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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Jun 23. 2023

킬러들의 수다: 좋은 킬러 있으면 소개시켜 줘

엄마 C의 시선



“킬러들의 수다”는 ‘킬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네 명의 남성들의 활약상을 보여 주는 2001년 작 코미디로, “간첩 리철진”, “묻지마 패밀리”, “아는 여자”, “거룩한 계보”, “퀴즈왕” 등 독특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해 온 장진 감독의 작품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처럼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졌던 작품이 다시 영화로 제작된 경우도 있는데, 연극 연출을 하던 당시부터 남다른 재능을 인정 받았던 그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에도 이 “킬러들의 수다”는 장진만의 작법(화면 분할 방식과 같은)이 돋보인다고 하여 “장진 장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특유의 맛깔나는 대사와 기발한 유머를 겸비한 블랙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는 자신의 영화에 자주 기용하는 배우들(신하균, 정재영, 류승룡, 임원희, 정규수 등)이 정해져 있다 보니 영화계에선 종종 이들을 “장진 사단”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개봉 당시의 전국 관객 223만 동원이라는 흥행 기록이 지금의 기준으로선 저조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9.11 테러 직후였던 2001년 가을의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이 영화가 E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의외이더군요. 하지만 킬러들이 주인공이라는, 언뜻 보기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황과 등장인물을 가지고도 ‘현실’ 풍자의 요소와 장치를 곳곳에 녹여 놓은 블랙코미디이기에, 더구나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킬러라는 주인공의 직업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영화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쉬이 ‘설득’되는 영화이기에 “교육방송”에서도 방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살인을 의뢰하는 한 여성 ‘고객’과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가 범상치 않은 이 영화에서, 그룹의 리더 격인 “상연”은 나이 차가 많아 보이는 친동생 “하연”, 총기 사용에 능한 명사수 “재영”, 그리고 폭발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우”와 한 집에서 동업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실수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 그들이지만, 의뢰 받은 대상 가운데 한 인물이 '작전 수행' 중 경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경찰차 안에 있던 그를 부득이 사살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현장에 있던 “조 검사”의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차량 미행에 이은 가택 수색까지 – 그들이 외출해 집을 비운 사이 – 이어지는 등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져 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진행해야 하는 의뢰 건이 하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중인 “햄릿”의 주인공을 살해하는 일인데, 평소와 다른 삼엄한 경계 태세 때문에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하던 재영과 정우에게 상연이 의뢰인의 정체를 밝히자 그들은 단 한마디 토도 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모읍니다. 그 의뢰인은 바로 그들 모두가 열렬히 '사모'하는 – 첫 장면에 등장했던 고객이자 그들에게 매일 아침 뉴스를 꼭 챙겨 보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기도 한 – 앵커 “오영란”이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경찰 병력과 그들을 총지휘하던 조 검사를 따돌린 채 평소처럼 솜씨 좋게 일을 마무리하는데, 여러 정황 증거를 갖고 있던 조 검사가 오영란과의 ‘사후 미팅’ 약속 때문에 옷을 사러 백화점에 들른 상연을 추격해 와선, 막상 체포는 하지 않고 어깨에 총만 쏘고 가는 상황이(코미디 답게) 연출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집에 ‘무단 침입’했던 조 검사가 컴퓨터 화면에 남겨 놓은 “I never miss you”라는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네 명이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다 “나는 절대 미스 유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혹시 유씨 성의 여자 중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서로 묻는 장면이나, 요리 담당이지만 음식 솜씨는 전혀 없는 막내 하연이 끓인 생선 매운탕이 너무 맛이 없자 정우가 “야 이건 너무 심하다. 고춧가루 물에 물고기가 익사했냐”라고 불평을 하고, 그런 정우에게 “넌 뭘 그렇게 말이 많냐. 맛 없으면 먹지 마… 나처럼”이라고 재영이 답하는 등 행동 아닌 대사들로 이곳저곳에 숨겨진 웃음 코드를 따르는 재미 또한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사실 그동안 다룬 영화들이 너무 ‘진지한’ 것들이다 싶어 가벼운 코미디로 한 템포 쉬어 가자는 취지에서 고른 영화이기에 그냥 그 자체로 즐기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으나, 역시 ‘믿는 자의 시각'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다 보니 별 생각 없이 보던 때와 다른 측면에서 눈에 띄는 부분들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특히 백화점에서 마주친 조 검사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상연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인데, 그의 당시 심정을 내레이션으로 전한 동생 하연의 말에 따르면, 줄달음질하며 도망치는 동안 그 자신도 모르게 흐르던 상연의 눈물은 꼬리를 밟힌 것에 대한 분함이나 억울함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잃어 버린 순간 흘린 눈물과 조금은 비슷한” 것이라고 합니다. 매번 의뢰인과 기념사진을 찍어 훈장처럼 남길 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가, 검사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면서 “범죄자”라는 자신의 ‘실상’이 문득 깨달아져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의미이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무척 낭만적으로 그려진 영화 속에서의 그들은 킬러임에도 마냥 귀엽고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순진하고 비계산적이고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해도 결국은 살인자에 지나지 않겠지요.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킬러 영화들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를 죽이지 않는 등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는 전문 킬러들이 나름 '멋있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살인자와 ‘나쁜’ 살인자가 따로 있을 수 없을 것이듯 말입니다. 자신이 종종 범하는 죄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악행에 비하면 “이 정도는 죄도 아니다”라고 합리화하기 쉽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사실 그 모든 비교는 “도토리들끼리 키 재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잣대에 근거한 기준으로는 제법 잘 살고 있다고 여겨 왔을 상연에게 본인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판단자가 나타난 순간 느닷없이 다가왔던 그 처절한 자기 인식이, 우리 각자에게도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딸 J의 시선



2001년 개봉작인 [킬러들의 수다]는 나와 엄마가 함께 좋아하는, 장진 감독 특유의 재기발랄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들 중 하나로, 신현준, 신하균, 정재영, 정진영 등의 명배우(당시에는 조금 덜 유명했던)들이 우르르 출연하는 화려한 캐스팅을 뽐내기도 한다. 심지어 아직 어렸을 적의 원빈 배우가 [마더]에서의 "도준"과 비슷한 결을 가진 어벙한 인물을 연기하며 그 출중한 외모를 낭비하는 진귀한 구경을 할 수 있고, 아직 "공블리"가 되기 전의 공효진 배우가 엉뚱한 여고생으로 출연한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더해져 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작품은 ‘킬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킬러들의 수다] 속 네 명의 주인공 "상연(신현준)", "정우(신하균)", "재영(정재영)", "하연(원빈)"은 한 팀으로, 의뢰를 받아 사람을 살해하는 직업적 ‘킬러’로 활동한다. 하지만 이들은 킬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다수 영화에 등장하는 노련하고 비밀스러운 냉혈한의 암살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의뢰를 받은 후 그 대상을 처리하는 방식, 총을 포함한 무기들을 불법적으로 조달해 주고 작전 수행 중 부상을 입으면 ‘야매’로 치료도 해 주는 만능 해결사 "주씨 아저씨(윤주상)"의 존재 등등 킬러가 등장하는 장르물의 특성과 클리셰들을 어느 정도 답습하긴 하지만, 막상 이들 네 인물은 굉장히, 음…… 띨빵하다.





폭발물 전문가인 정우는 다혈질에다 자신들을 미행하는 경찰차를 쫓아가 왜 따라오냐며 물을 정도의 단순무식한 ‘불도저’이다. 팀의 막내인 하연은 빼어난 '미모'를 가졌으나(원빈이니까)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모질이로, 임무 중에 총을 잡지 못하고 잡일만 담당하는 자신의 위치에 불만이 많지만, 관객 입장에서도 그가 잡일 외의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팀의 리더이자 하연의 친형인 상연은 부스스한 곱슬머리와 지저분한 턱수염, 정장 바지에도 고집하는 운동화까지 언뜻 보면 동네 백수 아저씨 같은 인상이 역력한 인물이다. 뛰어난 저격수인 재영이 그나마 좀 멀쩡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멋있거나 한 것도 아니다.


배우들 본인의 매력과 카리스마 덕분에 캐릭터가 더 사는 경향이 있긴 해도 이 네 명의 주인공은 그들 직업의 특수성을 제외한다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소시민'들이다. 심지어 불법 유턴을 하는 팀원을 타박하고, 빨간불에는 반드시 설 정도로 교통 신호를 잘 지키며, 살인 의뢰를 하겠다고 무작정 찾아온 여고생 "여일(공효진)"의 사연에 함께 공감해 주는 등 평범하고 상식적인 도덕성과 준법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들을 찾는 의뢰인 또한 평범한 ‘보통’ 사람들로, 상연이 의뢰인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공사장 인부, 요리사, 아이를 안고 있는 가정주부 등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군상들이다.





어찌 됐건 나름 성공적으로(?) 본업을 꾸려 가던 4인조는 영화 초반, 그들의 타겟 중 한 사람을 경찰이 갑자기 체포해 놓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난국에 봉착한다. 임무를 제대로 마치기 위해 그들은 무려 경찰의 호송 차량 안에 있는 대상을 사살하는 무모한 행동까지 감행하지만 그들이 살해한 대상이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인 "탁문배(손현주)"의 범죄에 대해 진술할 수 있는 증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내 밝혀진다. 이 일로 그들은 지난 몇 년간 탁문배를 잡기 위해 애쓰던 "조 검사(정진영)"의 주목을 받게 되고, 뜻밖의 상황으로 코앞에서 기회를 놓친 것에 격분한 조 검사의 추격이 턱 밑까지 닥쳐오는 위기를 맞는다.


이 와중에 정우는 자신이 맡은 의뢰 대상이 임신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를 ‘처리’하는 것을 망설이는데, 그러다 아예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대형 사고'를 치며 팀원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긴다. 설상가상으로 4인조는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서 연극이 공연되는 도중, 정재계의 거물이 대다수인 관객들 앞에서 주연 배우를 살해해 달라는 위험천만한 의뢰를 받는다. 그들 모두가 좋아하는 아나운서 "오영란"이 그 의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4인조는 결국 경찰 인력이 대거 포진한 현장에 뛰어들고, 이미 그 사실을 간파한 조 검사 또한 그들을 잡기 위해 기다린다.





이미 말했듯 나는 이 영화를 꽤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던지라 어떤 soft spot("애착"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오랜만에 다시 봤더니 예전엔 굉장히 기발하게 느껴졌던 개그 코드가 이제는 ‘피식’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격하된 느낌도 있지만 -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 유머 감각의 수준이 급격히 향상해서인 모양이다 - 이 작품에 나오는 몇몇 대사는 아직도 엄마와 나 사이의 inside joke처럼 쓰일 정도로 우리에겐 나름 애정 깊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는 이 영화에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영화의 재미나 소재의 기발함과는 별개로 영화의 주제 의식 혹은 메시지가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영화가 평범하고 친근한 네 명의 '이웃집 킬러'들을 데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전해 주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안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이 나름대로 발견되기는 한다. 작품의 화자이자 관객의 시선을 대변한다고 할 막내 하연의 내레이션이 그 예로, 영화 속에서 하연은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그래서 그들 같은 킬러가 필요한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반복한다. 주인공인 4인조 킬러와 의뢰인들이 ‘평범’하다는 설정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실 굉장히 평범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임을 표현하기 위한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대사 역시, 영화 안의 그들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미움을 ‘실행에 옮길 수 없을 때’ 찾게 되는, 어쩌면 세상에 꼭 필요한 인물들임을 설명하기 위한 방안이 아닐까 짐작된다.





킬러들을 쫓던 조 검사도 점차 이 4인조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감을 잃는다. 그는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주인공들보다 그 살인을 사주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분노와 염증을 표하고, 때론 이 킬러들에게 동질감 비슷한 묘한 감정까지 드러낸다. 자신이 ‘처리’해야 할 임신부 "화이"와 사랑에 빠진 정우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기로 상연이 결정한 즈음, 정우의 정체를 알려 주기 위해 화이를 만난 조 검사의 이후 행동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생부가 아이를 없애기 위해 살인을 의뢰했을 거라는 그녀는 "우리 아기 죽이지 말라고 부탁 좀 해 주세요"라는 뜬금없는 간청을 조 검사에게 하고, 자신이 "그런 부탁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어이없어 하던 조 검사는 그럼에도 아이의 생부를 찾아가 준다. 그 사이 의뢰인이자 아이의 생부인 남자를 먼저 만난 상연이 의뢰에의 거절 의사를 정중히 전하려다 무례한 태도로 심하게 화를 내는 그의 불손함에 짜증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한 대 친 뒤(꽤 속이 시원한 장면이다), 간발의 차이로 상연과 엇갈려 아이의 생부를 만난 조 검사도 "아이를 죽이지 말라"는 '부탁’을 전하다가 역시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에게 폭행을 가한다(역시 속이 시원해진다). 비열한 남자를 ‘응징’한 상연과 조 검사가 잠깐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행동을 한 후 똑같은 모습으로 장소를 떠나는 연출에서 이 두 인물이 사실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심지어 감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같은 편'에 서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읽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4인조가 성공적으로 연극 무대 위의 배우를 사살했음에도 조 검사는 이들을 ‘적’이나 ‘악인’으로 인지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는 상연과 맞닥뜨리고 추격도 하지만 체포하는 대신 어깨에 총만 쏘고 돌아서 버리는데, 상연을 치료하던 주씨 아저씨가 “잡기는 싫고 그냥 총만 쏘고 싶었던 모양"이라며 “많이 봐 줬구만”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게다가 상연이 자수하겠다며 검찰청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왔을 때도 조 검사는 끝끝내 그를 그냥 가도록 놓아 준다. 상연 같은 킬러들은 ‘도구’일 뿐 정말로 ‘악한’ 것은 살의를 가지고 살인을 의뢰하는 ‘주체’들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조 검사가 이 킬러들을 ‘필요악’ 정도로 본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듯하다.





다만 앞서 말했듯 아쉬움이 남는 것은 여기까지의 내용이 뭔가 일관적인 메시지나 철학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조 검사의 대사 가운데 자신이 그들을 “굶겨 죽일 것”이라는 다짐이 나오고 하연의 내레이션 중 “사람들 가슴속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면 그들 같은 킬러가 자연스레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독백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것이 관객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키는 메시지라기보다 끝에 가서 하나 끼워 넣은 진부한 교훈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여태까지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라 표현하다가 새삼스럽게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라며 수습하는 모양새랄까?


해서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이전의 다른 영화들보다 글의 방향성을 잡기에 조금 모호한 면이 있었다.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얘기하자면 - 감독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 이 네 명의 킬러를 실제의 인물로가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울분, 억울함, 복수심의 상징이자 은유적 도구로 이해함이 보다 적절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물들의 ‘평범함’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 최소한 잘못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애초 평범하고 사소한 일에서 발단하는 동시에, 사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진심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영화의 내용 안에서 주인공 4인조가 받게 되는 의뢰 중 그 ‘이유’가 설명되는 일은 네 가지인데, 그중의 절반은 아주 개인적인, 어찌 보면 하찮고 사소한 감정에 기반을 두는 것들이다. 여고생 "여일"은 학교 선생님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에게 폭력이나 착취를 당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사실 짝사랑했던 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어린 마음에 그 실망과 아픔을 이기지 못해 거의 투정하듯 의뢰 아닌 의뢰를 했음이 밝혀진다. 진심으로 선생님이 죽기를 바랬다기보다 불안정한 사춘기의 '실연'이 낳은 미움과 원망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데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나운서 오영란의 의뢰도 결국은 비슷한 맥락을 가지는데, 4인조가 큰 위험을 감수하며 굳이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연극의 주연 배우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그가 오영란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연인이기 때문이다. “그냥… 꼭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대사 또한 감정 풀이에 가까운 느낌이다. 뜨겁게 사랑하다 일방적으로 배신 당한 전 연인을 ‘죽여 버리고’ 싶었던, 적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꾸라지길 바랬던 사람이 이 캐릭터 하나만은 아닐 테니까.


이와 달리 네 개의 의뢰 중 나머지 절반은 '진짜로' 상대를 죽이려는 냉철하고 계산적인 살인 청부에 해당한다. 조직폭력배 탁문배는 감옥에 가야 할 상황을 피하고자 증인들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만든 것이고, 화이의 살인을 의뢰한 남자는 그녀가 가진 자신의 아이가 불러올 파장, 스캔들, 귀찮음 모두를 '원천 봉쇄'하려 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여일과 영란의 의뢰가 단순한 분노, 사실은 하찮고 평범한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둘의 의뢰는 비정한 이해득실의 계산으로 누군가를 해하려 하는, ‘오염된’ 악의에 근거한 것으로 비교될 수 있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여일과 영란의 의뢰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면 탁문배와 아이의 생부에게는 철저한 응징이 가해진다.





그런 의미에선 주인공 4인조가 대표하며 위로하고 있는 감정이 '정말로' 죽이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분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속상한데 세상은 내가 입은 ‘피해’에 걸맞는 처벌을 -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 상대에게 내릴 것 같지 않을 때, 거기에서 오는 분노와 억울함의 대리 만족 장치로 이해함이 더 옳을 듯하다. 실제로 우리의 언어 가운데 "죽임"은 매일의 일상에서도 꽤 자주 쓰이고 있는 어휘이니 말이다. 죽고 싶어? 아유 저걸 죽여 살려 등등, ‘살인’이라는 무섭고 무거운 개념을 굉장히 가볍게 쓰고 있는 우리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화풀이이자 나름의 투정에 불과할 테고, 그렇기에 조 검사가 그들에게 동질감 비슷한 감정을 대놓고 보이는 일 역시 냉철하고 계산적인 ‘살심’이 아닌 단순한 분노와 억울함, 울분 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4인조가 행하는 가끔은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예술적'으로까지 표현되는 살인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거나 '승화'하는 과정에의 비유로 해석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분노와 공격성을 '장난스러운' 말로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 실제적 힘으로 ‘휘두르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은 필요할 듯 싶다. 영란의 의뢰 혹은 ‘복수’가 이루어진 무대의 연극이 [햄릿]이었다는 사실도 그래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를 향한 '정당한 분노’로 복수를 감행했으나 그 과정에서 연인과 그 가족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자신 또한 ‘정당한 복수’의 대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우리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진짜로 누구를 죽인 일은 없겠지만, 각자의 무기로 사람을 해치는 그들같이 자신의 상처가 낳은 분노와 원망을 도구 삼아 누군가에게 다시 상처를 입힌 일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지극히 평범하고 허술한 4인조 킬러들을 보며 ‘평범’한 보통 사람인 우리도 무의식 중 타인을 해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친숙하고 평범한 ‘이웃집 킬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은 되지 않기를. 뭐, 어찌 되었건 조 검사가 만들겠다고 다짐한 사회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이유가 없는 세상, 우리의 분노와 울분과 상처가 – 스스로 만들어 낸 아픔들까지도 – 다정하신 재판장 앞에서 정의와 긍휼로 녹아내리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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