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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9. 2024

퇴사, 만남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직장을 떠날 준비를 하며 그간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을 떠올려본다.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와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갔었다. 그리 친하지는 않아서 어색하기도 했는데, 부산역 앞에서 선배가 사준 복어국이 유달리 시원해서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당시에 나는 몸이 아파서 1년간의 투병생활을 보내고 난 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접고 좌절인

상태였다. 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내가 11개월 계약직으로 들어간 첫 직장이었다.

직장에서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 선배는 내가 건넨 물컵을 거절했고, 상처를 받았다. 과한 친절이라 여겼던 걸까. 그래서인지 선배와 내가 함께 부산에 가게 될 줄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우연히 선배와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면서 학부 때부터 영화제에 가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이미 훨씬 전에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숙소를 예약해 뒀고, 숙소는 같이 쓸만하니 원한다면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따라나선 부산행이었다.

각자 영화를 보고 나오면,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 이틀을 보냈다. 선배와 많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돌아와 얼마 뒤 선배는 결혼 소식을 전했고, 생에 첫 결혼 선물을 선배에게 전한 채,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회사에서 나왔다.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자매와 같이 따르는 언니들이다. 어느 날은 밤새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하기도 했다. 내가 감명 깊게 읽던 책을 선물했고, 자매처럼 서로의 가족 이야기와 경조사를 챙기며 보냈다. 당시에 나는 언니가 참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따라갈 수 없는 열정이 부러워져 괴로워하던 나날도 있었다. 함께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어느새 나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언니에게 조언을 듣는 게 힘겨워졌다.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던 또 다른 언니와는 늘 서로의 창작을 응원했다.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줬고, 글쓰기를 멈춘 나를 여전히 격려해 준다.


퇴사를 앞둔, 지금의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도 떠오른다. 일이 많이 겹치지 않았음에도 퇴사 직전 잠시 나눈 대화가 좋아서 그 후에 또다시 만나게 된 사람도 있다.

내가 처음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겪었던 고민들을 가득 안고 있는, 당시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그녀가 책을 선물했다. 근사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어려워서, 자신이 읽어본 책이라며 건넨 선물에는 정성스레 쓴 편지가 있었다. 그 편지가 한동안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퇴사 날, 좋은 어른이라고 여겼던 부서장님께서 부친상을 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6개월 전,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게 되면서 업무상 배려를 많이 받았다. 당시에 부서장님은 본인 일처럼 위로해 주시곤 했다. 그런데 부서장님의 부친상이라니... 갑작스러웠다.

퇴사를 하고 다음 날, 장례식 장에 방문했다. 혼자서 장례식장에 방문한 적은 처음이었다.

부서장님과 잠시 나눈 대화 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고 계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은 왠지 더 이상 회사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 회사에서 만남을 기록하고 싶었다.

회사 생활이 지속될수록 관계에 에너지를 들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많이 열지 않았다고 여겼지만, 그간 함께 나눈 사람들은 나의 퇴사 소식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줬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온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곳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고 여겼던 지난날들을 위로받았다.

생각보다 내게 마음을 써주던 이들을 발견하고,

같이하는 동안 유독 힘들었던 사람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들의 앞 날과 나의 앞 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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