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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Nov 30. 2020

식구를 찾아서

식구의 진정한 의미

내 인생에서 뮤지컬을 딱 3번 보았다. 영화나 책이 나에겐 접근성이 높았고 그에 반해 뮤지컬은 접근성이 낮았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할 순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뮤지컬의 매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첫 뮤지컬의 기억은 그리 좋진 않았다. 20살 처음 본 뮤지컬은 진지한 분위기 속 갑자기 신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나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다시 뮤지컬을 볼 기회가 있었지만, 뮤지컬은 역시 나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실망했던 경험이 있다.




뮤지컬은 낭만주의 연극에 가깝다. 낭만주의 연극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정형보다는 정열이, 사실성보다는 환상성이 더 중요하기에 뮤지컬이 여타 공연예술 장르보다 화려하고 낙천적이며, 환상성을 띤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보면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일상 속 모든 고민과 문제들이 노래를 부르면 해결되고 대다수의 많은 뮤지컬의 결말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 또한 나에겐 맞지 않을 것이라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본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는 이러한 나의 편견을 깨부숴줬다. 관객과 몇 걸음 떨어진 무대에서는 대구 수성구 팔현마을의 모습이 펼쳐진다.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노래는 뮤지컬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보통의 어느 날, 꽃분홍 양말에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할머니 ‘지화자’가 ‘몽’, ‘냥’, ‘꼬’를 기르며 사는 할머니 ‘박복녀’의 집에 들이닥친다. 생면부지인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오직 지화자가 지내던 노인병원으로 온 아들의 편지에 적힌 주소가 박복녀의 집이었던 것뿐이다. “내가 이 집 주인의 엄마”라고 우기는 지화자를 내보내기 위해서 박복녀와 몽, 냥, 꼬는 온갖 수를 쓰며 윽박지르지만, 결국, 박복녀는 지화자의 아들을 같이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배우, 관객 등 그 무대를 재연하거나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암묵적으로 따라야 하는 일련의 약속들이 있다. 뮤지컬은 이 일련의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몰입도가 깨질 뿐만 아니라 뮤지컬의 진정한 매력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약속이 지키기 위해서 배우들의 열연과 관객들의 이해가 중요한데, 먼저 조명이 꺼지고 켜지면 장면 전환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똑같은 공간이지만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그 공간은 우체국이 되기도, 사진관이 되기도 한다. 또한, 몽, 냥, 꼬 역으로 분장했던 인물들이 치킨집 사장님, 중국집 사장님, 사진사로 등장하게 되어도 관객들은 암묵적으로 극의 상황을 이해하고 극의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기에 배우들이 조금이라도 익숙한 몽, 냥 ,꼬와 유사한 표정과 연기를 보이거나 어색한 연기가 드러나면 관객은 순식간에 몰입도가 깨지게 된다. 그렇게 몰입도가 깨지게 된다면 그 공간에서 한 명의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식구를 찾아서> 뮤지컬은 그동안 내가 봤던 뮤지컬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우선 배우들의 열정에 놀랐다. 영화 또는 영상 속 매체로 접하는 배우의 연기는 화면을 걸러서 나오는 연기라서 현장감과 사실감을 느끼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몇 발자국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몽,냥,꼬 그리고 지화자, 박복녀 할머니 그 자체로 느껴져 그들의 뿜어내는 열정을 통해 극의 현장감과 사실감을 높여 극에 집중하기 쉬웠다. 배우 스스로가 극에 몰입하여 연기를 펼치는 것이 얼마나 열정적인 일인지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식구를 찾아서>는 할머니들의 우정이 돋보이는 뮤지컬이다. 지화자 할머니와 박복녀 할머니는 상실의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같이 밥을 먹고 아들을 찾기 위해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그 둘을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게 된 박복녀 할머니와 지화자 할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고왔다.

  

흔히 나이가 들면 억세지고 볼품없어진다. 점점 가꾸기를 포기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일상이 매번 똑같으니 예상치 못하는 일이라곤 없다. 주변에 살아있는 존재라고는 반려동물과 자신뿐이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똑같은 하루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하고 난 뒤, 그동안의 일상과는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 일어난다.

  

박복녀 할머니의 집을 자신의 집이라고 찾아온 지화자 할머니는 참으로 뻔뻔스러웠다. 그런 지화자의 모습에 박복녀는 속이 뒤집히며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고 진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쉰 치킨을 먹고 배탈이 난 지화자를 놀리는 박복녀의 모습은 어릴 적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여고생들처럼 웃음을 짓게 하며 먹을 것을 나눠 먹는 그 둘의 모습은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는 식구가 되어간다.

  

서로의 밥을 챙겨주고 음식을 만들고 소풍 간다. 혈연과 법으로 얽힌 관계가 아니지만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박복녀와 지화자, 그리고 몽,냥,꼬 다섯의 식구는 막이 내리고 나서도 도토리묵을 만들고 장터에 나가 물건을 팔고 ‘꼬’의 달걀만으로도 왁자지껄 이야기가 오고 가는 정겨운 팔현마을에서 지내고 있을 것 같다.


뮤지컬 넘버 ‘넌 아직 예뻐’라는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트랙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지화자 할머니가 박복녀 할머니에게 화장을 시켜주며 부르는 노래이다. ‘넌 아직 예뻐’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순간 지화자 할머니와 박복녀 할머니의 지나온 시절들이 너무 애틋하게 느껴져 울컥했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예쁜 할머니들의 식구가 되어가는 이야기는 매우 귀여웠으며 톡톡 튀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희망차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뮤지컬의 매력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봤을 땐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지화자, 박복녀 할머니와 몽,냥,꼬의 모습을 보면 그런 아픔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환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식구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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