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태솔로 블루스

나는 어떻게 스물일곱까지 솔로로 지냈나

by 시네마진국

2021년 봄. 인천의 원룸으로 이사를 왔다. 옵션에 침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구매를 해야 했다. 별생각 없이 싱글 사이즈로 구매하려다 멈칫했다.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둘이 자기엔 싱글 침대는 너무 작지 않나? 흐흐흐… 괜히 흐뭇한 상상을 하며 슈퍼싱글 사이즈 침대를 구매했다.


나는 스물일곱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3주 동안 사귄 여자친구를 제외한다면 그랬다. 특별히 이성 보기를 돌 같이 하진 않았다. 나는 항상 외로웠고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근데 그게 내 맘대로 되나. 좀처럼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런 외로움보다 괴로웠던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왜 연애를 하지 않냐는 의아함, 어디 문제가 있냐는 조소,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가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냐는 의구심 등. 종종 주변 사람들은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무례한 말을 던졌다. 이런 ‘농담’들에 기분 나빠한다면 유머를 모르는 ‘진지충’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으레 했을 법한 일들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 쉽게 무례해진다. 하지만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상황과 사정이 있지 않나.


‘왜 대학을 나오지 않았냐?’라는 질문은 ‘왜 연애를 하지 못했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연애를 하기도 힘들었다는 게 나의 답변이다.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모른다. 고졸 출신 청년이 연애를 하기 얼마나 힘든지. 고졸자가 또래 친구들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왔다. 졸업을 하고서 1년 후에 군대를 갔다. 그러니까 얼추 8년 정도를 남자들과 지냈다. 나는 이성애자다. 주변에 여성 지인이 없었다. 다른 글들에서 서술했듯이 제대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내가 23살 때였다. 촬영 현장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1. 서로 호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2. 나는 호감이 있지만 그녀는 내게 아무 감정이 없거나
3. 그녀만 내게 호감이 있거나


이런 경우는 남녀가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위 세 가지 문제는 내가 처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극대화된다. 내가 불특정 다수의 또래 이성들과 함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상황말이다.


게다가 내겐 동료와의 연애가 퍽 어려웠다. 혹시 대시를 했다가 까이면 다음에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다시 만날 일이 또 생길 텐데. 단순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생계에 지장이 갈 수 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애인을 물색하는 행동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왜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지 않았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일단 누구도 내게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나의 외모 때문이기도 하고, 내향적인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일을 하면서 사적으로 친해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마음 맞는 소수의 사람들만 사적으로 만난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 역시 주변에 친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보통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 많다.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보다 열 살 어린 사람들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


누군가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나는 반대하겠다.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겐 청춘의 추억이랄 게 별로 없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라든지, 친구들과 쓸데없는 대화로 밤을 지새운다든지, 열정이 넘쳐 허무맹랑한 도전을 한다든지. 이런 경험이 내겐 다소 부재하다. 다른 이들이 모여서 모두 조금씩 비슷한 경험을 할 때 나는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여튼 일련의 이유들로 나는 스물일곱까지 홀로 지냈다. 당시 나는 연애를 포기했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만날 이성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겠나. 이대로 연애를 해보지 못한 채 20대가 끝나리라고 생각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