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늘 고뇌하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누구고 왜 여기에 있는가,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러한 철학적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나를 괴롭히는 순간이 있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이성적 의식에 눈을 뜨고 내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인간은 진정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낸 작가이자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늘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늘 고민하고 괴로워했으며, 귀족의 위치와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과의 괴리감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이성적 의식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였으며 이러한 성찰의 결과를 담아낸 책이 <인생에 대하여>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사전적 정의로 간단하게 표현될 만큼 인생을 안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선 삶의 시간과 죽음의 마침표가 필요하다. 또한, 톨스토이는 인생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기 전에 먼저 일의 분명한 순서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과 판단의 관계를 망각한다면 아무리 멋지고 논리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잘못되고 쓸모없는 것이 된다.
흔히 인생이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존재의 의구심과 자기 불안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러한 혼란을 이성(Logos)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생의 과정을 씨앗의 발아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다. 씨앗의 발아 과정을 보면 씨앗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다시 씨앗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씨앗을 발아하는 과정처럼 순환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인생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탄생과 같이 우리 내부에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그것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씨앗의 발아 과정처럼 인생 또한 자신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이성적 의식을 통해 깨닫게 된다면 인생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영원한 시간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혹여 인생의 의미 또는 생명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욕망에 잠식된 삶을 살아간다. 욕망을 따르는 삶은 자신을 파괴하며 세계의 질서를 무너트린다.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이성적 의식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성적 의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 인간임을 인식하는 일,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가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보람과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이성적 의식은 혼자의 힘으로 성장할 수 없다. 타인과 같이 살아가며 타인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의 교집합 속에 피어나고 성장한다.
현재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듬뿍 담은 책들이 즐비해 있다. 이러한 책들의 내용은 대부분 성공한 인생을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세분화되어 세밀하게 목록화되어 있다. 그러한 책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톨스토이의 인생론 관점에서는 매우 비판받을 만한 현상이다. 그는 본인만의 인생, 생명,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지 않고 흔히 현자라 불리는 사람의 가치관을 본받는 모습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을 갖기보다 세간에서 평가된 위대한 현자들이 되풀이한 인생론이 정답인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비판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현자라고 칭한 자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들조차 인생에 대한 확실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채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엔 수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그러한 모순적인 삶 속에 인류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자들은 인생의 참뜻을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한다. 이는 현재까지도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톨스토이에게 죽음이란 매우 두려운 존재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늘 죽음의 그림자에 쫓기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 속 인물들 또한 죽음의 공포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인생에서 죽음을 가장 무서워했다. 그러나 그는 이성적 의식에 의한 생명의 탐구를 통해 죽음이란 내가 존재하는 한, 중단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물질 운동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죽음은 육체적 소멸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이성적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육체적 죽음의 두려움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육신에 있지 않다.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난 이성적 의식에 존재한다. 죽음의 공포로 표현되는 감정은 생명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의식일 뿐이다. 죽음의 공포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릇된 생명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육체적 죽음이 그들에게 없는 진실한 생명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생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이것은 이성적 의식이 요구하는 바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죽음이 존재한다 해도 인생을 살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톨스토이의 인생관을 통해 인생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이성적인 인간이기에 우리는 인생을 궁금해하고 알고 싶다. 그러나 쉽게 해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기에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풀어야 할 문제이며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톨스토이의 지나온 생애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괴롭혀왔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늘 고뇌하고 생각할 것이다, 인생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