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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Dec 30. 2020

소통하고 싶어요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연극]



 


소통 (疏通)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가족, 친구,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말 다양한 관계들이 얽혀있다. 그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선 서로간의 소통이 필요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런데 그 간단한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수정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그녀는 타인과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늘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서 비둘기에게 말을 걸거나 주로 혼자서 지낸다. 그런 그녀의 앞에 몸은 불편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기가 나타난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며 좋은 관계로 이어져 나가는 것 처럼 보였다. 정상호 과장이 수정의 집에 들이 닥치기 전까지 말이다.




정상호





그는 이수정이 다니는 회사의 과장이다. 그는 말도 못하고 소심한 수정을 답답해 한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상호는 자신의 아내 미정과 이혼 문제로 싸우게 된다. 그 모습을 우연하게 본 수정은 상호를 피해 달아나려고 하지만 상호는 그런 수정을 억지로 붙잡아 같이 술을 마시게 된다. 술에 취한 상호는 수정의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인기의 시체를 보고 기절한다. 눈을 뜬 상호는 휠체어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수정을 향해 풀어달라 소리치지만 수정에게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자기 할말만 하며 인기를 보살피는 수정은 상호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 말한다. 그러나 상호는 기다릴 수 없다. 미쳐돌아가는 이 곳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수정과 정상호




벗어나려고 하는 자와 벗어나지 않게 막는 자들 사이는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상호는 수정에게 계속해서 인기는 죽었다고 말한다. 너의 남편은 이미 시체라고 죽은 사람한테 왜 그러는 것이냐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수정은 아니다. 내 남편은 살아있다며 대답한다. 둘은 얼핏 보면 서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은 하되 소통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쏟아낸다.



그러나 이건 비단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호의 부인 미정은 이혼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잠적한 상호를 걱정하기는커녕 상호의 상황을 이용해 이혼 서류 작성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뒤 상호의 간절한 외침은 듣지도 않고 가버린다. 상호 또한 미정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과거 결혼 생활 중 미정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냥 같이 밥이나 먹든지 라며 무심하게 한 귀로 듣고 흘릴 뿐이었다. 그렇게 소통하지 않는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수정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기는 수정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수정 또한 인기와 같이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그것도 아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다. 수정은 듣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곰인형같은 존재만을 원했을 뿐이다. 수정은 인기의 속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도 상관 없었고 자신에게 얹혀 살아도 괜찮았다. 그냥 내 이야기만 들어주면 되었다. 그러나 인기는 달랐다. 수정에게 늘 짐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정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런 인기의 결정은 수정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다 세상을 떠난다. 자신의 엄마가 그랬고 인기가 그러했다.



그래서 수정은 인기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인기가 죽어도 그를 보살피고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좋았다. 자신이 인기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인기는 죽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만 있으면 되니까 수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상호는 계속해서 수정에게 고함을 지른다. 니 남편은 죽었고 니 이야기를 듣다 듣다 미쳐서 죽어버린 것이라고, 수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냥 내 이야기만 들어주면 되는데 왜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죽어버리는 것일까?



소통의 부재



소통의 부재가 심각하다. 그런데 희한하게 소통할 창구는 되려 더 많아졌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보다 더 다양한 비대면 소통 창구가 생겼다. 소셜미디어, 소통 어플 등 정말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소통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소통인걸까?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사용하다보면 자기 혼자 말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소통을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할수록 고립되어가는 기분이다.



실제로 사람들과 말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고립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소통을 하고 싶은데 자기 할말만 하기 바쁘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소통을 갈구하지만 소통되지 않는 시간만 늘어나고 있다.



수정과 상호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수정은 어릴 적 가정폭력으로 인해 어머니가 자살한다. 그로 인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상호는 뇌 종양으로 인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수정의 집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이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는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이야기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오로지 내 이야기만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격렬한 몸싸움을 한다. 서로 치고 박고 때리며 결국은 아무것도 소통하지 못한 채 연극은 끝이 난다.



이 둘을 보면 소통이란 자기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잣말이 아닌 누군가와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날은 수정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상호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조금 고쳐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격렬하게 소통하고 싶지만 끝끝내 소통하지 못한 수정과 상호가 되기 보다는 누군가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이야기를 한 번 해볼게요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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