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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Dec 14. 2020

무한한 세계를 그려내는 사람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당황스러운 감정이 앞섰다. 수많은 점으로 가득 찬 무한한 공간은 매우 낯설고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세계가 궁금했다. 그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쿠사마 야요이의 어린 시절

그녀는 부유하지만 화목하지 않은 집안에서 어머니의 학대를 피해 도망친 일이 많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피해 조용히 숨어있던 중, 집안의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그 뒤 눈에 남은 잔상이 온 집안과 자신의 몸을 잠식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잔상은 둥근 물방울무늬로 변형되어 계속해서 자신에게 따라붙었다. 그녀는 그 잔상을 잊지 못하였다. 그 경험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trademark)인 ‘무한망’과 ‘점무늬’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위의 그림은 쿠사마 야요이가 10살 때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로 그 당시 쿠사마가 보고 있던 세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후에 그녀가 말하길 어머니가 미워 그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집안의 가정불화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어머니의 학대와 더불어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를 막내 야요이에게 감시하라 시키는 일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보게 된 아버지의 외도 현장은 어린 야요이에게 큰 충격을 다가왔다.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학대로부터 지속적인 환청과 환영에 시달린다. 그러나 야요이는 자신의 아픔이 수많은 점으로 다 뒤덮이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쿠사마 야요이의 뉴욕에서의 삶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 야요이의 작가 인생을 180도 뒤흔든 사건이 일어난다. 야요이는 부모님에게 그림을 그만 그리고 어서 빨리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녀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여성 화가로서 사는 삶을 자문하는 편지를 보낸다. 시간이 흐른 뒤 야요이는 조지아 오키프의 답장을 받고 1957년, 일본에서 뉴욕으로 건너간다. 편지의 내용은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쳐보라는 글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억압했던 일본을 떠나 뉴욕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뉴욕으로 떠나 자유로운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 또한 여성, 인종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미국의 주류인 백인 남성 위주의 예술계를 격파하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람들과 예술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녀는 그러나 굴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갔으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 시기에 만든 작품 중 축적 1’(1962) 연작 시리즈는 그 당시 주류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남근을 주제로 백인 남성 위주의 예술계를 비판한 것이다.

냉담한 미국의 주류 예술가들은 그녀를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시아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주류 예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최초 동성애자 결혼식, 보디 페인팅 축제, 반전 시위를 펼치며 다양한 전위예술을 선보였다.


그러나 단단하게 구축된 백인 남성 중심의 예술계는 그녀가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고 활동할수록 그녀를 더 억압하고 괴롭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을 이미 주류 작가였던 앤디 워홀과 클래스 올덴버그가 아이디어를 도용하며, 팔리지 않는 그림과 냉정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녀를 구석으로 내몰았다. 그녀는 수많은 차별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과 실패를 겪었다. 그녀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 뒤 그녀는 뉴욕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일본에서 선정적인 여성 예술가로서 수많은 눈초리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다시 굳건하게 만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노력과 끈기는 점차 예술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예술가가 되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그녀의 작품 중 <호박>이란 작품은 쿠사마 야요이, 그 자체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녀는 어릴 때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거나 가족들 사이에서 고통스러울 때 호박으로 가득 찬 창고에 숨어 자신을 달랬다. 그 당시 바라본 호박은 자신과 같았다. 투박하고 예쁘진 않지만 단단한 호박의 모습은 그녀 자신처럼 느껴졌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성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 있는 생에 대한 환희의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이 보는 세계를 캔버스 그리고 다양한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그려냈다.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한 세계

억압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굴복하느냐 이겨내느냐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억압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다. 모든 사람이 비판하고 싸늘한 눈초리로 쳐다보아도 그녀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냈다. 그녀는 남성 성기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자신을 억압하고 누르려는 남성성에 대항하였으며, 자신의 아픔과 정신질환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꽃밭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나 자신이 잠식당하고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는 그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말이다. 그녀는 수많은 점을 통해 세계를 잠식해 나간다. 그 공간에 있으면 나 자신은 사라진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연결고리, 관계, 고통, 아픔이 다 사라지고 그저 그 공간에 잠식당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그렇게 무한한 세계로 빠진다.
 

그녀의 삶은 예술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단 한 가지,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것만 바라보며 견뎌왔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간적인 삶의 부분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잃어버린 것도 많았다. 그녀는 부유했지만 화목하지 않은 가족 사이에서 외롭고 아파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림으로 그려내 마주 보았다. 수많은 점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그녀는 자신을 잊고 잠식당한다. 그 공간에서 무결한 자신을 마주하며 순결한 안정을 느낀다.

그녀는 현재까지도 정신 병원 근처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힘들면 치료를 받는다. 그녀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 자신을 마주 보고 인정하는 사람은 정말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용기와 유머러스함이 대단하다. 그녀의 작품은 강하고 강렬하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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