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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Nov 30. 2020

내 집을 지키려고 한 것 뿐이에요

안티고네에 대하여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 ‘안티고네’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부모님을 알제리 내전 중에 여의고 할머니와 4남매가 캐나다 몬트리올에 이민 간 안티고네는 풍족하지 않지만, 사이가 좋은 가족들 사이에서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다. 안티고네는 장학금도 받고 이성 친구, 하이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갱단에 속해있던 작은 오빠 폴리네이케스가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고 경찰을 말리다 큰오빠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는 알제리로 추방될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에 안티고네는 자신이 폴리네이케스로 변장하여 감옥에 들어가 작은 오빠를 탈출시키고 법정 재판에 서게 된다.

그리스 신화 ‘안티고네’는 테베 왕 오이디푸스와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이기도 한 이오카스테의 딸의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가 세상을 떠난 뒤, 테베를 습격한 폴리네이케스와 이에 맞서 싸운 에테오클레스는 전쟁 중 사망한다. 숙부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유해만 장례를 치르게 하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에 버려 매장을 금하는 포고령을 내린다. 안티고네는 그 명령을 무시하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에 흙을 세 번 뿌리는 의식을 행했다가, 곧 크레온의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지하에 있는 감옥에 갇혀 목매달아 자살한다. 크레온의 아들이며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하이몬은 아버지를 비난하며 안티고네를 변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이몬은 아버지를 저주하며 안티고네의 시체 위에서 자살하고, 크레온의 아내도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한다.


죄 많은 삶을 살아야 했던 오이디푸스와 끝까지 함께 했던 안티고네, 그리고 테베로부터 버림받은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장례 의식을 죽음을 무릅쓰고 거행한 안티고네는 편안한 삶이 보장되었지만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녀의 신조는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족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민자로서 자신의 고향이 아닌 타국에 터를 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외로운 삶이다. 그 외로운 사투 속 안티고네를 지탱하는 건 다름 아닌 가족들이었다. 불어를 하지 못해 통역이 필요한 할머니, 변변치 않은 미용실에서 일하는 언니, 갱단에 소속되어 온갖 범죄를 저질렀던 두 오빠, 남들에게는 자랑스럽지 않은 가족들일지라도 안티고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해주는 뿌리였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들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자신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캐나다의 공권력에 대항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안티고네를 SNS 영웅으로 만든다. 그렇게 그녀의 싸움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가 다시 경찰에 잡히면서 그녀는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할머니, 폴리네이케스와 함께 알제리로 떠난다.


안티고네는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무모한 짓을 저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SNS에 온갖 캠페인을 벌인다.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가 즐거워 보인다. 축제처럼 빨간색으로 치장하며 그래피티(Graffiti)를 그린다. 더 나아가 재판장 앞에서는 춤판이 벌어진다. 이 모습은 SNS의 강한 영향력을 보여 주지만 근본은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민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하나의 유흥거리였으며 깨어있는 나 자신을 보여 주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안티고네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그저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내 집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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