가 마무리되니 말이다. 당신은 이 만찬에 몇 점을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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