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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Nov 03. 2023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해 뜰 날”은 언제일까

엄마 C의 시선 



얼마 전 딸과 함께 나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공간에 올리기 위한 글을 쓰면서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이, 저희들이 선택했던, 다시 말해 나름대로의 이유로 화제를 불러 모았거나 객관적인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들 가운데(특히 한국 영화에서) 1999년을 전후해 제작된 영화가 상당수라는 사실입니다. 1999년을 기준으로 한 해 앞서거나 뒤따르는 1998년과 2000년도의 영화까지 합해 보면 소위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영화의 숫자가 상당할 듯한데, “세기말,” “밀레니엄” 등의 단어가 따라붙는 당시의 감성을 작품에 담기 원하던 제작자들이 많았기 때문 아닐까 짐작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에 포스팅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1999년 제작 발표된 그들 중 하나에 해당하는 영화로서,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 콤비인 안성기와 박중훈이 – 저희가 예전에 올린 “라디오 스타”에서도 아름다운 ‘합’을 이루었던 – 함께 출연했다는 사실로 인해, 또한 그들이 서로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인상적 장면을 포함한 여러 개성 있는 요소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큰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이명세 감독은 그의 데뷔작 “개그맨”에서의 독특한 연출 방식을 눈여겨 보게 된 후로 뒤이어 개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뛰어난 역량을 재확인한 바 있기에, 이후의 작품들이 흥행에서 연속 실패했다고 들었음에도 수년 후 “인정사정 볼 것 없다”(그의 여섯 번째 작품인)를 통해 다시 주목 받게 되었을 때 저로서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 덤덤한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그맨”은 영화 감독인 배창호가 직접 출연해 신선하고 자연스런 연기까지 보여 주며 “한국형 컬트”라고 불리게 된 수준 높은 블랙코미디이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당시로선 전례 없이 화면을 액자 형태로 분할하거나 ‘말풍선’을 대화에 사용하는 등 만화적 기법을 동원했던 독창적 영상의 로맨틱 코미디였던 만큼, 재기 넘치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는 물론 “스톱모션,” “슬로우 모션” 같은 다양한 기법과 현란한 영상미, ‘귀여운’ CG까지 자랑하는 ‘액션 코미디’의 결정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관람하며 “과연 이명세답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폭력배보다 더 폭력배처럼 보이는 – 영화에서 그려 낸 경찰의 그런 모습으로는 시초격이라고 할 – 형사 “우영민”은 무조건 때리고 잡아넣는 무대책 수사관의 전형인, 그래서 “영민”이라는 본명 대신 “영구”라고 주로 불리는 “인정사정 없는” 인물이지만, 범인을 잡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인 열혈 형사이기도 합니다. 비 내리는 가을날 가파른 계단에서 벌어진, 자신들의 관할 구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40 계단 살인 사건”으로 이름 붙여진)을 수사하는 가운데 이 사건이 마약과 관련된 범죄라는 것을 알게 된 강력반원들은, 현장에 함께 있었던 몇몇 공범들을 추적하면서 사건의 주범이 “장성민”이라는 인물임을 밝혀냅니다. 그의 동거녀 “김주연” 집에도 잠복하며 성민을 체포하려 동분서주하는 그들이지만 계획과 달리 매번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주도면밀한 그가 연거푸 포위망을 빠져나가면서 신문에는 “날쌘 살인범에 날 샌 경찰 추적”이라는 비아냥성 기사가 실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대책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수사팀은 장성민 일당 중 한 명이자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마약 중독자 “엄현수”를 체포하기 위해 그가 은신한 지역으로 우영민과 “김동석” 형사(팀원 중 가장 젊은 신참이지만 원리원칙을 지키고 무리한 수사를 하지 않는)를 급파하는데,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은 엄현수와 대치하던 중 현장에서의 갑작스런 돌발 사태로 김 형사가 그에게 실탄을 발사하는(사살하고 마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후 도주하는 성민을 추격하던 기차 안에서 김 형사가 그의 칼에 찔려 심각한 부상을 입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건은 꼬여만 가는 듯했으나, 완벽할 것 같던 그의 도피 생활도 포기를 모르는 우영민 형사에 의해 결국 막바지에 이르고, 그 유명한 폐광에서의 격투 장면을 끝으로 장성민은 자신을 포위한 경찰들에 의해 검거됩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촬영상 등 여러 부문을 수상한 데다 제가 상당히 ‘신뢰’하는 평론가 이동진이 별점 다섯 개를 준 영화인 만큼 그 기법이나 완성도에 있어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영화가 비춰 주는 현실의 단면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조금 ‘가벼운’ 측면으로는 같은 수사팀 안에서도 특히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박 형사”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사체에서 나온 피 묻은 지폐를 “복돈”이라며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불운이 피해 간다고 자랑하던 장면을 들 수 있는데, 늘 위험이 뒤따르는 사건을 다루는 형사들인 만큼 그런 미신적인 발상에 의존하는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백’이 없을 때 그처럼 무의미한 사물에까지 의지하게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보다 조금 ‘깊이 있는’ 측면에서는, 평소 원칙을 잘 지키고 ‘신사도’를 발휘하는 모습으로 장성민의 내연녀 김주연조차 윽박지르는 다른 형사들을 피해 그의 뒤로 숨을 만큼 ‘윤리’와 ‘도덕’을 준수하던 김동석 형사가 결정적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을 해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장면을 보며 들었던 생각으로, 겉모습만으론 가장 막 나가는 듯한 우영민이 오히려 그 상황에서 차분히 대처하고 또 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현명하게 대응하는 모습과 비교할 때, 인간 스스로 자부하는 인격이나 도덕성이 얼마나 하잘것없고 신뢰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시청했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책임(責任)’만 잘 완수하면 이 세상이 큰 문제 없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그 말이 주는 메시지가 유난히 마음 깊이 와닿았었는데, 그래서인지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성민의 칼에 찔려 입원 중인 동석을 병문안하며 장성민의 검거 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여 주던 영민이, “그런데 아무리 찾아 봐도 우리 이름은 신문에 없어. 하긴 신문에서는 그 놈들이 주인공이잖아”라고 한 말이 전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범인 검거의 일등공신인 자신들의 수고가 전혀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을 푸념한 말이긴 하지만, 자기 이름이 떡하니 새겨 있는 표창장을 ‘냄비 받침’으로 쓰는 그임을 생각할 때 진심이 담긴 불만의 표출이라기보다 내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돌려 표현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혈투’에서 싸움 실력으로는 분명 장성민이 우위에 있었음에도, 실컷 얻어맞은 후 다시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일어서는 우영민을 보며 결국 최후 승리는 강한 자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는, 그래서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책임)을 다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I do not concern myself with great matters or things too wonderful for me)”라는 말씀(시 131:1)이야말로, 유명해지고 주목 받을 수 있는 일을 선호하는 - 하나님께서는 주어진 ‘작은 일’만 성실히 하면 충분하다고 하심에도 -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딸 J의 시선



이명세 감독의 1999년 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금빛 낙엽들이 비로 흠뻑 젖어 드는 계절이 될 때면 꼭 떠오르곤 하는 작품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영화의 수록곡인 Bee Gees의 "Holiday"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적도 몇 번 있고 말이다.





플롯은 간단하게, 시각적 효과와 기법은 다양하고 풍부하게 연출하는 감독의 작품답게 이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 굉장히 단순하다. 굵은 비가 내리던 가을날, 도심 한복판의 "40 계단"에서 의문의 남성에 의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대담한 범행으로 서부 경찰서에는 비상이 걸린다. "우영민" 형사(박중훈)와 "김동석" 형사(장동건) 등 사건을 맡은 강력 1반의 형사들은 전과가 있는 여러 용의자들을 취조(를 가장한 협박과 고문)하며 수사한 끝에 이 사건의 범인을 "장성민(안성기)"이라는 인물로 특정하게 된다.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꽤 빠르고 능률적이었던 것에 비해 장성민을 ‘잡아넣는’ 과정은 느리고 지난하기만 한데, 형사들은 장성민의 연인인 "김주연(최지우)"의 집에서 며칠씩 잠복하며 그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냉철하고 영리한 장성민은 번번이 그들의 감시망을 빠져 나간다.


수개월 동안 그를 추적하던 강력 1반은 장성민이 도피를 위해 탄 기차에 역무원으로 가장해 잠입하는 기회를 얻으나, 일반 승객들로 가득한 좁은 기차 안에서 장성민의 부하인 조직원들의 방해에 맞서 고군분투하다가 김 형사가 장성민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그 일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주연을 이용해 다시 성민을 끌어내려던 영민은, 장성민의 모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자신의 직감을 좇아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예상대로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장성민과 마주친 영민은 쏟아지는 비와 어둠 속에서도 끈질기게 그에게 따라붙고, 결국 폐탄광의 기찻길 위에서 그렇게도 잡고 싶던 장성민과 일대일로 격돌한다.





이 작품을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플롯의 전개 등에서 오는 재미는 물론, 말 그대로 ‘보는 재미’가 넘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앞서 짧게 언급했듯 이명세 감독은 연출, 그러니까 ‘시각적 효과’를 활용하는 능력에선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감독의 그런 열정과 독창성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작품이다. 어떤 중요하고 폭력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붉은 색'이 곧 이어질 참극을 경고하듯 등장한다거나(40 계단 사건 직전 등장하는 소녀가 썼던 빨간 모자, 잠복한 형사들이 장성민을 급습하려는 장면에 주연이 입은 빨간 스웨터, 장성민 패거리와 기차 안에서 맞붙기 전 김동석 형사가 던지는 빨간 헝겊, 김 형사가 장성민의 칼에 찔리기 전 그 앞을 지나는 남자의 빨간 패딩 점퍼 등등), 영민과 마주치는 세 번의 만남 때마다 전혀 다르게 바뀌는 주연의 패션 스타일을 통해 그녀의 심리적 변화가 암시되는 등 영화 내에서 "시각 단서(visual cue)"는 상당히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형사물’이라는 장르의 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연출법과 촬영 기법을 차용하며 변주를 주는 부분도 흥미로운데, 영민과 동료 형사들이 어두운 도심을 헤매며 범인을 찾는 장면에서는 과거 할리우드의 사설탐정물이나 느와르, "하드보일드" 장르의 영향이 엿보이는 반면, 영화 속 다수의 인물들이 일대일로 마주 보고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서부극의 "멕시칸 스탠드오프(Mexican Standoff)"가 연상되기도 한다. 영민이 여러 명의 조폭들과 싸우며 시작되는 흑백으로 표현된 첫 장면과 형사들이 범죄자에게 야구 방망이를 들고 덤비는 모습에서는 흑백 무성영화 시절의 슬랩스틱 스타일도 묻어나고 말이다. 다양한 연출 기법들과 컷 방식, 씬 사이의 트렌지션(transition)들도 무척 재기발랄하게 사용된다. 영민이 조폭에게 날리는 주먹이 잔상을 남기는 방식으로 천천히 연출된다거나 치열한 추적과 싸움이 스톱모션처럼 정지 화면의 빠른 전환으로 표현되고 중간중간 잠시 정지되는 화면이 꼭 유화(그림)처럼 바뀌는 효과들을 보고 있자면 이명세 감독이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없는 듯 있는’ 연출법과 촬영 기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약간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임에도 이런 화려한 연출이 이 영화의 경우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영화 속의 무거운 상황을 – 특히 작품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폭력’을 - 과장되게, 가끔은 만화처럼 표현함으로써 폭력에 내재된 우스꽝스러움(ridiculousness)과 허무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약간은 비현실적인 이런 연출 방식이 ‘법의 편’에 서 있으면서도 폭력과 강압을 남발하는 주인공과 동료 형사들이 ‘멋있게’ 비춰지는 것, 또는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동조하고 공감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듯도 하다.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경찰들이 한국 영화의 터줏대감이 된 것이야 이미 오래 된 일이라지만 이 영화 속 형사들은 정말…… 대단하다. "진실의 방"이 있기 전에 "서부 경찰서 형사 1팀"이 존재했다고나 할까. 장성민을 잡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무턱대고 쳐들어온 형사들을 보고 기겁한 주연이 “아저씨들 누구에요?” 하고 묻자 그중의 한 명이 큰 칼을 손에 든 채 "보면 몰라?”라고 반문하는 장면에선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런 과장된 연출은 영화의 주인공 "영민"을 우리가 생각하는 형사물의 전형적 주인공보다는 어떤 "희비극적(tragicomic)" 인물에 더 가깝도록 보이게도 한다(박중훈 배우 또한 영화의 톤을 살려 일부러 과장된 연기를 한 경향이 있다). 영민의 실제 이름보다 더 자주 불리는 별명이 희극적 인물을 연상시키는 "영구"라는 설정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영민(혹은 "영구")은 ‘단순무식’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의인화시킨 캐릭터로, 입이 걸고 기회만 있으면 사람을 쥐어 패는 데다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물리적 고통이나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는, 약간은 징그러울 정도의 집요함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민이 어딘가 ‘아이 같은’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인데, 유아적이라고 할 만한 그의 패션도 그렇지만 범죄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 





말하자면 영민은 세상을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으로,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은 "나쁜 놈"과 "안 나쁜 놈"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인지 범죄자를 마구 때리면서도 그는 조금의 망설임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듯 보인다. 장성민의 부하인 "영배"를 잡아 와서는 “너 같은 XX에게 왜 이런 말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이라며 마지못해 미란다 원칙을 읊다가 뒷부분은 잊어 버렸다고 대충 흘려 넘기거나, 다른 범죄자를 때리다 말고 억울하면 변호사 데려오라면서 “그런 거 무서우면 형사 안 해”라고 큰소리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보다 육성으로 "아이고"가 나왔다) 그를 보고 있자면 영민의 사고 체계란 "나쁜 놈은 당해도 싸"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영민이 ‘아이 같아’ 보이는 이유는 그가 미성숙한, 어찌 보면 굉장히 ‘순수’할 정도의 선과 악에 대한 이해와 세계관을 드러내기 때문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민은 자신의 일과 직업에 대해서도 무척 단순하게 접근하는데, 영화 내내 그는 형사의 일이 “그저 잡는 것”이라는 식의 대사를 거듭한다.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영민이 주연에게 건네는 대사가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경찰, 특히 강력계 형사의 직무가 수사를 통해 용의자나 범인을 특정한 뒤 검거하는 것임은 당연한 데다 사회 전반에도 꼭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형사, 판사, 변호사 등등 직업에 따라 각기 다른 전문적 역할과 직업윤리가 있다는 명제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영민에게 ‘문제’가 있다면, 앞서 말했듯 그의 세계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미성숙하게 느껴진다는 것으로, 형사로서의 그의 철학은 어떤 자체적 고찰이나 판단 없이 "나쁜 놈을 잡는다" 정도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범인을 쫓는 길고 험난한 과정에서 그가 집요하고 맹목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었겠지만, 거의 쓰레기 하치장 수준인 그의 집 내부처럼 불안정과 허무함 또한 함께 지니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서 그가 쫓는 ‘목표’는 뚜렷할지언정, 제대로 된 ‘목적’이나 ‘방향’은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영화의 사이사이 유리창 위에, 혹은 돌아가는 세탁기의 유리문에 비친 영민의 멍한 표정을 잡아내는 카메라도 의미심장하다. 이런 장면들이 보여 주는 영민의 슬픈 듯도, 길을 잃은 듯도 한 얼굴은 "나쁜 놈을 잡는"다는 유일한 정체성 없이는 그저 어정쩡하게 표류할 뿐인 그의 내면을 내보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런 영민이 장성민을 추격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흑백으로 나뉘는 어두운 밤 속에서 달동네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계속 헤매고 누비게 된다.





하지만 추격이 계속될수록 영민은 ‘성장’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살인 사건과 관련된 전과자 "엄현수"를 찾아갔다가 벌어진 소동에서 김 형사가 난동을 부리는 엄현수를 총으로 쏴 사살하고 난 이후의 상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강력 1반에서 가장 신사적이고 ‘도덕적’이었던 김 형사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영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나쁜 놈은 죽어도 되지”라는 말로 본인의 죄를 ‘사하고’ 아예 ‘무효화’할 수 있는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지금껏 "범죄자 = 나쁜 놈," "우리가 할 일 = 나쁜 놈을 잡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공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왔던, 복잡한 가치 판단과 성찰을 피하는 듯 보이던 영민은 그 순간 ‘안 나쁜 놈’인 동료의 죄책감을 덜어 주거나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기분만큼은 잘 기억해 두라”면서 자신들의 직업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에 대해 자조하듯 말한다. 어찌 보면 영민은 진심으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봤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쁜 놈’과 ‘안 나쁜 놈’으로 딱 떨어져 나뉘지 않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사회의 다양한 면모와 인간의 갖가지 사연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고통과 수고스러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장성민과 조우하게 된 폐탄광의 기찻길 위에서, 성민과 영민은 매서운 빗줄기 가운데 땅바닥을 뒹굴며 진흙에 흠뻑 젖어 결국 둘 다 ‘같은 색깔’이 된다. 서로의 얼굴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된 둘은 경찰과 범죄자, 선과 악이라는 구분이 어려울 만큼 똑같이 온몸이 ‘회색’으로 덧칠된다. 이 유명한 장면에서 영민은 끝내 장성민과의 싸움에서는 참패하지만, 자신이 부른 경찰들이 촘촘하게 주변을 에워쌀 때까지 장성민을 붙들어 놓음으로써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영민이 눈앞의 ‘목표’(범죄자들과의 몸싸움에서 늘 그랬듯 장성민을 자신의 힘으로 때려눕히는 것)에만 치중하는 대신 ‘목적’과 ‘방향’(어떻게든 그를 체포하는 임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자기 스스로 흑과 백 사이의 ‘회색’에 몸을 던진 후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쪽의 진영에서든 극단화가 일어나는 이유, 또 많은 '소위' 기독교인들이 사랑과 자비를 잃어 가며 단죄하는 일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 또한 "흑과 백," "옳고 그름,"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이분화되는 단순한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가장 ‘쉽고 간편한’ 길을 택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쁜 사람인 동시에 좋은 면도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셀 수 없는 여러 측면들을 고려하고 이해하는 작업, 매번 맞닥뜨리게 되는 새로운 상황마다 그에 알맞은 고유의 대응을 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든 사람과 상황을 ‘일률적으로’ 분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쉽고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좁고 일관된 잣대를 휘두르려 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의 삶은 영화 속 영민이 그랬듯, 눈앞의 ‘목표물’ 외에는 목적도 방향성도 없이 좁은 골목길의 가로등만이 드리워 주는 차가운 빛 속에서 흑백의 세상을 헤매는 것과 같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내내 흐르는, 영민이 흥얼거리기도 하는 노래 “해 뜰 날”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해 뜰' 날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보상(부나 명예 같은)을 얻게 되는 때로 생각하지만, 영화 속 영민에게 그 ‘해’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어떤 사물의 ‘진짜’ 색깔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광, 그러니까 ‘햇빛’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경찰서 실내의 형광등, 골목길의 가로등 같은 ‘인위적’ 빛과 그림자로 모든 것을 보며, 고된 형사의 일을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맹목성으로만 버텨 내던 그가 그 흑백의 한정된 관점을 벗어나 자연광인 햇빛 아래에서 세상의 진짜 모습을 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때야말로 영민의 "해 뜰 날"이 아닐지. ‘흑’과 ‘백’으로만 나눠지는 것이 아닌, 복잡하고 머리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는 세상의 모든 총천연색을, 그 다양하고 복잡한 측면을 모두 볼 수 있게 되는 날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처음으로 비나 눈이 퍼붓던 어둑한 하늘이 아닌, 햇살이 밝게 비추는 맑은 여름날이라는 사실이 꽤 희망적이다. 그 ‘진짜’ 빛 아래에서, 영화의 모든 장면 중 가장 밝고 화려한 옷차림을 한 영민이 지금까지 그의 인생 최초로 흑도 백도 아니라 할 수 있는 인물 주연과 우연히 재회한다는 것 역시. 돌아보지 않는 주연을 응시하다 소년처럼 환하게 웃는 영민의 얼굴로 막을 내리는 영화의 뒷 이야기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영민이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밝은 햇빛 아래의 그가 더 이상 목적도 방향성도 없이 헤매는 일만은 없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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