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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Mar 15. 2024

동주: ‘수치’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엄마 C의 시선 




시인 윤동주의 짧지만 빛나는 삶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 “동주”는, 저희가 예전에 올렸던 “라디오 스타”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감독 이준익이 연출을 맡고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기획자, 감독 등으로 영화계에서 폭넓게 활동하는 신연식이 극본을 맡아 2016년 개봉된 작품입니다. ‘다작가(多作家)’로도 유명하다고 할 이준익은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 “달마야 놀자(1, 2편),” “황산벌,” “왕의 남자,” “즐거운 인생,” “소원,” “사도” 등등 거의 1년에 1편 꼴로 제작된 영화들 대부분이 호평을 얻은 능력 있는 연출가이며, “피아노 레슨”으로 데뷔한 후 “페어러브,” “러시안 소설,” “배우는 배우다” 등의 작품에서 연출, 제작, 각본, 각색 등을 두루 섭렵한 신연식은 각본과 제작을 담당한 “동주”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흑백 화면으로 제작된 이유도 물론 그렇지만,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소재로 한 “쉰들러 리스트”나 “매카시즘(McCarthyism)”이 그 주제인 - 저희가 얼마전 소개했던 - “굿나잇 앤 굿럭” 등의 외화와 “제주 4.3 항쟁”을 중심 내용으로 삼은 “지슬” 같은 국내 영화 역시, 배경이 되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기조를 맞추기 위해 흑백 영상을 사용한 작품들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들이 20억 정도의 예산을 기본적 규모로 상정하고 있고, 소위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100억 이상의 돈을 제작비로 투자하기도 하는 현실에 비춰 볼 때, 5억 가량의 저예산으로 기획된, 그리고 시각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을 흑백영화로 제작된 “동주”가 12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는 것은 꽤 고무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역으로 놓고 생각하면 보통 이처럼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흥행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대중들의 ‘깨어 있는’ 의식이 절실히 요구될 뿐더러, 그에 더해 하나뿐인 삶, 한 번뿐인 젊음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분들의 노고와 희생이 무참히 부인되고 평가절하되는 이즈음 한국 상황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공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성찰이 더욱 제고되어야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윤동주의 고향인 “간도(만주)”의 “용정”지역에서 시작됩니다. 시 쓰기가 그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시와 문학을 사랑하며 등단에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 “동주”의 나날이, 겉으로는 동갑인 사촌 형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먼저 당선된 데 대한 옅은 질투심(혹은 열등감)을 제외한다면 그 또래 청년들의 평범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여집니다. 하지만 1917년 생인 동주가 살고 있는 시기(영화의 시대적 배경)가 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강압이 절정을 이루던 당시이고 그가 사는 장소(영화의 지리적 배경)는 그들의 조부가 몇몇 한국인들과 이주해 형성한 한인촌, 즉 척박한 이국땅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그의 삶이 녹록지 않게 펼쳐질 것임을 관객들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동주는 그토록 소망하는 신춘문예 당선을 대단치 않은 일처럼 여기던 몽규가 “신민회(新民會)”에서 보낸 교사라고 소문난 “명희조” 선생의 영향하에 “남경”으로 떠나면서 두 청년의 복잡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의 길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지요. 독립운동 활동 중 체포되어 경찰서에 압송된 몽규를 만났던 동주는 경성에 가서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하는데,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의 그의 삶이 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몽규의 의견대로 일본의 교토, 도쿄, 후쿠오카를 넘나들다 마무리된다는 사실에서, 이때의 제안이 동주가 자신의 삶에 그리고 사촌인 몽규의 삶에 스스로 의견을 제시한 유일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들들의 명문 학교 합격 소식에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연전”에 입학한 몽규의 주된 관심은 공부가 아니라 ‘조국 독립’입니다. 그런 몽규가 학업도 마치지 않은 채 느닷없이 “중경(광복군 창설지)”으로 가 임시정부 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재학 중 알게 된 “이화여전” 학생 “이여진”의 소개로 만났던 시인 “정지용”으로부터 시 쓰기를 그만두라는 -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고 일본어로 일본 시를 써야 하는 처지이기에 - 충격적 ‘조언’까지 들었던 동주는 그럼에도 경성에 남아 공부를 계속합니다. 또 다시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다 동주와 함께 고향으로 잠시 내려간 몽규는 어차피 일본 이름을 갖고 일본말로 공부해야 할 테니 차라리 교토로 가서 대학원 진학을 하자고 제의합니다.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지?”라는 동주의 질문이 복선이나 되듯, “교토제대” 입학시험에서 낙방한 그와는 달리 타고난 명민함으로 어려움 없이 합격한 몽규는 공부를 다시 뒷전으로 한 채 그곳의 조선 유학생 조직 규합에 몰두하지요. 



 


몽규의 조언대로 기독교 학교라는 도쿄의 “릿교대”에 진학했던 동주는, 자국의 군국주의에 반대해 요시찰(要視察) 인물로 지목되었다는 “다카마쓰” 교수를 그곳에서 만나고,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개개인의 내면적 변화들이 모이는 ”임을 주장하며 일본 군국주의가 내세우는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이라는 허상은 수천년, 수만년 이어온 다른 문화와 민족을 결코 한 데 모을 수 없으리라 질타하는 그분과 개인적 친분을 쌓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주와 몽규, 두 청년의 꽃다운 젊음은 ‘사회 참여’이든 ‘순수 문학’이든 자신들이 가슴 뜨겁게 열망하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막바지로 치닫게 됩니다. 군사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교까지 찾아온 일경들의 압박을 피해 교토의 몽규에게 돌아갔던 동주는 집회를 주최하던 몽규가 체포된 직후 그 자신도 곧바로 체포되고, 소위 “교토 조선인 유학생 사건”의 주동자라는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됩니다. 같은 감옥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각각 취조를 당하던 두 사람은 모종의 물질을 정기적으로 주사하는 일본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29세의 젊은 나이에 한 달 간격으로 옥사하고 말지요. 확인이 어려운 사안의 성격상 ‘의혹,’ ‘주장’ 등으로 표현되고는 하지만, 사망자가 1800여 명에 이르는 실재 사건인 만큼 의혹으로만 볼 수 없는,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규정함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동주”인 이 작품을 시인 윤동주가 단독 주연하는, 그의 삶에 카메라 앵글 전체를 맞춘 영화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동주의 모습과 번갈아 제시되며 ‘대조’와 ‘대비’의 역할을 하는 송몽규의 삶의 여정을 - 송몽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이 국내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것과 별개로 - “조연”의 역할 아닌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해석할 때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유사하고 공통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늘상 부딪히곤 하던 그들의 시각이,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문학 속으로 숨는 것”이라는 몽규의 비난에 “문학을 도구로밖에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반박하던 동주의 항변에 잘 요약되고는 있지만, 그런 그들의 갈등을 곁에서 지켜 보던 여진이 몽규와의 언쟁 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동주를 보며 “동주가 시를 사랑하는 것만큼 몽규도 세상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정리’해 준 말에 따르면, 결국 그들이 무언가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슴이 불타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한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동주의 시들을 “부끄러움에 관한 고백”이라고 분석하는 많은 비평가들의 말이 무색지 않게, 자신을 심문하는 고등계 형사에 대항하던 그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 부끄럽다”라고 일갈합니다. 같은 형사에게 심문을 당하던 몽규도 자신의 ‘죄목’이 적힌 서류에 서명을 강요당하자 “비밀리에 조선어 서적을 유통시킴,” “조선인 반군 조직을 결성해 활용할 군사 계획을 지시했음” 등으로 기록된 목록을 직접 읽으며 그것들을 철저히, 제대로 잘 해 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절규하지요. 일제 치하에서 굴욕적인 삶을 이어 가야 했던 당시의 뜻있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운 ‘뜻’에도 불구하고 - 아니 그 의로운 뜻으로 ‘인하여’ - 죽는 순간까지 부끄러움으로, 수치심으로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정말로 부끄러움을, 수치심을 느껴야 했던 것은 그런 그들의 꿈과 정의심을 짓밟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체제였듯, “대한민국”이라는 지금의 자랑스러운 민주국가가 수립될 수 있도록 귀한 피를 흘렸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전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민주 항쟁에 젊음과 삶을 바친 세대의 구성원들까지 모욕하며 수치심을 유발하려는 오늘날 한국의 일부 세력들도 자신들이야말로 부끄러움, 수치심을 느껴야 할 장본인임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연전 재학 시절 동주가 만난 정지용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임을 기억할 때, 자신의 모습을 늘상 거울에 비추어 보며 스스로의 삶을 끝없이 반추하는 사람만이 부끄러움을 알고 수치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내용 중 기도하는 장면, 찬양하는 모습이 종종 등장함에서도 알 수 있듯 기독교 장로였던 할아버지(윤하현)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던 동주와 몽규였기에 ‘부끄러움’이라는 문제에 보다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일본으로 가기 직전 고국에서 썼던 마지막 시이자 일본 입국을 위한 창씨개명 신청 5일 전(1942년 1월 24일) 적은 것으로 알려진 - 민족적 비극과 개인적 수난의 시대를 살아 내면서 뜻하는 바대로 행치 못하는 ‘깨어 있는’ 지식인의 좌절을 적어 내려 간 - 시인 윤동주의 부끄러움의 ‘완결판’이라 할 시 “참회록”의 한 구절처럼,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 일도 잊지 않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됩니다. 




딸 J의 시선



이준익 감독의 2016년작 [동주]를 보기 전까지 여러 번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감독이나 작품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를 쓸 수 없던 시대에 태어나 시를 통해 꿈을 꾸다 지나치게 이른 끝을 맞이한 청년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엉엉 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영화를 봤지만 예상보다는 멀쩡하게 버틸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시인 윤동주의 작품을 관통하는 “부끄러움”이라는 주제가 애달프거나 안타깝다기보다 강인하고 고결한 무언가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형무소에 수감돼 취조를 당하는 윤동주(강하늘)의 모습과 그가 회상하는 과거의 장면들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형무소에서 맞는 억울한 죽음까지 윤동주의 일대기가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윤동주의 역사적, 시대적 서사를 막힘없이 흐르게 두지 않고 오히려 그의 시 구절들의 배경이 되는 중요한 순간순간들을 이어 붙이며 시인의 ‘감정’과 내적 성장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더 정확한 작품일 듯하다. 요즘 관객들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질 흑백 촬영 기법도 ‘현실적’이기보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강조하는 효과에 일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표면적 ‘주인공’인 윤동주 그 자신을 설명하는 것보다 그의 단짝이자 사촌 형인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와 비교하며 그를 ‘상대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더 중점을 둔다. 첫 장면에서부터 이 둘은 정반대의 성향을 드러내는데, 대를 이어 지켜 온 신앙의 유산을 충직하게 넘겨받은 윤동주가 주변의 상황들에 대체로 순응하는, 수줍고 섬세한 성격을 보이는 것과 달리, 마을 어른들 앞에서도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송몽규는 인간의 평등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직접적’으로 활동하고자 안달이 난,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인물이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보다 돋보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화 속 동주와 몽규의 관계는 그보다 더 복합적이고 ‘오묘한’ 부분들이 있다. 3개월 일찍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방면에서 동주를 ‘앞서는’ 몽규는, 의대 진학을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시인의 꿈을 놓지 못한 채 계속 등단에 실패하는 동주와 비교되게, 거의 ‘재미’로 쓴 글이 신춘문예에 당선될 만큼 특출한 재능을 지닌 수재이다. 함께 일본으로 유학 간 뒤에도 응시한 대학원 입학 시험에서 몽규 혼자만 합격하는 등, 개인적 능력이나 성과로 봤을 때 언제나 그는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위치를 차지한다. 이처럼 동주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너무나 쉽게 얻고 또 가볍게 여기는 몽규가(솔직히 좀 재수 없다) 다른 친구에게 시를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거나 시와 문학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시를 폄하하는 듯 말하는 장면에서 멈칫하며 짓는 동주의 표정들이 적잖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 면에서는 몽규가 동주에게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쳐 준 상대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몽규는 독립을 위한 자신의 행보를 통해서도 동주에게 일종의 수치심과 무능력함을 일깨우곤 한다. 늘 열정적인 몽규는 임시정부 본부까지 홀로 찾아가 군사 훈련을 받고, 일제의 강압에 대응할 무력 항쟁을 위해 여러 다양한 계획을 주도하며, 친우들과 함께 발행하는 문예지에 의해서도 독립에 대한 조선인의 소망을 고취시키려 한다. 사촌 동생인 동주가 호감을 느끼는 여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듯하다가도 결국은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얻을 수 있을 군자금에 더 큰 관심을 보일 만큼 독립과 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몽규의 옆에서, 여전히 시를 쓰고 시집을 출판하고 싶어 하는(다시 말해 어떤 ‘개인적’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듯한) 동주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 어쩌면 이기적인 - 인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민족의 해방, 사회의 평등 같은 가장 근본적인 신념을 제외하고는 송몽규의 관점과 방향, 계획들이 마치 입었다 벗을 수 있는 옷처럼 시시각각 바뀐다는 점이다. 청소년기의 그는 공산주의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공산당 체제 아래 자행되는 잔혹함을 실제로 목격한 후엔 공산주의 이념에 치를 떨며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 이광수의 작품만 읽었던 그가 이광수의 친일파 전향 이후 비슷한 문체의 투고작만 봐도 찢어 버리고, 임시정부 내 파벌 싸움에 회의감을 느낀 뒤로는 일본군과의 직접적 싸움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일본 군대에 잠입하는 방식으로 대항의 방향을 180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모든 것이 느리고 신중한, 다시 말해 시를 쓰듯 생각과 감정을 곱씹으며 고뇌하고 분투한 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 동주는 몽규의 이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동주는 자신이 예전에 알았던 “송몽규”의 모습을 몽규 자신이 거부하고 비난할 때마다 당황하며 실망하는데, 이것이 곧 시와 문학에 대해 혼자 씨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가 계속되는 ‘전진’을 기반으로 한 - 앞으로 나아가거나 위로 올라가는 식으로 - 몽규의 발전을 보며 조바심과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 요소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 속의 송몽규라는 인물은 그 개인으로보다 당시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서술적 장치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작품 안에서 어떤 ‘힘’(force)처럼 폭발하는 몽규는 마치 열정과 이상이 몸을 뚫고 나오지 못해 아우성치는 존재인 듯 그려진다. 언제나 구석 어딘가로 움츠러드는 동주의 정적인 모습과 달리 항상 움직이고 끝없이 변화하는 능동적 인물 몽규는 어떤 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 속 송몽규는 상황에 따라, 또한 구성원들의 실수나 부족함에 의해, 변화하고 변질되며 계속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느라 통일성과 단합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독립운동 당시의 현실적 문제와 시대적 특성을 대변하는 매개로도 이해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방향을 트는 상황들이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기에, 영화 속 동주 같은 인물들에게는 그 빠른 흐름을 따라가고 적응하는 일이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사색과 고민이 사치가 된 그 같은 세상에서는 총이나 칼을 잡는 대신 시를 쓰는 것이 죄가 되고 수치가 되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는 아무런 물리적 힘이 없는 시와 문학을 얕보는 듯하던 몽규가 직접적인 위험들로부터 최대한 동주를 격리시키려 애썼던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발걸음을 따르는 가운데 보다 실제적인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한 동주를 향해 몽규는 총은 자신이 쓸 테니 너는 계속 시를 쓰라는 말을 건넨다. 동주를 무시하는 마음에서 나온 권고는 당연히 아닐 것으로 여겨지는 이 말이, 그렇다고 해서 시가 가진 파급력을 몽규가 마침내 인정하게 된 결과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송몽규는 본인의 신념을 위해 하는 최선에 거침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낳은 실수나 잘못된 결과에 대한 후회는 느낄지언정 스스로의 행보에 ‘부끄러움’이나 ‘수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몽규와 같이 ‘전진’의 목표를 가지고 나아갔던 많은 이들은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거대한 움직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은, 맥동하는 ‘심장’으로 표현될 수 있을 터이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그가 그럼에도 동주만은 ‘시인’으로 남길 바랬던 것은 끊임없이 되짚어 생각하는, 시대의 급물살 속에서도 변함없이 고요하게 중심을 지킬,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는 ‘영혼’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영화 내내 시를 쓰고 시인을 꿈꾸면서도 비정하고 혼란한 시대에 시를 욕심내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 보였던 동주는 끝끝내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일본인 교수와 학생을 통해 시집을 출판할 기회가 생겼을 때 동주는 여태껏 보이던 수동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털어 내며 그 기회를 붙잡는다. 시집 발간을 위한 만남이 약속된 하루 전날, 일본 내의 한국 유학생들을 모아 진행해 오던 일본군 침투 작전이 경찰에게 발각되며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몽규는 동주의 하숙방 창문 아래에 와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요청을 하는데, 능력면에서나 대의적인 부분에서 언제나 동주의 ‘우위’에 있던 몽규가 처음으로 그보다 낮은 위치에 서게 되는 구도적 연출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몽규의 선택과 결정들을 거의 전적으로 따라 왔던 동주는 이때 몽규의 ‘위’에 서서 그와 함께하기를 거부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시집 발간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향한다.


영화의 후반부, 형무소에서 그들을 취조하던 일본 형사가 서명하라며 들이미는 진술서를 대하는 송몽규와 윤동주의 상반된 반응 또한 연결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자신이 하지 않은, 과장된 죄목들을 읽어 내려가던 송몽규는 “정말로 이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한탄하며 자신이 “이렇게 다 하지 못한 것”이 괴롭고 한스러워 서명을 하겠다고 대답한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더’ 하지 못한 사실을 ‘후회’하고 있을 뿐 결코 지금까지 자신의 행보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반대로 동주는 진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다. “더욱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것”이 부끄러워서 서명하지 못하겠다는 그의 대사에는 몽규 같은 사람들처럼 더욱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묻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동주의 고백이, 총을 쥐는 대신 펜을 들고 시 쓰기를 원했던 자신의 소망 그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뜻은 아니리라고 본다. 끝까지 시를 포기하지 않고 몽규의 요청마저 거절했던 동주의 앞선 선택들에선 시를 향한 동주의 소망이 단순히 이기적인 마음이나 유약함, 혹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함’에 기인한 것일 수 없다는 암시가 느껴지기에 말이다.





영화 속 동주의 수치는 더욱 근본적이고 비극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은 나라를 잃고 언어를 강탈 당한 시대에서, 그러니까 시를 사랑하는 그가 ‘그 자신’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시대에서, 인간으로 존재함에 대해 느끼는 수치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시절의 모든 이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해 마땅히 느껴야 했을 ‘떳떳한’ 수치심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는 것이다.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던 이들이 치욕에 떨면서도 거듭한 희생을, 부끄러워야 마땅했던 이들이 남겨 둔 몰염치의 유산으로 덮으려는 움직임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수치를 모르고 수치를 지우려 드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한 지금,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의 고결한 수치심이 혼란과 혼돈, 거짓과 탄압이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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