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 정동장애. 일명 조울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질환이다. 조울증이라고 하면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조증 삽화 그러니까 조증이 왔을 때는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무모한 일을 벌이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자신이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한다. 비싼 물건도 덜컥 사버리고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에너지가 넘치니까 잠도 자지 않는다. 내 동생이 월세를 한 푼 내지 않은 것도, 내게 수시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던 것도 조증 삽화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성공해서 몇 배로 돈을 갚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우울증 삽화 때는 기분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누워만 있게 된다. 조증 삽화 때 모든 에너지를 써버렸기 때문이다. 조증 때 못 잔 잠도 이 시기에 몰아 잔다. 그리고 조증 삽화 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 거다. 혹은 다시 조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때 느꼈던 전지전능함을 다시 되찾고 싶어 한다. 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것도 우울증 삽화 때다.
조증과 우울증은 서너 달 주기로 반복된다. 흔히들 하루동안 기분이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증상은 서서히 심해지기 때문에 본인이 자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조울증 증상을 눈치챈다.
할머니의 생신 날이었다. 저녁에 외가 식구들이 전부 우리 부모님 집에 모이기로 했다.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는 동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부모님 댁으로 가려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비흡연자인 나는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동생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누가 함께 쓰는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나. 게다가 원룸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묻자 너무 급해서 피웠다고 했다. 동생은 담배를 피우며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기차를 타러 가자고 했더니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이미 내려가기로 부모님과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취소라니.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안 가는데? 동생은 자신이 하루빨리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 댁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열흘도 아니고 하루도 시간이 없냐며 내가 빨리 가자고 했지만 동생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빨리 음악을 만들어 성공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는 수 없이 나 혼자 부모님 댁에 가서 할머니 생신을 축하했다. 부모님은 왜 동생이 오지 않았냐 물었다. 사실대로 말했다. 하루빨리 성공해야 해서 오늘 내려오지 않겠다 했다고. 부모님 역시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 더 설명을 해보라고 했지만 더 설명할 말이 없었다. 이모와 할머니께는 동생이 바빠서 내려오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잠시 후 이 거짓말은 들통이 났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었다. 동생은 울면서 자신이 죽을 거 같아 무섭다고 했다.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저 죽을 거 같다고 말할 뿐이었다. 할머니와 이모들의 얼굴도 금세 사색이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다들 물었다. 답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결국 나와 외삼촌이 차를 타고 동생을 데리러 갔다. 혹시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동생이 잘못된 행동을 할까 봐 걱정됐다. 실례를 무릅쓰고 옆집 아저씨께 전화를 해 동생이 괜찮은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아저씨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동생과 함께 있어 주셨다.
도착해 보니 동생은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울지도 않고 죽을 거 같다 말하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부모님 댁으로 가자고 하자 기타와 책 대여섯 권을 챙겼다. 그걸 왜 가져가냐고 하니 자신이 부모님께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책은 왜 가져가냐 하자 내려가서 읽을 거라고 했다. 하루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올 건데 책을 대여섯 권이나 챙기다니.
다시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이모들은 먼저 떠났고 할머니만 남아 있었다. 일단 동생이 무사하니 모두들 안도했다. 할머니와 삼촌도 떠나고 부모님과 나, 동생만 남았다. 동생은 부모님에게 계속 헛소리를 했다. 빨리 성공해야 해서 시간이 없다, 자신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은 몇 년 내로 밥 딜런이 될 것이다, 팝송을 들으면 영어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당시 동생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등. 아버지가 무슨 책을 저렇게 많이 가져왔냐 물으니 책은 그저 종이일 뿐 중요하지 않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동생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아버지께 동생을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약을 먹이든 심리 상담을 하든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그만이라고 했다. 자신이 젊었을 때도 동생과 비슷했다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했다. 답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울증의 원인은 대부분 유전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게도 조울증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의 행동들은 모두 조울증의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 솔직히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이 꽤 힘들었다. 어떨 때는 상당히 좋은 친구 같았지만 어떨 때는 이해할 수 없는 폭군이었다. 나와 동생은 어떤 면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려하며 계속 괴로워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자신의 전철을 밟기 바라는 걸까? 답답했다.
엄마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동생을 부모님 댁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동생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집에 내려왔다가 괜히 아버지와 갈등만 생길 거 같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둘은 엄청 다툴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어찌해야 하는가?
당시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심 차게 만든 단편 영화가 실패한 이후로 나는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2020년, 한국 나이로 26살 때다. 관심사와 뜻이 같은 친구, 동료들을 만나야 했다. 일을 하면서 그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입시를 준비했다. 다행히 2018년 중순부터 2019년까지 일을 많이 해서 1년 정도 버틸 돈이 모여 있었다. 충분하진 않지만 허리띠 졸라매면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입시에 집중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쓰면서 영화과 입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다. 동생은 돈이 부족하다며 틈틈이 내게 돈을 빌렸다. 말이 빌리는 거지 갚은 적은 없다. 이해하기 힘든 동생의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그리고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약간의 영향은 있겠지만 이 정도 사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나. 내가 떨어진 이유는 학교가 원하는 인재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사를 가고 싶었다. 더 이상 동생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종의 복수심도 들었다. 내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동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2021년 2월, 운 좋게 드라마 보조작가 일을 구했고 생활은 안정됐다. 같은 해 봄 나는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동생은 신촌의 작업실로 거처를 옮겼다. 월세가 30만 원 정도 하는 곳인데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써야 하는 상가 건물이었다.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서 온갖 불편함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내게 수시로 손을 벌렸다. 내키지 않았지만 정말 도와주지 않았다가는 동생이 아사라도 할 것 같아 돈을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 공익근무요원 영장이 나왔다. 도서관 공익근무요원이 된 동생은 처음으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 집이 아닌 서울에서 자취를 했으니 여전히 돈이 부족했지만 고정 수입이 없는 편보다는 훨씬 나았다. 공익 월급 60~70만 원을 생활비로 쓰고 부족한 돈은 엄마가 조금씩 보태줬다. 그리고 병원을 다니며 약도 먹었다. 이후 점차 증상이 호전됐다. 때로는 내버려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