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C의 시선
특이하면서도 신선한 제목과 주제로 개봉 당시 화제가 되었던 1998년 작 “미술관 옆 동물원”은, 그로부터 4년 후 역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상영된 영화 “집으로…”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이정향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시나리오를 잘 쓰기로 유명하다는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이 영화는 국내의 영화제들에서 각본상과 신인감독상을 – 남녀 배우들의 연기상(주연상)을 포함하여 – 수상한 작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장르상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본래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영화들이 반드시 ‘코미디’적 요소를 포함하지는 않는 것처럼 “미술관 옆 동물원” 역시 ‘코믹’한 면보다는 따스하고도 애잔한 ‘로맨스’ 성향의 색채가 더 강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배경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 그 때문인지 가을이면 생각나는 영화가 된 - 이 작품에서, 그 두 장소는 여자 주인공 “춘희”와 남자 주인공 “철수”가 영화의 시작 직후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함께 방문하는 곳일 뿐 아니라, 시나리오 공모에 제출하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쓰는 극본의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춘희는 결혼식 비디오 촬영 기사라는 직업으로 생활을 이어 가는 20대 중반의 여성으로, 주례를 맡느라 여러 결혼식장을 전전하는 한 국회의원의 보좌관 “인공”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집에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쳐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외간' 남자 철수는 춘희가 이사 오기 전 그 집에 살던 “다혜”의 남자 친구이자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인데, 아직 그곳이 다혜의 집인 줄 알고 월세 독촉을 온 주인에게 가지고 있던 거금을 털어 대신 돈을 내 줍니다.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나 버린 다혜에게 뭔가 오해가 생긴 줄로 생각한 철수는 계속 연락을 취해 보지만 다혜는 곧 있을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통보하며 냉랭하게만 나오고, 갈 곳이 없어진 데다 월세까지 대신 냈던 철수가 휴가 기간 동안 그 집에 눌러앉게 되면서 춘희와의 아웅다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머릿속으로만 꿈꾸는 춘희의 사랑법이 나름 안타까웠던 철수는 그녀가 쓰던 시나리오에 ‘훈수’를 두다가 아예 공동 작업 비슷한 방식으로 글쓰기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실제 삶과 연결하여 “인공”을 동물원에서 일하는 수의사로, 그리고 “다혜”를 그를 짝사랑하는 미술관 큐레이터로 등장시키는 시나리오를 쓰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영화 속 ‘현실’과 영화 속 ‘영화’, 즉 현실과 시나리오를 넘나드는 특이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영화 속 현실에서의 춘희와 철수에게 서로 공통점이 전혀 없듯, 영화 속 영화에서의 인공과 다혜도 아무런 접점이 없다고 할 만큼 서로가 너무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철수가 설정한 ‘영화 속 영화’의 결말(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반대하던 춘희가 도리어 ‘영화 속 현실’에서 철수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며, 그들 간의 사랑도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두 영화’는 끝을 맺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라 부르기 조금 어색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들의 관계가 우연찮게도 ‘결혼’ 생활과 똑같은 모습으로 시작된다고 하는 – 데이트 혹은 연애의 달콤함이 생략된 채 – 사실 때문인데, 그럼에도 그들의 삶을 보며 “저게 진짜 사랑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은, 늦잠을 자다가 인공과 마주칠 결혼식 촬영에 늦게 되어 서두르던 춘희가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안 타겠다고 고집하며 – 자기에게 화가 나서 – 막 떠날 듯한 버스를 쫓아 달리자 철수가 자신의 차로 버스 앞을 가로 막아 그녀가 탈 때까지 출발하지 못하도록 지체시키는 장면에서였습니다. 물론 현실에서야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칠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겠지만 영화적 설정이라는 측면으로만 한정할 경우, 싫다는 춘희에게 억지로 자기 차를 타라고 강요하는 대신 그녀가 목표하는 버스를 탈 수 있게끔 상황을 만들려 애쓰던 철수의 노력이, 진정한 사랑과 배려란 본시 저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이지요. 이런 사실들을 전제로 할 때 남녀 간의 사랑 역시 스케일을 조금 넓혀 보면 ‘인류애’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웃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기에, 서로가 같거나 다른 것이 굳이 사랑의 조건일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을 그 장면을 보며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영성을 고양하는 여건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도를 닦는’ 수도승이나 수도사로서의 삶이 아니라 서로 부딪히고 부대끼는 사회 안에서, 그리고 그런 불가항력의 영역 가운데 서로 참고 인내하는 삶 속에만 주어진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지만, 그런 삶의 여러 국면 중에서도 가장 피부에 와닿는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사실 ‘결혼 생활’에서의 인내가 아닐까 합니다. 자주 생각하게 되는 바와 같이 인간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 결코 알 수 없으며 – 결혼 전에는 자기가 꽤나 대단한 인격자인 줄 착각하던 사람도 배우자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실체'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기에 – 그렇게 누추한 자신의 본모습을 노출시키는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갈등이 더욱 커지는 악순환을 종종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신 애초의 목적이 서로 다른 두 인격체가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모난 돌이 둥글어지듯 모퉁이가 닳아 없어져 우리의 최종 목표인 “주님의 형상 닮기”를 이루어 내도록 하기 위함이셨음을 저는 확고히 믿고 있습니다.
각본이 훌륭하다고 인정 받는 이 작품에서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것인 줄만 알았지 서서히 물들어 가는 것인 줄은 몰랐어”라는 춘희의 대사가 명대사로 회자되는 모양이지만, 사실 저는 그보다 춘희가 피로연장에서 인터뷰했던 노부부 중 할머니 쪽의 “나는 다시 태어나도 저 양반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하신 후, “한 평생 저 성질 맞추느라고 고생해서 이제 좀 맞출 만 한데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고생을 한담”이라며 던진 ‘반전’의 말씀을 가장 인상적인 명대사로 꼽고 싶습니다. 그에 이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 춘희와 철수가 길을 걷다 한 구두점 앞에 섰을 때 자기가 지금 신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신발을 본 춘희가 “처음 봤을 땐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지금 보니까 초라하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철수가 “그건 네가 지금 그 신발을 신고 있어서 그렇지”라고 건네던 대답을 두 번째 명대사로 들 수 있을 듯합니다. 현재 신고 있는 '신발'이 지금 자기 발에 신겨져 있다고 해서 -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이미 자기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라 해서 - 하찮거나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딸 J의 시선
[접속]과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90년대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들 중 이젠 ‘클래식’이 된 좋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생각되는데, [미술관 옆 동물원]도 그런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볼 만한 영화이다. 역시 심은하 배우가 주연을 맡은 [8월의 크리스마스]도 1998년 개봉된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심은하 배우를 생각하면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특히 매력적인데 예전 [러브하우스]에서도 쓰였고 한국 사람이라면 새 집에 들어갈 때마다 꼭 흥얼거린다는 유명한 노래(‘따라다라따-’)도 사실은 이 영화의 수록곡인 "Synopsis"이다. 그 외에도 신인 시절의 이성재 배우, 또 드물다 싶게 ‘정통 멜로’ 연기를 선보인 안성기 배우의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까지 있다.
영화는 결혼식을 촬영하며 웨딩 영상 작가로 일하는 "춘희(심은하)"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신랑과 신부를 찍던 춘희의 카메라는 마치 훔쳐보듯 주변 인물 한 명에게로 스르르 옮겨 가는데, 그는 결혼식 주례를 서고 있는 국회의원의 보좌관 "서인공(안성기)"이다. 여기저기 주례를 보러 다니는 의원 덕분에 서인공을 자주 만나는 춘희지만, 짝사랑하는 그에게 말 한 번 제대로 붙여 본 적이 없다("결혼하셨느냐"고 물으며 자신의 명함을 건네는 방식으로 인공이 미혼임을 확인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플러팅'일 정도이다).
한편,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철수(이성재)"는 언제나 그랬듯 거리가 먼 본가 대신 여자 친구 "유다혜(송선미)"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문 앞에서 낯선 사람과 맞닥뜨리고 당황하던 철수는 곧 이 집의 현재 거주자가 춘희이며 자신의 연인은 벌써 두 달 전에 이사를 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다혜와 연락하려 애를 쓰는 그이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절답게 춘희의 집 전화로밖에는 다혜와 통화할 방법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다. 여러 소동 끝에 다혜를 만나러 함께 나간 철수와 춘희는 곧 결혼한다는 그녀의 '우회적' 이별 통보를 듣게 되고, 아직 다혜를 포기하지 못한 철수는 그녀와 가까이 있기 위해 남은 휴가 기간 동안 춘희의 집에 눌러앉으려 한다. 기겁하며 반대하던 춘희는 철수가 집주인에게 이번 달 월세를 대신 내 줬다는(다혜가 아직 이 집에 사는 줄 알았을 때) 것과 심각한 독수리 타법인 자신과 달리 그의 타이핑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에 결국 설득되고, 공모전에 내기 위해 자신이 써 두었던 영화 시나리오를 철수가 대신 입력해 주는 조건으로 어찌어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철수와 춘희는 로맨스 영화의 유구한 클리셰대로 초반부터 티격태격하며 앙숙처럼 지내는데, 사사건건 춘희를 약올리고 비웃던 철수는 타자만 쳐 주던 것을 넘어 춘희의 시나리오에도 간섭하기 시작한다. 아웅다웅하던 둘은 결국 함께 각본을 집필하게 되고, 그들의 시나리오에도 영화의 제목과 똑같이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이렇게 중의적으로 쓰이는 [미술관 옆 동물원]이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집, 그러니까 무척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있게 된, 성격이 '각기 다른’ 두 주인공을 빗댄 은유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제목은 극 중 다혜의 결혼 소식을 듣고 돌아오던 길에 충동적으로 차를 돌린 철수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향하는 장면에서부터 그 의미를 드러내는데, 도착한 뒤의 춘희는 당연하다는 듯 미술관으로, 철수는 맞은편의 동물원으로 향해 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그들 둘은(“너 어디 가?”) 결국 따로 떨어져 시간을 보내게 된다. 미술관과 동물원으로 비유되는 이들의 ‘다름’은, 춘희가 짝사랑하는 "서인공"에게서 탄생한 남자 주인공 "인공"이 동물원의 수의사로, 철수의 전 연인 이름이 부여된 여자 주인공 "다혜"가 미술관 직원으로 설정된, 그들이 쓰는 각본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에 각본 속의 주인공 "인공"과 "다혜"를, 실제 서인공과 유다혜의 역할인 안성기 배우와 송선미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도 재미를 더한다.
앞서 말했듯 "미술관"과 "동물원"은 춘희와 철수의 대비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미술관을 택한 - 그러니까 ‘미술관’으로 대변된다고 할 수 있는 - 춘희는 글자 그대로 ‘감성적'인 사람이다. 잠을 자다가도 비가 오면 그 빗소리가 좋아 잠이 깨고, 손가락을 구부려 만든 카메라 ‘앵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이렇게 하면 다 의미가 있어 보여, 라며) 일상 속에서 낭만과 판타지를 찾는 감수성 풍부한 인물이다. 짝사랑하는 남자를 멀리서 훔쳐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잠수’와 ‘환승’이 섞인 불쾌한 이별의 후유증을 앓는 철수에게 시를 읽어 주며 "다혜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녀가 행복한 것이 너에게도 좋은 것 아니냐"고 충고하는, 굉장히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랑관을 가졌고 말이다. 그에 반해 ‘동물원’으로 표현되는 철수는 까칠하고 막말도 잘 하는, 춘희의 짝사랑을 비웃으며 자신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인물이다. 사랑을 숭고하게 여기는 춘희와 달리 시나리오에 베드신을 넣어야 한다는 둥, 호감이 느껴지는 상대와는 '끝까지' 가 봐야 후회 없이 포기도 할 수 있다는 둥의 현실적이고 자유분방한 연애관과 성 인식을 보여 준다(그런 면에서 춘희는 사랑을 플라토닉한 관점으로, 철수는 에로스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처럼 고상하고 정적인 미술관 같은, 순수한 사랑의 이상을 마음속에 품은 춘희와, 동물원처럼 본능적이고 활동적인, ‘날 것’ 그대로의 사랑의 특질을 대변하는 철수가 함께 집필하는 시나리오 속의 주인공들도 춘희와 철수를 각각 상징하는 듯 보인다. 춘희의 페르소나라고 할 여자 주인공 "다혜"는 우아하고 고요한 미술관 안에서 곱고 순수하게 존재할 뿐더러, 춘희처럼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감탄하는 감수성 깊은 인물이다. 무엇보다 춘희와 마찬가지로 남자 주인공 "인공"을 향한 풋풋한 사랑을 키워 가고 있다. 반대로 인공은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싫어 외딴 곳에 집을 짓고 사는 무뚝뚝한 외톨이로, 천체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들을 관찰하고 그들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기보다 광활한 우주의 '잔혹성'에 더 주목하는 태도를 보임으로 감수성이라곤 한 톨도 없는 철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두 주인공의 본질적 차이를 주제로 삼은 듯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그들 둘을 그렇게 평면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우선 춘희는 덜렁대는 성격에다 빨기 귀찮다고 양말도 안 신을 만큼 게으르고, 자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촬영이 있는 날 아침이면 허둥대기 바쁜, 정적이고 우아하며 고상한 ‘미술관’과 전혀 다른 성향도 지니고 있다. 반대적 측면에서 철수는 사실 꽤 세심하고 자상하며, 비 오는 날 외출하는 춘희에게 우산을 챙겨 주거나 그녀가 어지른 방을 청소하고 요리를 늘상 도맡으면서, 거칠고 본능적인 ‘동물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가끔 춘희에게 "넌 여자애가 무슨…" 따위의 잔소리를 해 대는 것 외에는 전통적 ‘남성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틱틱대며 분위기 깨는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우울해 하는 춘희를 데리고 나가 저녁을 사 주거나 짓궂은 장난으로 기분을 풀어 주려 노력하고 춘희의 생일도 챙겨 주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뭔가 좀 앙탈을 부리는 고양이 같아서 귀엽기도 하다.
그렇게 철수와 춘희가 서로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듯 관객도 주인공들을 더 알아 가며 갖게 되는 깨달음은, 각본 속 "다혜"가 꼭 춘희의 모습만은 아니라는 것, 또 각본 속 "인공"이 반드시 철수의 상징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사랑을 이상화한 춘희는 그것을 아주 고귀하고 숭고한 무언가로 여기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요즘 사랑은 같이 음악을 들어도 다른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 같다"며 서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그녀가, 막상 본인도 온전히 자기를 상대에게 맡기면서 상처 받을 수 있는 일을 '벌일' 자신이 없다 보니 그 사랑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들지 않는다. 타인과의 상호 작용이 필요치 않은, 멀리서 보기만 하는 짝사랑을 이어 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액자 안에 갇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아름답지만 움직임 없는 미술 작품을 대하는 행위로도 보인다. 반대로 철수는 사랑을 회의적으로 보며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쟁취하고 유지해 나가는 일에 무척 적극적이다. 자신을 두고 결혼하겠다는 - 결과적으론 배신을 한 - 연인을 포기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온갖 자존심 다 내려놓고 한 번만 더 만나자고 사정하면서, 둘이 자주 가던 카페에 앉아 끝내 나타나지 않는 그녀를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한다. 순애보라고 해야 할 듯한 그의 이런 모습을, 어떠한 미련도 스스로에게 남기지 않으려 정성과 노력을 탈탈 쏟아 내는 행위로 해석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각본 속 "다혜"가 오히려 철수에 가까운 인물로도 보인다. 짝사랑하는 상대를 바라만 보는 춘희와 달리 시나리오의 다혜는 동물원에 자주 찾아가고 쓸데없는 용건을 만들어 인공에게 말을 걸며, 차가 고장난 그를 자기 자전거에 태워 주는 등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면서 능동적으로 사랑을 추구한다. 반면 자신에게 돌진하는 다혜를 밀어내는 각본 속 "인공"은 춘희와 비슷한 면들을 보이는데, 우주가 멀리에서는 아름답게 느껴질지 몰라도 실상은 차갑고 잔혹한 공간이라 피력하는 그의 태도도 '관념'으로서의 사랑과 다를 '현실' 속 사랑을 기피하는 춘희의 성향과 닮아 있다. 이렇듯 아름답지만 정적인 미술관, 투박하지만 생동감 있는 동물원의 성격이 복잡하게 뒤섞인 면모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생생히 깨닫게 된 그들은, 상대에게 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큰 갈등을 겪는다. 철수는 상처 받는 것이, 실망하게 될 것이 두려워 자신으로부터도 한 발짝 물러서는 춘희가 답답한 반면, 춘희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호언하던 철수와 함께 자기가 원하는 차원의 영구한 사랑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듯하다. 각본 속 인공과 다혜의 관계에까지 회의를 느끼는 춘희의 고민처럼 "이렇게나 다른" 둘이 해피엔딩에 이르는 일이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뻔하게 들리는 말일 수 있겠지만 둘은 결국 서로 ‘다른’ 상대방을 ‘닮아' 감으로 갈등을 극복한다. 액자 속 그림을 보듯, 창문 밖 풍경을 보듯 세상을 정적으로만, 피상적으로만 본다고 춘희를 비난하던 철수는 미술관으로 찾아가 전시 작품들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춘희가 찍었던 결혼식 영상을 되돌려 보며 카메라로 그녀를 촬영하기도 한다. 춘희의 세상을 - 더 정확히는 프레임 속에 담긴,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며 무엇보다 ‘안정적’인 세상에 대한 그녀의 갈구를 -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반대편에서 춘희는 귀찮아 하던 양말을 챙겨 신고, 철수가 가르쳐 준 대로 비가 개고서도 우산을 빙그르르 돌려 물기를 말리며, 운명처럼 ‘빠지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전과 달리 서서히 '물드는' 것 또한 사랑임을 인정함으로 사랑에 대한 자신의 비현실적 기대를 조금씩 내려놓는다.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행동하기를 두려워하던 춘희가 직접 철수를 찾아 나서며 진취성을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목격되는데, 철수가 배려하고 기다리는 사랑을 배웠다면 춘희는 움직이고 표현하는 사랑을 배웠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철수가 춘희를 이해하려 미술관에 가 있는 동안 춘희는 철수를 찾아 동물원을 헤매고 다니는 장면도 꽤나 사랑스럽다. 그러는 사이 길은 잠시 엇갈릴지언정, 사랑은 그렇게 서로의 발자취를 쫓는 것일지도 모르니.
사랑하는 사이에서 - 특히 부부나 연인 간의 관계에서 - compromise, 즉 "타협"이 중요하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어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타협이 서로 무언가를 포기함으로써만 둘 다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게 된다는 '협상적' 개념으로 느껴져서였던 모양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닮아 간다는 것이 결국 ‘나’를 그만큼 깎아 내야 한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로 여기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 당장은 손해나 상실로도 느껴질지 모를 그 일이, 궁극적으로는 지금까지 "나"의 경험과 이해의 한계로 제한되었던 영역을 "우리"의 더 넓은 세계까지 확장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사랑이 결국은 하나님과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음도 이 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그분을 이해하고 닮아 가기 위해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처음엔 ‘자신’을 포기하거나 억눌러야 하는 부당함으로 여겨지더라도, 결국은 ‘나’로만 가득 찼던 세상을 깨뜨림으로써 ‘나’를 가두어 두고 있던, 존재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던 한계와 벽을 넘어, 주님이 예비하신 더없이 크고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철수와 춘희를 통해 은유되는 사랑의 여러 양면성을 곱씹게 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생각은 사랑이 - 부부나 연인 간의 사랑은 특히 - 상당히 "별 것 아닌" 동시에 굉장히 "별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철수로 대변되는 현실적이고 실체적이며 ‘날 것’의 사랑은 뜨겁게 시작할 수 있는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구질구질'해지고 성가신 수고도 요하게 된다. 매일 청소를 하고 식사를 차리는 일상의 연속, 화병이 없어 맥주캔에 꽃은 장미 한 송이 정도가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낭만의 전부인… 춘희가 찍은 웨딩 비디오 속의 하객인 여러 부부들이 말하듯 지루하고 지난하기도 한, 그냥 "별 것 아닌" 무언가이다. 하지만 동시에 춘희가 꿈꾸는 것처럼 아름답고 숭고한, 엄청난 "별 것"이라 해야 할 무언가일 수도 있다. 전혀 상관 없던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것, 이전에는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돌려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이타'의 삶으로 들어서는 길, 완벽하게 다른 성격과 성향의 사람들이 서로 닮아 가기를 선택하는 일 말이다. 자기 곁의 사람과 손을 잡고, 미술관도 그리고 그 옆의 동물원도 함께 구경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적'이 모든 이들에게 함께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